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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24>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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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04 21:04:00 수정 : 2011-01-04 2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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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이 아름다운건 '사람'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급히 눈을 드러보니 믈 밋 홍운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갓한 줄이 블기 더욱 긔이하며 밤 갓던 긔운이 해 되야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 하야 블긋블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왼 바다히 끼치며 몬져 블근 긔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하며…. 만고 텬하의 그런 장관은 대두할 대 업슬 듯하더라”―(의유당관북유람일기의 ‘동명일기’ 중에서)

한때 일출을 보러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발단은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동명일기’라는 조선시대 어떤 부인이 쓴 수필을 설명하며 우리에게 이야기해준 일출에 대한 그림 때문이었다.

일출의 장엄하고도 화려한 모습, 특히 붉게 물든 바다에서 해가 길게 바다에 비친 자신의 몸을 끌며 올라오다가 바다와 마침내 떨어질 때 ‘뿅’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명징하게 솟아오른다며, 그 장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그때 들었던 그 이야기의 영상이 너무나 또렷하고 인상적이었기에 나는 언젠가 한 번 꼭 보고야 말리라 다짐했었고, 이후 그 일출을 만나러 자주 다녔다.

그러나 들었던 장면과 같은 일출을 볼 수 있는 행운은 오지 않았고, 늘 눅눅한 모래사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바다에 잔뜩 깔려 있는 희뿌연 물안개에 가려진 채 뭉그적거리며 천천히 올라오는 해만 보았을 뿐이었다.

◇어떤 회화나 음악보다 장엄하고 거룩하고 감동적인, 동네와 사람이 담긴 일출의 풍경.
그러던 어느 늦가을에 경주 감포로 갔다가, 감포에서 구룡포로 가는 도중 이견대 근처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마침 바닷가 아주 가까운 곳의 여관을 하나 찾아냈다. 방의 창문에서 동해 바다와 바다에 면한 동네가 훤히 보였고, 나는 다음날 새벽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르는 경쾌한 일출을 보는 행운을 바라며 자명종을 맞춰놓았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에 매달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다리는 종군기자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출을 기다렸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를 향해 눈을 들이대고 보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거리의 차이가 있었고, 또한 자세의 차이도 있었다. 말하자면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다와 바다 뒤편에서 출연을 준비 중인 태양, 그리고 그 앞으로 사붓하게 몸을 걸치고 있는 동네를 보게 된 것이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에 동네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해녀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물질을 준비하고, 일 나가는 아저씨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잘 차려입은 아가씨도 종종걸음으로 길을 나서며 동네가 점점 따뜻한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해는 늘 그렇듯이 물안개를 잔뜩 거느리고 아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 해가 동네를 비추고 불 쬐는 사람, 어슬렁거리는 사람, 학교와 일터로 바삐 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주황색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주 따뜻한 색이었다. 바다 위에서 경쾌하게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그 일출은 장엄하였고 따뜻했다.

나는 그날의 일출을 잊을 수 없다. 사람이 담긴 일출의 풍경은 이 세상 그 어느 회화나 음악보다도 장엄하고 거룩하고 감동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담기지 않은 건축은 공허하고, 사람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담기지 않은 정치는… 말 그대로 ‘막장’이다.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 ‘포켓에 가득 찬 행복’, 사과장수 할머니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온 도시의 시민들이 뭉친다.
영화감독 프랑크 로사리오 카프라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 초·중반에 활발히 활동했던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무척 시끌벅적하며 온기가 가득하다. 이를테면 세상이 이랬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훈훈한 영화들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옛날 영화들이 그렇듯이, 주말 늦은 밤에 방영되었던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 그의 영화를 보았다. 까맣고 두꺼운 검은 안경을 낀―엄한 학교 지도부 선생님이거나 딱딱하게 생물이나 물상 과목을 맡아 가르칠 것 같은 외모의―영화평론가의 ‘원조’ 정영일 선생이 하도 권하길래…. 그 생뚱맞은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 아래에서 스르르 올라오면서 미리 움직이고 있는 영화의 화면과 겹쳐지면, 그는 약간 어색하고 삐딱한 자세와 딱딱한 말투로 반강제적으로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고 영화를 권한다. 그 영화들은 대부분 아주 강한 예술성으로 중무장한 영화들이어서, 영화가 시작되면 ‘놓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는데, 희한하게도 카프라의 영화는 정말 맛 좋은 단 과자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심지어 중간 중간 끝나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대책 없이 낙천적인 가족들이 나오는 ‘우리들의 낙원’(You Can’t Take It With You, 1938)’부터 보기 시작하여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 1934)’,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 등을 거쳐 ‘포켓에 가득 찬 행복(Pocketful Of Miracles, 1961)’이라는 영화에서 그 재미는 절정에 이른다.

