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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살이에 양육비 부담… 둘째 갖고 싶어도 못 낳아요”

입력 : 2011-11-17 12:05:53 수정 : 2011-11-17 12: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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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계획자녀수 ‘自家 여성’보다 높지만…치솟는 전세값·잦은 이사로 삶 불안정
내집 마련 쉽지않고 양육문제도 암울·현실과 이상 '괴리'…출산 포기 많아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겁니다.”

4년 전 결혼해 아이 하나를 둔 주부 김모(34)씨의 푸념이다. 그는 올해 둘째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으나 고민 끝에 포기했다. 전셋값이 문제였다. 2009년 경기 평촌에 1억5000만원을 주고 입주했던 아파트 전셋값이 2년 만에 7000만원이나 올라 은행대출을 받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첫째를 키워보니 양육비가 한 달에 80만원 가까이 들더라고요. 대출금 상환 부담이 큰 상황에서 둘째를 갖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씨는 “아이를 갖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월세를 떠도는 주부들의 서러움이 출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잦은 이사에 따른 주거 불안감이 상존하는 데다 자녀 양육·주거비 상승 부담 같은 현실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집값 상승세가 멈칫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소득에 비해 거품이 낀 상태이고, 내집 마련을 미룰수록 전·월세 부담이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고 있어 ‘떠돌이 저출산’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자녀 원하지만…


남의 집 살이를 하는 기혼 여성의 서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추가계획자녀수’라는 통계다.

통계청이 설문을 통해 자녀를 더 낳을 계획이 있는지 알아 본 것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성의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세를 살고 있는 가임(15∼49세) 기혼여성의 평균 추가계획자녀수는 2005년 0.08명에서 2010년 0.33명으로 무려 312% 늘었다. 같은 기간 자가 거주 가임 기혼여성의 추가계획자녀 수가 0.07명에서 0.16명으로 12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전세살이 기혼여성의 출산욕구는 거의 수직 상승한 셈이다.

이 같은 수치는 전세살이 기혼여성이 저출산이라는 ‘현실’과 자녀를 더 많이 낳겠다는 ‘계획’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음을 뜻한다. 자녀를 갖고 싶은 욕구는 자가거주 여성보다 훨씬 강하지만, 주거 불안정 등의 문제로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월세로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사는 기혼여성 역시 추가계획자녀수는 2005년 0.07명에서 2005년 0.23명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주 가임연령대인 25∼34세 여성 가운데 전세 사는 기혼여성은 추가계획자녀수가 2005년 0.38에서 지난해 0.79명으로 갑절 이상 껑충 뛰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전체 가임여성 중 전세살이 여성의 추가계획자녀수가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라며 “통계의 시사점을 잘 살펴 저출산 대책 수립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중되는 주거 불안

아이를 더 낳고 싶어 하는 전·월세 거주 기혼여성들의 바람은 그러나 쉽게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그렇다. 부동산114 조사 결과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2005년보다 40%나 뛰었다. 같은 기간 임금 상승률(26%·상용임금 기준)의 1.5배에 달하는 것이다.

현재 소득으로는 집값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는 형국이다. 치솟은 집값 탓에 내집 마련 꿈을 미룬 채 전·월세를 전전하지만 임대료 상승폭까지 워낙 가파르다보니 가계 자금이 축적되기보다는 금융비용만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집값 조달조차 어려운 상황이니 추가 자녀 양육비 부담이 더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출산을 기피하기 마련”이라면서 “20대, 30대 등 각 생애 과정에서 어떤 집에 살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경제위기 등을 거치며 오히려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출생아 수가 뒷걸음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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