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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마야인들 흡연 관습… 문명은 ‘연기의 장막’에 휩싸였다 “1492년 11월 6일 콜럼버스의 선원 두 사람이 쿠바 내륙을 탐사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콜럼버스가 한 달 전, 1492년 10월 15일에 선물로 받았던 것과 비슷한 마른 잎사귀를 피우는 원주민들을 만났다고 보고했다. 이 불타는 잎사귀 연기를 마신 루이스 데 토레스와 로드리고 데 헤레스는 담배를 피운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샌디 L 길먼·저우쉰, ‘흡연의 문화사’)

1492년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에 착지한 선원들은 원주민들이 풀을 태워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목격한다. 문명한 인류가 담배와 처음 대면하는 대목이다. 담배는 그들을 통해 유럽에 옮겨지고, 16세기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고대 마야인들의 관습이던 흡연이 단박에 문명인의 취향이자 관습으로 자리 잡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연기’가 일으키는 쾌락이라는 마법에 홀린다. 이 점에서 담배는 어디서나 손에 넣기 쉬운 쾌락의 도구이다. 하지만 담배는 예속을 낳는다. 니코틴 중독자들을 양산하고 니코틴 공급이 끊어지면 심각한 금단 현상을 초래한다.
담배가 유럽 대륙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신기한 풀잎을 태워 나오는 연기를 마시는 것에 의학적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특히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거룩한 연기’가 만성질환과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거기에 더 보태 “흡연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것을 할 여유가 있는 이들 바로 상류층의 오락으로 여겨졌다.”(샌디 L 길먼·저우쉰, 앞의 책) 담배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이것이 주는 이로움과 이익이 과장되면서 흡연 관습은 삽시간에 유럽을 점령하고 곧 다른 대륙으로 거세게 퍼져나갔다. 담배는 신기한 연기로 지구를 뒤덮었다.

담배는 날것도 아니요, 익힌 것도 아니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담배는 “초요리(metaculinary)”다. 흡연은 마른 풀을 태워 연기를 들이마시는 행위다. 담배는 빵처럼 맛있거나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술처럼 도취의 매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도로 입 밖으로 내뱉어 공중에 흩날려 보내는 것이다. 흡연에 입문하는 사람은 대개 담배 연기 때문에 불쾌함과 고통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기꺼이 담배를 아주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기호품으로 받아들였다. 흡연은 인류가 만든 가장 불가사의한 관습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왜 담배를 피우는가?

“흡연은 언제나 문화의 일부였다.”(샌디 L 길먼·저우쉰, 앞의 책) 그것은 기호와 탐닉의 도구, 위안이자 기쁨, 발명된 관습이고 유행, 매우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담배는 인류와 동물 사이를 가르는 관습이요 문화다. 동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만이 담배를 핀다. 담배는 동물에 대한 문명인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의 표상이다. 아울러 담배는 산업의 일부였다. 담배 산업은 재배와 제조와 판매뿐만 아니라 유통, 홍보, 광고, 마케팅의 기법들과 더불어 성장했다. 통계에 따르면, 13억의 인류가 담배를 피우고, 5억의 인류가 담배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에 관련되어 밥벌이를 하고 있다. 기업 자본, 테크놀로지, 대량 판매, 광고의 집중 속에서 쑥쑥 자라온 담배가 부흥시킨 산업은 인류의 거대경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찰스 킹슬리는 담배가 “외로운 사내의 벗이며 미혼남의 친구, 굶주린 이에게는 양식, 슬픈 사람의 원기회복제, 잠 못 이루는 이에게는 잠, 추운 이에게는 온기”(샌디 L. 길먼·저우쉰, 앞의 책, 재인용)라고 적었다. 담배는 노동과 고달픈 삶에 대한 보상의 약속이고, 공허라는 질병에 대한 예방책이다. 흡연은 한가로움에 지친 자들이 저 덧없는 연기의 신께 바치는 장엄미사다. 아울러 담배는 관능적 자유분방함과 절대자유의 표현이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는 저와 그 주변 사람들 사이에 ‘연기의 장막’을 펼친다. 흡연자는 그 장막 안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데,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 사회 및 문화의 질서와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샌디 L. 길먼·저우쉰, 앞의 책)을 뜻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에 멋진 삶을 산다는 아우라가 덧씌워진다.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체 게바라가 필경 쿠바에서 만든 게 분명한 여송연을 달게 피우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여송연을 문 체 게바라의 모습은 평생 비흡연자로 살아온 나도 슬며시 여송연을 한 대 피워볼까 하는 마음이 동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만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세상이 다 아는 애연가였다. 아니 골초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고, 밤이 되어 잠들 때까지 이어졌다. 그는 “나는 여송연이 내 연구 능력을 극대화하고 자기절제를 촉진했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담배 한 개비는 다음 한 개비에 대한 약속이다. 금연자들의 굳센 결의를 무너뜨리는 것도 담배 한 개비다. 담배 한 개비는 반드시 그 다음 한 개비를 불러오는 까닭이다. 담배 한 개비가 가진 위안과 쾌락의 총량은 전체 담배의 총량과 다를 바 없다. 담배는 언제나 한 개비로 충분하다. 사람이 또 다른 담배 한 개비를 구하는 것은 단지 그 위안과 쾌락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가 최고다’에서 “담배 한 개비 한 개비는 다른 담배를 함축한다. 흡연자는 연속으로 담배를 피운다. 담배 한 개비 한 개비는 필연적인 그 후계자를 계속 불러낸다.”(한국어판 제목은 ‘담배는 숭고하다’, 문학세계사)고 적는다. 프로이트에게 담배는 담배 이상이었다. 일상의 무료함과 권태를 달래주는 벗이었고, 연구의 동반자였고, 연구의 집중력을 키워주는 촉매제였다. 장기간 흡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에 걸려 죽었다.