‘포켓에 가득 찬 행복’은 유럽으로 유학 간 딸에게 자신이 상류층 귀부인이라고 속이고 있는 도시 뒷골목의 가난한 사과장수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귀족과 사귀게 된 딸이 그 남자의 가족들과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들이 오면 그간 숨겨왔던―심지어 딸에게까지―진실이 발각되어 할머니 자신뿐 아니라 아무 영문도 모르는 딸 또한 곤경에 빠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를 귀부인으로 변신시키는 선의의 사기극을 벌이기 시작하여 급기야 도시 전체가 ‘거사’에 가담한다. 마지막에 도시의 시장(!)까지 현장에 나타나 유쾌한 사기극을 완성한다. 결국 그 도시의 온 시민이 항구에 나가 유럽에서 온 딸과 약혼자 일행을 성대하며 배웅하며 영화가 끝난다. 이 행복한 이야기는 성룡의 ‘미라클(1989)’이라는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카프라 감독 영화의 마지막은 늘 꼬였던 일들이 술술 풀리면서 악당도 착해지고, 응달에 따스한 봄볕이 드는 것같이 포근해진다. 빛이 머무는 듯 화면 속 세상은 그늘이 없는 세상이 된다. 어찌 보면 뻔하고 평면적인 ‘엽기적 휴먼드라마’이고 내용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인데도,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도저히 그 훈훈함에 저항할 수 없었다. 어떤 분석의 틀이나 칼도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고, 그저 그 훈훈함의 여진을 조용히 만끽할 뿐이었다.

그래서 카프라를 ‘미국의 마음’이라고 한다는데, 한국의 마음은 어디 없을까? 엽기적으로 죽이거나 폭력배들이 설치는 자극적인 것 말고, 좀 유치하더라도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인천광역시 화수동의 ‘민들레 국수집’.
‘국수집’인데 국수는 팔지 않는 식당이 있다. 인천광역시 화수동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이 그곳이다. 줄을 서지 않고 먼저 온 사람이 있어도 더 배고프다는 사람 있으면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밥값은 내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만 하고 나오면 되고, 여러 번 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식당이다. 나는 이 국수집 이야기를 지난해 초에 방송된 인간극장에서 보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기만 한 모토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국수집 아저씨’ 서영남씨의 얼굴은 멋지게 화장한 어떤 배우보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본래 수사였으나 2000년 47세 때 수도원을 나왔다. “그냥 가난한 사람들 하고 같이 사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수도원 들어갈 때처럼 가방 하나 들고 세상으로 다시 나온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오랜 교도소 생활로 세상에 적응하지도 못하는 출소자들과 함께 지내다 식당을 내게 되었는데, 공짜로 밥을 주는 식당이란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 일이지만 한 번 해봐야 되겠다” 했더니 마침 문을 연 날도 만우절(2003년 4월 1일)이었다. 전 재산 300만원을 투자해서 처음엔 국수집으로 시작했는데, 국수는 금세 배가 꺼진다고들 해서 밥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손님들이 나중에 다이어트 좀 해야 되니까 밥 말고 국수 해 달라는 날이 올 거라 믿고 간판을 안 바꾸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옷과 신발도 주고,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겐 방도 얻어준다. 심지어 방값을 빼서 두 번 세 번 도망을 가도 다시 받아주고, 술을 마셔도 ‘얼마나 술을 먹고 싶어 그러겠느냐’며 간섭하지 않는다. 어떤 부담도 강요도 없이 그저 누구에게나 마음과 문을 열어놓는 민들레 국수집은 도움받는 사람들이 규정에 얽매이거나 눈칫밥을 먹을까봐 정부 지원도 받지 않고, 어떤 후원회 조직이나 부자들의 생색내기 같은 지원도 없이, 오로지 착한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마음으로 꾸려가고 있다.

