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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살포시 내려앉은 성곽길을 걸어보자

입력 : 2011-04-07 17:17:22 수정 : 2011-04-07 17: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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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긴 성곽 위에도 봄이 내려앉았다. 겨우내 겹겹이 눈이 쌓였던 산성 밑에는 이름 모를 꽃과 풀이 새순을 돋우고 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산성도 따사로운 햇살에 기지개를 켠다. 줄지어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가슴에도 봄이 왔다. 상큼한 발걸음으로 산성 위를 사뿐사뿐 걷는 등산객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전철과 버스 한 번으로 아름다운 성곽을 만날 수 있음은 여행객들에게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진달래 개나리를 필두로 벚꽃이 망울을 터뜨리는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남한산성 성곽 길을 걸어보자.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쯤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다. 남한산성은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진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는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는 치욕을 당하면서 남한산성은 다시 축조됐다.

청나라에 굴욕적 항복 치욕의 역사현장

남한산성이 치욕의 역사현장으로 남게 된 일대 사건은 1637년 1월 30일에 일어났다. 인조가 중국 청나라 태종(太宗)의 대군에 밀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 당시 인조 일행이 산성에 갇혀 지낸 47일간을 담고 있다. 1636년 12월 14일 새벽,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인조의 행렬은 남문을 통해 남한산성에 들어섰다. 그리고 청에 굴욕적인 항복을 할 때까지 조선의 조정은 ‘주화론’과 ‘주전론’으로 나뉘어 설전을 펼친다. “결사 항전을 주장한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청과 화친하자는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고 적고 있다.

남한산성 주차장과 바로 이어지는 남문(지하문)에서 역사의 흔적을 좇아 보기로 했다. 산성에 오르면 진한 솔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 북문에 이르는 탐방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다. 위엄있는 군사용 깃발을 보니 여기가 수어장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수어장대는 장수가 주변을 관측하고 군사를 지휘하며 지키고 막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원래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수어장대만 온전하게 남았다.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있어 산성의 위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어장대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겪은 시련과 이후,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생활을 한 17대 효종이 북벌을 준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해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수어장대 입구에는 청량당, 앞마당 한쪽에는 매바위가 있다. 청량당은 성을 쌓은 벽암 각성 대사와 함께 이회 장군과 두 부인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다. 매바위는 성을 튼튼하게 쌓으려다가 모함으로 참수형을 당한 이회 장군의 말대로 “매가 날아와 앉아 무고함을 알렸다”는 바위다. 

고목에 새잎이 돋아나고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망울을 터뜨리는 이 즈음 가족과 함께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곽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고 잘 보호된 자연을 함께 느끼는 것도 이곳이 가진 매력이다. 사진은 지난해 이맘때 남문에서 촬영한 것이다.
경기관광공사 제공
서문 성벽에 올라서면 서울 전경 한눈에


수어장대에서 15분쯤 더 가면 서문(우익문)이 나온다. 가파르기는 하지만 서울 거여동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 앞에 서면 슬픈 역사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병자호란 때 남문으로 들어왔던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러 가는 길에 통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이 바로 이 서문이다. 서문 근처의 성벽 위에 올라서면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북악산, 인왕산, 관악산, 북한산 등에 둘러싸인 서울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좋은 날이면 인천 앞바다도 아스라하다. 여기서 바라보는 해넘이와 밤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관으로 기억된다.

남한산성을 본격적으로 축조한 건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이 평안북도 의주까지 피난 가는 치욕을 당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인조 2년(1624)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축조된 남한산성은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소, 옹성 3개, 대문 4개, 암문 16개, 포대 125개를 갖춘 성이었다. 여기에 왕이 거처하는 행궁과 9개의 사찰이 성 안에 자리했다.

난공불락 요새… 산 속에 건설된 계획도시

남한산성에서 치욕적인 역사만 느낄 필요는 없다. 남한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축조기술이 함축된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성곽을 빙 둘러 다시 남문주차장이 있는 로터리로 들어섰다. 이 로터리는 조선시대에도 사방의 길이 교차하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로터리에 설치된 종각에서 종을 울려 시각을 알렸다. 남한산성은 군사요새일 뿐 아니라 산속에 건설된 계획도시였다. 종로는 각 도시 중심가의 공통 이름으로 이곳은 산간도시의 종로거리였다. 남한산성 탐방의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왕이 임시로 머물던 행궁이다. 이는 임금이 전시에 피난처로 사용된 별궁(別宮). 불에 타 없어진 왕의 침소였던 상궐을 시작으로 업무를 보던 하궐 등 행궁이 지난해 모두 복원됐다.

광주=글·사진 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 여행정보

가는 길=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포나들목∼헌릉로∼세곡동삼거리∼복정역∼산성역사거리∼산성로터리.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를 이용할 때 장지로터리에서 내려서서 세곡삼거리에서 유턴한다. 중부고속도로를 타면 광지원을 거쳐 동문을 통해 들어간다.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에서 9번, 52번 버스를 타면 산성로터리까지 간다. 9번 버스는 성남 야탑역에서, 52번 버스는 모란역에서 출발한다. 남한산성도립공원관리사무소(www.namhansansung.or.kr, 031-7743-6610)

먹을 곳=남한산성 주변에는 많은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산성로터리에 있는 천일관 전통손두부(031-743-6590)와 산성손두부(031-749-4763), 오복순두부(031-746-3567)의 손두부 요리가 맛있다. 남한산성 안의 음식점들은 토종닭백숙, 훈제오리, 산채정식, 한정식 등을 주로 내놓는다. 맛과 메뉴, 가격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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