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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머리해변 초가 원두막 고즈넉

입력 : 2011-03-11 00:16:08 수정 : 2011-03-11 0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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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기름진 평야·맑은 강 넓은 뻘밭 조화… 생태관광지로 자리매김
무안반도 너머로 떨어지는 짙은 저녁노을 황홀
모평마을 천 년 전 고려시대에 처음 일궈…수령 300년 고목 36그루 운치
◇긴 뻘밭을 끼고 있는 함평의 돌머리해수욕장. 해안선 끝이 바위로 되어 있어 붙여진 ‘돌머리’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뒤편에는 우거진 솔숲이, 바위 끝에는 전망대와 초가 원두막이, 앞에는 바닷물이 담긴 인공풀장이 설치돼 자연과 인공조형물의 조화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함평천지’로 잘 알려진 전남 함평이 생태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살기 좋고 모든 것이 넉넉해 조화롭다’는 뜻을 지닌 함평이 생태관광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름진 평야가 있고, 맑은 강이 흐르고, 넓은 뻘밭이 조화를 이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함평의 아름다운 풍광을 수식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기산영수(箕山潁水)’. 조선 세조 때 왕위 찬탈을 못마땅히 여겨 벼슬을 마다하고 귀향한 이안이 함평천 인근을 중국 하남성의 기산영수와 견줄 만한 곳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세상을 한탄하며 고향 함평에 내려와 정각을 짓고 “누(樓)가 높아 날아가는 기러기는 등만 보이고 누 아랫물이 맑아 헤엄치는 새우의 수염을 헤아리겠다”는 시를 읊으며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

중국 요임금이 기산에 은둔하던 선비 허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천하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하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산 아래 영수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때 소를 끌고 나온 소부가 그에게 귀를 씻은 연유를 묻고는 “그 귀를 씻은 물이라면 소조차 먹일 수 없다”며 위쪽 상류로 갔다는 데서 ‘기산영수’가 연유한다. 허유가 살았다는 골짜기 이름이 그대로 고사(古事)가 돼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는 은자의 덕에 대한 최고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함평에는 일신의 안위를 초개처럼 버리고 조국과 백성을 위한 선비들이 유독 많다. 자신이 살던 집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하도록 한 김철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광면 함정리에 있는 김철 선생의 생가는 독립운동 역사관으로 탈바꿈했고, 상하이 임시정부청사가 집 옆에 재현됐다.

◇무안 해제반도 너머 붉게 물든 황홀한 노을 속에 잠긴 안악 해변.
함평 관광은 서해안의 긴 뻘밭을 끼고 있는 돌머리 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함평읍의 맨 서쪽 바닷가에 있는 돌머리 해수욕장은 육지 끝이 바위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해수욕장은 뒤편에 솔숲이 울창하고 1㎞가량의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인근 안악해변도 빼어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이곳에선 무안반도 너머로 떨어지는 짙은 저녁노을이 황홀하다. 함평만이 가진 귀중한 관광자원인 해수찜 마을도 이곳에 있다.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은 함평이라지만 모평마을을 보지 않는다면 함평 여행의 진수를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평범한 농촌에서 한옥촌으로 거듭난 모평마을은 천 년 전 고려시대에 함평 모(牟)씨가 처음 마을을 일구었다. 그 후 1460년경 윤길이 90세의 나이로 제주도 귀양길에서 돌아오다 이곳의 산수에 반해 정착하면서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 됐다.

들녘을 사이에 두고 상모평마을과 하모평마을이 어우러진 모평마을은 57가구에 130여명이 사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주민의 90%가 파평 윤씨로 골목길에서 만나는 주민들은 대부분 친인척인 셈이다. 마을 중간쯤 솟을대문 사이로 ‘귀령재(歸潁齋)’라는 편액이 걸린 한옥은 파평 윤씨의 종가. 윤상용 선비가 둘째 아들을 위해 지어준 고택과 동헌 내아터에 있는 윤선식 가옥 등이 눈길을 끈다. 뒷산인 임천산 산책로 들목에는 오동나무와 대숲에 둘러싸인 영양재(潁陽齋)가 있다. 영양재의 기둥마다 걸려 있는 범상치 않는 주련(柱聯)의 문구가 이곳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마을 뒷산 자락에는 대밭과 야생 차나무 밭이 있다. 물레방아 옆에 위치한 수벽사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고려의 윤관을 모신 사당이다. 수벽사 옆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제각 안 비석은 신천강씨 열녀비. 정유재란 때 남편이 왜병에게 살해되는 것을 막으려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부인을 기리는 비석이다. 열녀비 옆 비석은 충노(忠奴) 도생과 충비(忠婢) 사월을 기린다. 노비 부부인 도생과 사월은 강씨 부부가 죽자 주인의 어린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과거에 급제시켰다고 전한다.

수벽사 앞에 조성된 숲은 모평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해보천을 따라 뿌리를 내린 팽나무, 느티나무, 왕버들 등 수령 300년의 고목 서른 여섯 그루가 겨울철 세찬 바람을 막아 준다.

모평마을은 골목길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모평헌에서 안샘을 거쳐 윤선식 가옥에 이르는 100m 길이의 골목길은 모평마을을 대표한다.

해보면에 있는 용천사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 주변에서 꽃무릇이 만개하면 이 일대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몽환적인 모습을 자아내 보는 이의 넋을 잃게 한다.

글·사진=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 여행정보

가는 길=서울을 기준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함평IC까지 가면 된다. 경부·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선운사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함평IC에서 나가면 된다.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3차례 고속버스도 운행된다.

묵을 곳=함평(지역번호 061) 모평농촌체험마을(323-8288)과 석두어촌체험마을(323-4856)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뉴샹젤리제호텔(323-1200)과 보은모텔(322-4457) 등 모텔도 다수 있다. 함평군 문화관광과(320-3733)에서 숙박시설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먹을 곳=함평은 ‘함평천지’라는 브랜드의 한우가 유명하다. 한우 생고기와 육회비빔밥은 오래전부터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비빔밥과 곁들여 나오는 선짓국도 이름난 음식이다. 세발낙지와 일명 오도리로 불리는 보리새우도 유명하다. 축협이 직접 운영하는 함평한우프라자(324-3377)에선 한우를 직접 골라서 먹을 수 있다. 나비골가든(323-0592), 대흥식당(322-3953), 천지나비회관(322-1212)등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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