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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주인공 봉화 하눌마을 최원균 할아버지

입력 : 2009-03-05 09:56:39 수정 : 2009-03-05 09: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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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찾아와도 대접못해 미안하지…"
“사람 찾아오는 게 싫을 일이 뭐 있는교. 대접을 잘 몬(못)해 미안해서 그러지.”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최원균(80) 할아버지는 4일 한낮에도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영화 속의 모습 그대로 쇠죽을 끓인다며 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영화 워낭소리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가 영화 속의 소를 대신해 외양간 주인이 된 소를 어루만지고 있다.                                                                                                            봉화=전주식 기자
마을 외딴 언덕 밑에 나지막이 자리 잡은 최씨 집 앞의 밭에는 가격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한 배추가 하얗게 썩어가고 있었고, 대문도 없는 마당 앞에는 맏아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워낭소리 대장군과 여장군’ 등 장승 4개가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집 한쪽에는 워낭소리에 출연했던 소들의 집인 외양간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40년간 모진 삶을 살다 죽은 소를 대신해 외양간의 새 주인이 된 소는 한 달 전 수컷 한 마리를 낳아 이삼순(79) 할머니의 온갖 귀여움을 차지하고 있다.

“저놈은 리어카는 잘 끌어 날 태우고 다니지만 아직도 밭을 갈려면 멀었어요.”

최씨는 밭일이 서툰 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 혼자만 부지런히 쟁기를 끌어 다리 아픈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를 흘겨본다.

이어 소에게 쇠죽과 여물을 먹인 최씨는 대접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는 뜻으로 “뭘 자시지도 몬하고 안됐니더”라고 말한 뒤 소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언덕 너머의 밭으로 또 나갔다.

그러자 영화 속에서 “아이고 내 팔자야”를 연신 내뱉던 할머니가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게 없다며 함께 있던 손녀에게 커피를 한 잔 끓여 오라고 말한다.

이씨는 “영감이 몸이 아파 40여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와 5남4녀를 키우고 살았는데, 우리보다 먼저 죽은 소와 영감이 억척스럽게 일해 이래 살고 있다”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남겨주기보다는 앞길을 뚫어 주자는 생각에 원할 경우 모두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다는 이씨는 “우리 집의 주요 생계수단이었던 죽은 소가 주인을 잘못 만나 엄청나게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 “성치 못한 몸으로 밭에 일하러 나가는 영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 욕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까지 농사일밖에 한 일이 없는 영감과 할머니가 뭐라도 꿈적거려야 살지 자식 집에서 편안히 누웠다간 한 해도 못 산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일할 테니 내버려 두라고 오히려 자식들한테 부탁까지 하고 있다고 이씨는 강조했다.

봉화읍 내 모 고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는 장남 영두(56)씨는 영화 상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찾고, 경북도와 봉화군이 집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려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영화를 계기로 부모님이 갑자기 유명 인물이 됐고, 고향이 전국에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협조하겠다”는 최 교사는 “그러나 행정기관과 관람객들이 연로하신 어른들의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장해 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최 교사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방문을 열어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노인들에게 할 짓이 아니다”라면서 “예의를 지켜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식들이 차라도 대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봉화군은 영화 워낭소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하자 산간오지인 봉화를 전국에 알리는 절호의 계기로 보고 최씨 생가 앞에 있는 폐가를 정비해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지역에 있는 이몽룡 탄생지와 청량산, 영화 촬영지를 묶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봉화=전주식 기자 jsch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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