인가된 시설이 아니기에 홈페이지(mindlele.com)에는 후원을 해도 ‘연말정산 때 영수증도 발부 못 해드립니다’라는 공지가 있지만, 주변에서 혹은 멀리서도 십시일반 반찬이나 쌀을 두고 가고, 형편에 맞게 후원하는 수많은 사람과 드라마처럼 여기서 밥 먹다 형편이 좋아져 차에 쌀을 싣고 와 내려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덕분에 10명만 앉아도 좋겠다 싶었던 식당이 차츰 유명해져 하루에 300∼500명이 밥을 먹고 가고, 근방에는 동네 아이들이라면 가난한 집 아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와서 간식과 식사를 할 수 있는 ‘민들레 꿈 어린이밥집’과 어린이 도서관과 공부방, 민들레희망지원센터도 만들어졌다. 돈을 받지 않는데도 7년 만에 식당이 6배로 넓어졌고, 분점까지 생기는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있는 자의 베풂이 아니라 사랑의 나눔이라는 민들레 국수집은 토·일·월·화·수요일 등 일주일에 닷새 동안 문을 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언제든 식사를 할 수 있으며, 남기지만 않는다면 참 좋겠다 한다. 봉사하러 간다면 요일과 시간은 제한이 없고, 봉사에 대한 물질적 대가도 전혀 없으며, 동정보다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고도 한다.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아팠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 대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팠다.”(서영남, ‘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중에서)



질문: 선생님이 칠판에 ‘급식지원신청서 제출’이라고 쓰시기에 가슴이 철렁했지요. 제 이름을 부르실까 봐요. 아이들이 눈치채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경험자분들 꼭 대답해 주세요.

대답: 저도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그냥 떳떳하게 가서 말하세요. 그리고 정 창피하시면… 급식비 지원받으려고 일부러 가난하다고 거짓말했다고 하세요. 그럼 애들도 와 좋겠다. 이래요.

질문: 진짜 급식 지원받으라고 교무실로 부르는 거 싫어요. 교무실에 가면 저랑 같이 급식 지원받는 애들도 있고 창피하거든요. 급식 지원 안 받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대답: 저는 제가 먼저 신청했어요. 지원 안 받는다고 하면 안 해줘요. 님 그럼 만날 점심 굶고 다니실 거예요? 애들이 넌 왜 밥 안 먹느냐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창피한 건 잠깐이에요. 그 순간만 참으면 되고요.

“공짜로 먹는데 많이 먹을 땐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지금 저보다 더 어렵게 사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나중에 정부, 사회의 손이 안 미치는 그런 애들을 찾아서 돕고 싶어요.”

코스피가 2000을 넘어서고, 사상 최대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는 지난 연말, EBS에서 제작한 ‘공짜밥’이라는 아주 짧은 영상을 보았다. 무상급식을 받아야 하는 어린 학생들의 고민과 심경을 올린 인터넷상의 대화를 기반으로 아무런 수식 없이 꾸려서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밥을 주고 안 주고를 떠나서 밥 한 그릇 때문에 더럽고 치사함을 느껴야 하는 삶의 그늘이, G20(주요 20개국) 회의를 주도했다고, 세계 10위의 경제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나라에서 엄존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리고 그 밥 한 그릇에 얼토당토않은 의미가 덧씌워짐에 분개를 넘어서 허탈해졌다.

새해를 맞이하며 내내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그늘진 곳 하나 없이 두루두루 비치는 빛!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어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고(dixitque Deus fiat lux et facta est lux), 석가는 끝없는 번뇌와 변신 끝에 어디나 두루 비치는 햇빛(비로자나)―비로자나(毘盧遮那, 범어 Vairocana)란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로 생겨나는 빛이 온 세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 되었고, 결국 온 세상을 두루두루 구석진 곳이 없이 비쳐주는 태양이 되었다. 그 ‘태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어주는 따뜻한 온기로 존재한다.

그런 온기와 그런 밝음이야말로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이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람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비록 말이 되지는 않아도… 시시콜콜 따지고 계산하지 말고, 카프라의 영화처럼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종종 일어나면 좋겠다. 냉정한 눈으로 비판적 눈으로 다투던 반대편 사람들까지도 그 훈훈함에 굴복하여 입을 다물어버리는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빛들이 온 나라 구석구석 비춰주기를 바란다. 빛이여! 낮은 데로 임하소서!

가온건축 공동대표·‘이야기로 집을 짓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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