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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서] 스웨덴식 복지체제 설계자에 '유토피아 길'을 묻다

입력 : 2012-12-21 20:09:49 수정 : 2012-12-21 20: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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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 홍기빈 지음 / 책세상

홍기빈 지음 / 책세상
에른스트 비그포르스(1881∼1977)는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재무장관을 17년이나 지낸 정치인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이룬 스웨덴의 복지체제를 일궈낸 주역이다.

소장 경제학자 홍기빈이 쓴 이 책은 스웨덴의 복지 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스웨덴에 관한 책들은 여럿이지만, 그 체제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다룬 책은 드물다. 올해 읽은 책 가운데 최고의 책을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꼽고 싶다.

비그포르스는 서구의 좌파 정치인이 흔히 그렇듯이 마르크시스트이거나 열혈투사가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사고는 산업사회의 착취와 억압, 공동체 파괴에 대한 소박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맨체스터 방직공장의 어린 노동자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자본론 이전의 마르크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난한 남미대륙을 일주하던 ‘게릴라 이전의 체게바라’가 가졌던 그 ‘휴머니즘’ 말이다. 아마 모든 정치의 출발은 그러할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에 앞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윤리적 이상주의’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스웨덴의 복지체제는 1919년 사민당의 ‘예테보리 강령’에서 기틀이 잡혔다. 이 강령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전국 단위의 의료보험, 자본 과세, 출산과 양육수당, 공공주택 지원, 노동자의 경영참가와 같은 현재의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이루는 골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일제 침략에 맞서 3·1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이 나라는 벌써 장기 복지체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비그포르스가 제시하는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독특한 개념이 큰 몫을 했다. 이는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유토피아를 강령으로 외치는 대신 지금 여기의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서구의 좌파들이 사회주의혁명을 말할 때, 사회적 약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u-topia)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지만, 그런 ‘꿈’이 없으면 현재의 문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도 없다. 동시에 그 꿈은 현실의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가면서 성취해내는 것이라는 논리인 셈이다.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전복을 외치는 ‘좌’와 시장에 대한 맹신이라는 ‘우’를 극복한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의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1938년(무려 74년 전!) 스웨덴사용자연합(SAF)과 전국노조연맹(LO) 간의 대타협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기 때문이다.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모든 후보가 복지 확대를 외쳤던 현재, 그 장밋빛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비그포르스는 사민당의 이론가이면서 정치적 반대파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탁월한 리더십의 정치인이었다. 복지국가에 앞서 그와 같은 정치인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가망없는 일일까.

김재환 문화체육관광부 온라인소통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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