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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자질 검증 안된 '나이롱 교수'… 상아탑이 멍든다

입력 : 2013-07-16 10:47:29 수정 : 2013-07-16 10: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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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관리용’ 원하는 유력인사, 대외적 홍보 효과 누리는 대학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 남발…‘전문지식·경험 전달’ 취지 퇴색
“대학이 각종 비전임교수와 강의·연구·산학협력교수 등 ‘비정규직 전임교수’를 뽑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은 인건비로 편하게 쓰면서 교원확보율도 채우는 다목적 카드다.” 지방의 한 국립대 산학협력중점교수의 말이다. 대학마다 비전임교수가 많지만 명칭과 근로조건 등은 제각각이다. 대학에 오래 몸담은 전임교수들조차 자기 대학의 비전임교수 규모나 하는 일(강의)을 잘 모른다. 교육당국도 비전임교원 관리는 대학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 결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거나 현장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비전임교수제의 취지가 ‘나이롱 교수’를 양산하는 자리로 퇴색하고 있다.
흔히 조교수→부교수→정교수 단계로 분류되는 대학의 ‘전임교원’(재임용 심사와 승진, 정년이 가능한 정규직)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최소 주당 9시간의 강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정식 교수’와 달리 겸임·초빙·석좌·대우·특임·명예·객원 등의 수식어를 단 교수(비전임교원)들의 강의는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주당 강의는 고사하고 한 학기에 특강 형식으로 한두 차례만 강의하거나 아예 강단에 서지 않아도 ‘○○교수’ 타이틀을 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관계 고위직과 대기업 임원 출신 등 전직 유력 인사나 ‘경력관리용 교수직’을 원하는 인사와 대학 간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으로 비전임교수직이 남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비전임교수는 전임교수와 달리 강의와 연구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물 좋은 자리’ 제안이 올 때 교수직 정리가 쉽다. 대학으로서도 유력인사를 임용해 정부의 재정지원과 규제 등에서 도움을 받거나 대외적인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올 초 국회사무처 자료를 분석한 ‘제19대 국회의원 겸직신고 현황’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중 대학이나 관련 기관에 겸직을 하고 있는 의원은 32명(10.7%)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전임교수는 10명이고, 나머지 22명은 겸임교수 10명, 객원교수 5명, 초빙·석좌·외래교수 각각 2명 등이었다.

고위 공직을 떠난 뒤 한 국립대의 비정규직 교수로 일하고 있는 A씨는 15일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비전임 교수는 사실상 시간강사인데 데려온 유력인사를 그렇게 쓰기 뭐하니까 겸임·초빙·석좌교수직 등을 주고 품위유지용으로 연구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며 “대기업이나 공직자 출신은 어지간하면 교수 명함을 갖고 있는데, ‘나이롱 교수’라고 느낄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전문경력인사 초빙활용사업’은 각계각층의 유력인사를 대학으로 이어주는 대표적인 통로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49명이 이 사업을 통해 대학의 비전임교수직을 달았다. 올 상반기에 선정된 67명의 출신기관을 보면 행정부가 27명으로 가장 많았고, 출연연구기관 출신 13명, 군장성 8명, 산업계 7명, 공공기관 6명 등의 순이었다.

국·공립대보다는 사립대, 특히 사립대의 특수대학원에서 이들에 대한 수요가 높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어떤 경로로 대학에 들어와 무슨 일을 하며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등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사업으로 대학 교수가 된 인사 중에는 해당 대학의 전산망에 이름도 안 오른 경우도 있다.

한 지방대학 B교수는 “대학이 ‘간곡히’ 모셔오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이사장과 총장, 대학원장 등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하거나 발전기금이나 학교 운영에 필요한 현물 등을 대학에 기증한 뒤 겸임교수 자리를 받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전임교수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자적 소양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행정대학원 소속 겸임교수로 있는데, 방송출연 등 대외활동 중에 잦은 극우적 발언으로 학교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며 “대학마다 비전임교수 임용 시 교육자적 자질과 능력 검증에 소홀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검증이 안 된 비전임교수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충남 천안의 한 사립대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는 한 학생은 “지난해 1학기 방송사에 있다 연구교수로 온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한 학기의 절반은 휴강을 했고, 수업 땐 준비해온 자료(PPT)를 읽어내리는 참담한 수준이었다”며 “하도 답답해 교수님 전공을 봤더니 우리 과랑 거의 관련 없는 공학과 출신이었다”고 어이없어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행정학부를 졸업한 이모씨도 “퇴직 공무원이나 전직 군수가 비전임교원으로 강의를 종종 했는데, 교과 내용은 거의 안 가르치고 현직 때 있었던 에피소드로 대충 시간을 때우거나 일 있다고 휴강하기 일쑤였다”며 “이런 수업 듣다 보면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제의 교수가) 평판 관리를 하려는 것인지 학점은 후하게 줘서 수강생은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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