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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외국인” 놀림에 거리로… 방치땐 사회문제될 수도

입력 : 2012-06-24 19:34:36 수정 : 2012-06-25 11: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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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입국 자녀 교육 실태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학교 밖을 떠돌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의 재혼으로 한국에 온 ‘중도입국 다문화가정 자녀’의 경우 중·고교에 다녀야 할 청소년 10명 중 7명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한국 학교에 들어가는 절차도 까다로운 데다 어렵게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왕따’를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학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게 해선 안 된다”며 “사회문제로 발전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마가 외국인이라며?”… 만연하는 차별과 왕따


현재 학교 밖 다문화대안학교 등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기관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도입국 자녀다. 이들은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말이 서툴러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 다니다 그만두는 주된 이유는 “언어보다는 차별과 왕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녔던 이모(16)군도 이런 경우다. 초등학교 때 한국에 왔지만 한국말을 잘해 어려움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군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지난해 초 어머니가 중국동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놀림과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변한 친구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석을 밥먹듯 하게 된 그는 결국 3학년 진급을 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뒀다.

왕따로 학업을 중단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는 학령이 높을수록 늘어난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0년 다문화가정 학생 중 학교를 이탈한 학생 비율은 초등학생이 0.39%, 중학생이 1.58%, 고등학생이 1.92%로 집계됐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고교생 연령대인 3034명 가운데 현재 학교를 다니는 비율은 31.2%인 948명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졸업장 없어?”… 입학도 못한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아예 입학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학교에 편입학하려면 외국에서 학교에 다닌 시실을 증명하는 재학증명서나 졸업증명서를 내야 한다. 하지만 중도입국 자녀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류를 미리 챙겨 오지 않으면 한국에 온 뒤 해당 증명서를 받아오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엄마와 함께 한국에 온 유모(14)군. 중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중국에서의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졸업증명서가 없어 1년을 허비해야 했다. 중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졸업한 학생에게 증명서를 떼어줘야 하는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유군과 그의 어머니, 한국인 사회복지사까지 나서 중국학교, 한국학교, 교육청에 호소한 끝에 해가 바뀌고서야 간신히 졸업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유군처럼 어른들이 발로 뛴 덕에 늦게라도 학교에 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 일에 쫓겨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거나, 복잡한 입학절차에 가로막혀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학교에 가지 못한 자녀는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거나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황하게 된다.

◆“사회 부적응자 될라”… 예비교육 기회 필요

다문화센터 등 외부기관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거나 학교적응 기간을 갖는 중도입국 청소년도 있다. 그러나 이런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를 배회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들은 또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의 다문화 교육기관 근처에는 수업이 끝날 때쯤 이 같은 중도입국 청소년 무리가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다애다문화학교 이희용 교장은 “가끔 수업에 나오지 않는 학생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 자녀 무리와 밤새 노느라 학교에 못 왔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와 사회 어느 곳에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범죄에도 쉽게 노출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온드림다문화센터의 이현정 센터장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아이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한국에서 살고자 하는 중도입국 자녀에게 공교육이나 공교육으로 편입하기 전 예비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 의지 있나

현재 수업과정이 공교육 이수로 인정되는 다문화대안학교는 서울 다애다문화학교, 충북 제천 폴리텍다솜학교 등 7곳뿐이다. 학교 밖 다문화가정 자녀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기관 관계자는 “우리 센터가 지난 3월 다문화 예비학교로 지정됐는데 지금까지 연락 한 번, 공문 한 장 없었다”며 “현장에서는 시급하다고 느끼는데 정부는 여유를 부리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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