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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25> 서울시 무형문화재 옥공예 장인 엄익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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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22 21:15:21 수정 : 2011-03-22 2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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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담긴 영롱한 아름다움’ 빚는 신들린 손놀림에 탄성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가루가 먼지처럼 풀풀 올라오는 좁은 작업실에서 전통 옥공예 장인 엄익평(54)씨를 만났다.

“전통방식에 따라 명주실을 꼬아 만든 톱으로 원석을 자르고 다듬어 작은 옥 가락지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립니다. 향로나 찻주전자 같은 큰 작품은 서너 달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옥제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멋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엄씨가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37호 옥장 엄익평씨가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든 다양한 옥공예품을 정리하고 있다.
“옥은 예로부터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지닌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고귀한 보석이었습니다. 그런 영롱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버렸군요.”

엄씨가 옥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16세 때. 당시 옥공예 분야의 최고 기능인이었던 홍종호씨의 공방에 취직해 옥원석을 자르는 일을 시작했다. 3년 후 그는 자신만의 작업공간에서 마음껏 작품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서울 상도동 달동네 자락에 움막과 다름없는 작은 공방을 차렸다. 독립한 뒤 엄씨는 매일 옛 기록 속의 옥장신구들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창조하는 데 매진했다.

◇가공하기 전의 옥 원석들.
옥공예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엄씨는 1989년 서울시 공예품경진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을 거듭하며 차츰 전통예술계에 장인으로서 이름을 알려 나갔다. 그러던 중 엄씨는 평소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며 따르던 문화예술계의 한 원로에게 6개월 동안 공들여 만든 옥향로를 자랑삼아 선보이다가 한 마디 충고를 듣게 된다.

◇엄익평 장인이 제작한 각 정부부처 상징 옥도장.
“엄군.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간결함에 있는 걸세. 그 간결한 아름다움을 한번 찾아 보게나.”

엄씨는 머리에 돌을 맞은 듯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밀하게 조각된 비녀에 광택을 낸다.
◇연마제를 묻혀가며 비녀 내부를 파내고 있다.
“6개월을 밤낮으로 공들여 깎고 만져 완성한 작품이 칭찬은커녕 전혀 아름답지 않다니….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간결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한번 찾아보리라고.” 

◇옥으로 만든 은장도들. 옥은 예로부터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선한 기운을 북돋는 보석으로 알려졌다.
그 사건(?) 이후 엄씨는 옥 자체가 가진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 작품을 만들어 갔다. 그 결과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된다. 2006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엄씨는 현재까지도 단순함에서 나오는 간결한 곡선과 직선의 조화로 옥이 가진 영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전통을 잇는 장인의 역할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움을 현재에서 다듬어 미래에 물려주는 가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전통 옥공예 기법이 비록 보잘것없는 재주지만 그런 역할에 충실하며 살고 싶습니다.”

사진·글=남제현 기자 jeh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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