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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 1년' 연평도를 가다] "잊혀진 전쟁… 끝난 게 아닙니다"

관련이슈 11·23 北 연평도 포격 '도발'

입력 : 2011-11-21 13:08:04 수정 : 2011-11-21 1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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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소리 사라지지 않았는데… 전시성 기념행사라니"
훈련포성에도 깜짝깜짝… 주민 60% ‘그날’ 트라우마
대피시설 얼렁뚱땅 건설… “이래서 北 이기겠습니까”
북한군의 연평도 도발 1년. 시간이 흘렀건만 연평도는 아직도 상흔투성이다. 포격에 잿더미로 변한 건물 잔해뿐 아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포탄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도발 트라우마’가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생생한 상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20일 인천 연평도 연평해병부대의 피복 보급 창고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말해주듯 포격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보존돼 있다.
국방부 제공
20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2시간여 뱃길을 달려 도착한 서해 연평도. 그곳에는 지난해 11월23일 북한군 포격 이후 불안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악몽 같은 북의 도발은 현재진행형이다.

포격 당시 인천으로 3개월 동안 피란갔던 박모(65·여)씨. 집이 걱정돼 되돌아온 뒤에는 연평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지어진 임시주거용 목조주택에 살고 있다.

“요즘 우리 군의 훈련포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가까이 들리는 포성에는 몸이 얼어붙고 눈앞이 깜깜해지곤 해요.”

그의 눈에 비친 불안한 기색은 숨길려야 숨기기가 힘들다. 남편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몸이 갈수록 말라 지난해보다 10㎏ 이상 살이 빠졌다”고 했다. 포격으로 정신적 충격이 계속되는 데다 추위가 몰아닥치기 전 집을 짓는 데 기진맥진한 탓이라고 한다. 박씨뿐 아니다. 연평도 주민이라면 너나 없이 이런 고통을 떠안고 있다.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은 이렇게 이어졌다.

다른 박모(62)씨. 그는 포격이 있던 날 산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고, 부인은 조개를 캐러 바다로 나가 화를 면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날 연평도 주민이 1명도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은 천우신조”라며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에 몸서리쳤다.

연평도 주민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하다. 인천 나은병원과 전국재해구호협회가 검진을 희망한 연평도 주민 149명을 상대로 9월19일∼10월31일 종합건강검진을 한 결과 90명(60.4%)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연평 중앙로 3거리에는 당시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주택 4채가 안보체험관 건립을 위해 녹색천막으로 둘러싸인 채 보존돼 있다. 포격의 잔흔일까,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겉으로 드러난 상흔은 하나하나 치유되고 있다. 민가가 몰려 있는 연평도 167번 길. 1년 전 북한군 포탄에 민가 2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변 민가 4채가 반파된 곳이다. 이곳에는 새 보금자리가 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지어지기까지는 족히 한 달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지난해 북한의 포격으로 잿더미가 된 인천 옹진군 연평도 곳곳이 1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옹진군에 따르면 정부의 복구지원자금 309억원 중 40여억원이 투입돼 지난달 말로 주택 7동, 창고 6동의 입주를 마쳤다. 2차분인 주택 12동과 상가 3동, 창고 4동은 18일까지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

창고에서 지내는 김모(45·여)씨는 “피폭 1년이 지나도록 집을 완공하지 못한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이 이런 포격을 맞았다면 1년이나 방치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사 사태에 대비할 매뉴얼이나 주민 피란시설 확충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연평도 사태처럼 1000명이 넘는 피란민이 동시 발생하면 어느 공간에 수용해야 할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주민들이 섬 밖 탈출을 요구할 때 구체적 행동요령을 담은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1년을 맞은 20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주민대피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연평도=이돈성 기자
특히 옹진군은 주민대피계획 등을 담은 매뉴얼 이행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새 매뉴얼은 연평도 주둔 군부대는 적 공습이 예상되면 면사무소로 즉시 연락하고, 면사무소는 대피 안내 방송을 내보낸 뒤 주민들을 대피소로 유도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북한군이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으로 포 사격을 했을 당시 매뉴얼 행동요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큰 혼선이 빚어졌다. 면사무소의 대피방송은 없었고 주민들은 포 소리를 들으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연평도 포격 1주년인 23일 ‘그날의 포화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여러 행사가 열린다. 2002년 제2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용사 6명의 흉상이 새겨진 평화공원에는 지난해 북한군 포격으로 전사한 서정우 해병대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흉상 제막식과 추모행사가 열린다. 음악회와 주민 한마음 걷기대회도 열린다.

주민들은 시큰둥해한다. “지금 연평도에는 북한군의 포격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연평도를 떠나는 여객선에서 한 주민이 말했다. “연평도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연평도=이돈성 기자 sport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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