담배가 함유한 니코틴은 강한 중독성 물질이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위험물질이다. 다국적 담배기업들은 여러 수단을 써서 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을 조작해 왔다. 그런 방식으로 니코틴 중독자들을 양산하고, 그것을 니코틴 공급이 끊어지면 몸에서 심각한 금단 현상이 나타나게 했다. 금단 현상은 대개는 고통을 동반하는데, 위통·두통·경기같이 심한 것에서 절망적인 기분·불행·짜증·근심·좌절·집중력 장애와 같이 가벼운 것까지 나타난다. 흡연자들이 금연에 도전하지만, 이 금단 현상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문제의 심각성은 담배가 여러 발암물질을 함유한다는 데 있다. 흡연은 폐암과 기관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담배의 폐해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담배는 세계 어디서나 공공의 적이다. 인류의 흡연의 역사에서 중대한 변화라는 기로에 선 것이다.

담배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대략 400년 안팎의 일이다. 조선 중엽 광해군 무렵이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담배는 한반도를 거쳐 중국 북방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조선의 남녀노소가 다 남초(南草)라고 부른 이 신기한 풀의 연기에 빠졌다. 1810년에 애연가였던 이옥(李鈺)은 ‘연경(烟經)’이라는 책을 썼다.‘연경’은 담배와 관련된 조선의 유일한 저술이다. 이옥은 담배의 근원과 유래, 성질과 맛, 그리고 잎을 펴고, 쌓고, 말고, 써는 방법과 담배를 떠서 채우고 불을 피워 태우는 방법을 일일이 적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의 이치를 더듬어 적는다. 담배가 맛있을 때는? 이옥은 이렇게 적는다.

“기나긴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몰래 부싯돌을 두드려 단박에 불씨를 얻어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한 대를 조용히 피우자 빈방에 봄이 피어난다.”

담배는 하릴없고 무료할 때 더 없는 벗의 대용이다. 그 겨울밤 새벽에 무료하다고 벗을 부를 수 없으니 담배로 대신하는 것이다.

“산골짜기 쓸쓸한 주막에 병든 노파가 밥을 파는데, 벌레와 모래를 섞어 찐 듯하다. 반찬은 짜고 비리며, 김치는 시어 터졌다. 그저 몸 생각하여 억지로 삼켰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자니 먹은 것이 위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한 대를 피우니, 생강과 계피를 먹은 듯하다.”(이옥, ‘연경―담배의 모든 것’)

담배의 또 다른 쓰임새를 보여준다. 조선의 군주 중에서 정조 임금도 애연가였다. 담배를 배척하는 논리에 맞서 “민생에 이롭게 사용되는 것으로 이 풀에 필적할 은덕과 이 풀에 견줄 공훈이 있는 물건이 그래 어디 있는가?”라고 반론을 폈다. 급기야는 1796년 11월 18일에 조정 신하들에게 담배의 유용성에 대해 글을 지어 올리라는 책문(策問)을 내렸다. 정조는 “온갖 식물 가운데 이롭게 쓰여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으로 남령초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고, 그 여러 효능을 일일이 열거한 뒤에 조정 신하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대들의 견문을 모두 동원하고 다방면의 사실을 끌어다가 자세하게 증명하도록 하라! 내 친히 열람하겠노라.”(이옥, 앞의 책)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담배는 항상 담배 이상이다. 무엇보다도 흡연은 쾌락에 관련된다. 담배는 아마 어디서나 가장 손에 넣기 쉬운 쾌락의 도구일 것이다. 쾌락은 욕구를 가진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예속을 낳는다.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쾌락은 종속되어 있다. 필요와, 그것의 충족에. 만족을 위해 필요한 사물에.”(베르트랑 베르줄리,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 예속은 행위의 주체에게서 삶의 자유를 앗아간다. 그는 더 이상 제 삶의 주인이 아니다. 쾌락에 예속되는 사람은 쾌락의 부림을 받는다. 이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주인에서 노예로의 신분 전락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샌디 L. 길먼·저우쉰, ‘흡연의 문화사’, 이수영 옮김, 이마고, 2006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2008

●강준만, ‘담배의 사회문화사’, 인물과사상사, 2011

●리처드 클라인, ‘담배는 숭고하다’, 문학세계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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