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는 회의 참석 예정인 판사들에게 ‘논의 자제’를 당부하는 전화를 거는 등 부적절한 처사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일선 판사들은 “법원수뇌부가 화만 키우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촛불재판’을 맡았던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은 최근 두 차례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들의 행보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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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재판’ 개입 논란을 촉발한 신영철 대법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소장파 중심의 판사회의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18일 낮 부산지법에서 판사들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

◆무기력한 법원행정처의 ‘자충수’=사법행정 전반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곳이다. 신 대법관 사태와 관련해 그동안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전국 법관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사태 해결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해결의 기미 없이 두 달 넘게 지속되자 법원행정처의 문제해결 능력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다. 되레 ‘악수’를 둬 일선 판사들을 자극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불거진 ‘논의 자제’ 전화가 대표적이다. 법원행정처 수뇌부가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로 하여금 회의 참석 예정인 단독판사들에게 ‘논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해 달라’고 전화를 걸도록 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이 법관의 독립성 침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된 셈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회의에 영향을 줄 목적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법원행정처가 신 대법관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판사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18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글을 올려 구체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일선 판사들은 법원수뇌부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촛불재판’ 판사모임 ‘또다른 뇌관’ 될까=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촛불재판 개입 논란을 일으킬 당시 형사단독 판사들 10여명이 지난 13일과 16일 두 차례 회동을 가진 것으로 확인돼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진원지로,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에 따른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이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느냐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국 법원의 단독판사들과는 달리 이들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는 점에서 그만큼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게 소장판사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두 차례 회동에서 촛불재판 당시 겪었던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모아 이를 공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 진상조사단에서 발표되지 않은 사례도 공개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일단 각 법원의 판사회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신 대법관에 대한 법원수뇌부의 대응방식이 미온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회동에 참석한 한 판사는 “현재 진행 중인 판사회의와 법원수뇌부의 대응을 본 뒤 한 차례 더 회의를 열고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필 기자 fermat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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