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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人의 조각가 시골미술관 간 까닭은

입력 : 2011-08-08 17:27:19 수정 : 2011-08-08 1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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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남포미술관서 공개 작업
한여름 시골 미술관에 조각가들이 모여들었다. 단체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연이라는 ‘현장’에서 작업도 하고 지방 문화 수요도 충족시키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주인공들은 박선기, 박승모, 성동훈, 이길래, 이재효, 정광식, 최태훈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조각가 7총사다.장소는 전남 고흥 남포미술관(관장 곽형수). 폐교된 중학교가 미술관으로 거듭난 공간이다. 고흥은 파란 하늘빛이 손을 대면 뚝뚝 떨어질 듯하고 산등성이 돌아서면 아쉬워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고향의 냄새가 여전히 머물고 있는 곳이다. 눈으로 다가와서 마음 가득 머무는 곳이라 하지 않았던가.

전남 고흥 남포미술관에 내려간 조각가들. 박선기(앞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재효, 최태훈, 이길래, 정광식, 성동훈, 박승모 작가.
작가들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남포미술관 야외 전시장에서 작품 구상부터 제작, 설치까지의 전 과정을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결과물들은 오는 10월2일까지 야외와 실내 전시장에서 보여주게 된다.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기존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들은 미술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 등 자연 오브제로 작업을 했다. 버려지는 고철도 작업재료로 사용했다. 이길래 작가는 바닷가에 밀려온 폐목 위에 드로잉을 했다. 최태훈은 쇳조각들을 조합해 2m가 넘는 대형 나뭇잎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메모지에 적어 나뭇잎 설치작품에 메달아 놓을 수 있다. 박선기는 폐목과 생나무를 이용해 사다리를 만들고, 이를 적당히 태웠다. 사다리 제단이다. 나무 물성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나무의 진화라고 했다.

정광식은 2m 크기의 자연석을 쪼아 미술관 모형을 만들었다. 업그레이드된 상상의 미술관이다. 성동훈은 폐교의 과학기재자인 저울과 현미경 등을 활과 결합시켰다. 사람의 마음을 재는 ‘감성분별기’라는 작품 제목이 재미있다. 박승모는 인체캐스팅을 가져와 현장에서 알루미늄 와이어로 감는 작업을 자유로운 퍼포먼스처럼 보여주었다. 이재효는 고물상에서 가져온 우산대로 모기와 나방 조형물을 만들었다. 작가에게 모기와 나방은 자연의 표상이다.

성동훈 작가가 폐교 과학기자재를 이용해 만든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서울 조각전시장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 지방 문화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요구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충족시킬 만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얘기다. 7명의 작가들은 2007년 헤이리에 소재한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를 가지면서 자주 만났다. 같은 해 대구와 부산에서도 전시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지방 전시에 의기투합했다. 이번 전시도 사전답사를 통해 장소가 결정됐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창작을 함께 생각해보는 새로운 타입의 예술 향유의 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작가들에겐 작업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마음껏 ‘상상력의 휴가’를 즐기는 호강(?)이다.

낮선 공간과 자연, 그것은 창작의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 이길래 작가는 고흥의 자연에서 이곳 출신 송수권 시인을 떠올렸다. “우리의 삶은 곡선 속에 있다. 희망도 꿈도 사랑도 아픔도 모두 곡선으로 모아진다. 직선 안에는 시간조차 없다. 단지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던 송 시인의 말이 그의 소나무 조형물을 닮았다. 동파이프을 잘라 하나하나 용접해 만든 소나무다. 곡선의 조합이다. 아무리 원고를 쓰는 일이 버거워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동차 운전도 배우지 않는 송 시인의 ‘느림의 미학’에 이길래 작가는 공명(共鳴)한다.

최태훈 작가가 야외전시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뭇잎’ 조형물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적어 나뭇잎에 걸었다.
현장 작업을 끝낸 작가들이 바닷가로 나섰다. 적막한 바다다. 송 시인은 이곳에 서서 적막한 바닷가’라는 시를 건져 올렸다.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갈밭머리 해 어스름녘/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한 마리 해오라기처럼/먼 산 바래 서서/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 소리에/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마지막 이 바닷가에서/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작가들은 짧은 생애 뻘밭처럼 더러는 비워 놓고 살라하는 송 시인의 권고에 특별히 공감한다. 성찰도 창작도 바로 그런 비워 놓은 공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시골미술관 나들이는 바로 그런 뻘밭 같은 행위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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