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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시진핑 시대 열 주역들] ① 2012년 3월 주석직 오르는 시진핑 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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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02 02:22:41 수정 : 2012-01-02 02: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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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정치세력’ 고른 지지 받아 농촌서 고초… 겸손·관용 깨달아
서방 언론 中 인권문제 비판하자“밥 먹고 할 일 없는 외국인” 독설
시장경제·민간기업 육성 팔걷어‘지리차 볼보 인수’ 세계가 깜짝
올해 인구 13억의 중국이 새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은 올 10월 제18대 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으로부터 공산당 서열 1위인 총서기를 물려받는 데 이어 내년 3월 국가주석에 오르게 된다. 2022년까지 펼쳐질 시진핑 시대, 중국과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시진핑 시대를 주도할 10인의 주역을 10회에 걸쳐 조망하면서 그 미래상을 탐색하고자 한다.

“공산당 사람은 집단주의 정신을 가장 중시합니다. 성 정부의 일은 릴레이 경주와 같은 것으로, 바통을 잘 받아서 이 바통을 들고 잘 달려야 합니다.”

시 부주석이 2000년 푸젠성장으로 재직하면서 잡지사 중화자녀(中華子女)의 양샤오화이(楊篠懷) 편집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성장을 포함해 푸젠성에서만 17년 동안 당과 정부 일을 맡아 대만 자본 유치를 통해 푸젠성의 부를 전국 최고 수준으로 키웠다.

그러나 시 부주석은 이 기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면서 “모든 업적은 집단이 창조한 것으로, 어떤 것이 개인의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시 부주석은 최고지도자로 오를 때 그리고 그 일을 마친 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진핑 체제도 전 정권의 사상과 이론을 계승·발전시킨다는 당의 전통에 충실해 2020년 샤오캉(小康·의식주가 풍족한 상태) 사회 진입이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부주석
◆적이 없는 지도자


시 부주석은 후덕하고 적이 없는 인화의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좋아하는 인물도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같은 영웅이 아니라 인재를 모으는 화합형 리더인 유비(劉備)와 유방(劉邦)이라고 한다. 이 자질은 그를 13억 인구의 최고지도자로 키운 원동력이라 할 만하다.

그는 중국의 3대 정치세력인 태자당과 상하이방,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 부주석은 전인대 부위원장을 지낸 혁명원로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자당의 선두주자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인생역정은 귀족생활과는 거리가 한창 멀었다. 그는 1960년대 아버지가 반혁명분자로 몰리면서 13세 때 하방(下放)당해 7년간 벼룩이 득실대는 농촌 벽지에서 생활했다.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는 여느 사람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말했다.

밑바닥 경험은 그에게 겸손과 관용의 미덕을 깨닫게 해줬고, 이 때문에 인민들도 거부감이 없고 신뢰가 높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으로 대표되는 상하이방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시의 대부이자 킹메이커로 불리는 쩡칭훙은 2009년 7월 국가 원로들을 적극 설득해 그를 국가부주석에 발탁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시 부주석은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 화해(和諧) 사회론을 적극 지지하면서 공청단과도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할 말은 한다

시 부주석의 풍부한 정치자산에 주목해 그가 의외로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해 시 부주석이 후 주석보다 더 폭넓은 당내 지지를 받고 있을지 모르며, 이는 그에게 새로운 구상을 실험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장쩌민 전 주석과 후 주석이 권좌에 있을 때보다 군부와 더 깊은 유대를 갖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시 부주석은 1979년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비서장이었던 겅뱌오(耿飇)의 비서로 3년간 일했으며, 이를 계기로 군내에서 두꺼운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부주석은 가끔 직설적인 강경 화법을 구사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2009년 2월 멕시코 방문 때 서방의 언론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자 “우리는 혁명도 기아도 수출한 적이 없으며 상대방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는다. 밥 먹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였다. 앞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즈음해 해외에서 인권탄압국 비판이 제기되자 “남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새장 속에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면 제일 시끄러운 놈을 들어내면 된다”고 내뱉기도 했다. 시진핑 시대에도 중국의 위상에 걸맞은 굴기외교가 펼쳐지면서 G2(주요 2개국)의 패권경쟁이 가열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샤오캉 사회의 건설

시 부주석은 경제개혁과 개발에서도 놀라운 수완을 보여왔다. 그는 30세 때인 1983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서기로 일하면서 대불사(大佛寺), 서유기궁(西遊記宮)으로 대표되는 정딩관광구 개발을 주도해 지역주민으로부터 ‘재신(財神)’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 부주석은 또한 푸젠성과 저장성, 상하이 등 연해지역에서 22년을 근무하면서 시장경제와 민간기업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 부주석은 2002년 저장성 당서기로 부임하자마자 지리(吉利)자동차를 방문해 “우리가 지리자동차 같은 회사를 강력히 지원하지 않는다면 어느 회사를 지원하겠는가”고 말했다. 지리차는 2009년 포드자동차로부터 볼보를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향후 10년간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경제 도전에 직면할 듯하다. 장윈링(張蘊嶺)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은 시진핑의 향후 과제와 관련해 “경제구조 측면에서 내수를 추진해 전면적인 신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면서 “균형발전 차원에서 인민의 과도한 소득격차를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주임은 “미국의 민주정치가 적합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정치체제에 결함이 있는 만큼 새로운 정치의 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주춘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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