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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 (81) 나가노 고대사찰 ‘젠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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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2-02 17:18:37 수정 : 2008-12-02 17: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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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상 모신 명찰… 日 국민들 성지로 추앙
◇젠코지 본당.
1998년 2월 일본 나가노현 북서부인 ‘우시로다테야마’ 산줄기의 핫포오네(八方尾根) 스키장을 중심으로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이 겨울올림픽 당시 나가노 시민들은 유별나게 한국 선수단에게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의 목청을 돋우었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나가노에는 고대 백제와 뿌리 깊은 7세기의 훌륭한 사찰 ‘젠코지’(善光寺, 나가노시 겐센초 491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누가 나가노의 젠코지를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다”고 할 만큼 젠코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사찰이다. 일본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명찰로 젠코지를 꼽는다. 이 사찰에는 6세기 중엽인 552년 백제 제26대 성왕(聖王, 523∼554 재위)이 보내준 ‘일광삼존아미타여래’ 삼존불상을 모시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백제 아미타여래 삼존불상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직접 본 일이 없다는 비공개 비불(秘佛)로도 유명하다. 일본인들은 이 백제 비불로부터 가호받으며 평생의 소원을 빌기 위하여 젠코지 가람을 찾아가고 있다.

젠코지 본당인 아미타원(阿彌陀院) 지하실에 존귀하게 모시고 있다는 이 백제 비불은 ‘아미타삼존불’로도 부르듯, 좌우 양편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협시로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다만 최초의 사찰 명칭이 ‘백제사’였다는 아미타원 지하는 참배객이 시커멓게 어두운 디귿자형의 낭하(내내진, 內內陣, 전장 약 15m)를 걸어서 계단순례(戒壇巡り) 통로를 돌아나올 수 있다. 입장료 500엔을 내야 한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람객은 백제 비불 아미타 삼존불의 가호를 받게 된다는 ‘무량(無量) 빛의 부처님과 결연한다’는 신앙심을 안고 줄지어 지하 통로로 주저없이 들어간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긴 줄을 지어 차례로 이 법당 지하 계단 내부를 그냥 한 바퀴 걸어서 돌아나가는 것으로 평생의 가장 보람찬 불복을 누린다고 하기에. 젠코지를 다시 찾은 이날은 단풍이 한창 물들고 있는 지난 11월17일이었다. 
◇백제와 관련 깊은 젠코지가 있는 일본 나가노시 풍경.

일본 고대 문헌인 ‘현진자필 태자전 고금목록초 책자본’(顯眞自筆太子傳古今目錄抄冊子本)에 의하면 젠코지는 원래 명칭이 ‘백제사’(百濟寺)였다고 한다. 도쿄대학의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는 “젠코지는 긴메이천황(欽明天皇, 539∼571 재위) 때에 백제로부터 전래한 ‘아미타삼존’을 본존불로 삼는다는 전설이 있는 저명한 사원이다. 10번 이상이나 화재가 일어났으나 그때마다 재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國寶, 重要文化財案內’ 1963)고 말했다.

필자가 이 사실을 지난 6월13일 일본 도쿄의 학술강연(퍼시즌호텔 강연장) 때 밝혔더니 여러 일본인들이 직접 필자에게 찾아와서 “젠코지가 본래는 백제사였던 게 틀림없군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은 지금부터 40년 전에 저명한 일본 고대사학자 이마이 게이이치(今井啓一) 교수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지적하기도 했다. 즉 “젠코지는 본명이 백제사였다. 젠코지의 아미타원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 성덕태자, 574∼622)가 세웠던 사찰 모두 46원들 중에서 두 번째 사찰이며 이름은 백제사이고, 뒷날의 명칭은 젠코지로 바뀌었다. 아미타원의 본존은 일광삼존(一光三尊)인 아미타불(협시는 관음 및 세지)로서, 백제국의 성명왕(聖明王, 일본 역사에서의 호칭, 필자주)이 갖다 바친 존상(尊像)이다”(‘歸化人の社寺’ 1969)라고 했다.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6세기경 금동삼존불.

불교 포교를 위해 성왕이 왜왕실에 가져다 준 것을 이마이 교수도 버릇처럼 ‘일본서기’ 투로 썼다. 즉 ‘일본서기’ 같은 역사책에서는 미개했던 고대의 섬나라 일본으로 문화 선진국 백제가 불상을 ‘갖다 바쳤다’는 등 왜곡을 했으며 일부 학자도 이를 답습하는 것을 차제에 아울러 지적해 두련다. 이날 젠코지 관계자인 후루타 가즈코(古田和子)씨는 필자와의 면담에서 “젠코지의 본존 비불인 아미타 삼존상은 백제에서 보내온 불상입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루에 약 2만명 내외의 참배객이 저희 젠코지에 찾아옵니다. 연간 700만명이 방문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이들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나가노올림픽 이후 저희 가람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날도 수많은 관람객 중에 서양인들도 경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현재 젠코지에서 발행 판매 중인 안내서(‘善光寺諸堂參拜’)라는 책자 서두에도 보면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신슈(信州, 나가노의 옛날 지명)의 젠코지에서는 일광삼존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성지로서, 사찰 창건 이래 1400년의 오랜 세월 동안 그 법등(法燈)을 호지하여 온 고찰입니다. ‘젠코지연기’(善光寺緣起)에 따르자면 어본존(御本尊)인 일광삼존 아미타여래는 긴메이천황 13년(서기 552년)에 일본에 불교가 전래될 때에 백제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오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입니다.”

이어 젠코지 안내서에는 본래 처음부터 젠코지(善光寺)가 ‘구다라지’(百濟寺, 백제사)로서 개창되었다는 일본 고대 문헌들의 고증과는 다르게 젠코지라는 가람의 명칭이 생긴 발자취에 대해 다음처럼 쓰고 있다.

“백제 불교가 건너왔을 당시 백제 아미타여래 불상을 둘러싸고 과연 백제의 불교를 일본에서 수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로 조정에서 큰 정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당시 불교 반대파(조정의 군사 및 치안 책임자였던 대련(大連) 벼슬의 모노노베노 오코시 일당, 필자주)가 난바(難波, 지금의 오사카 중심지, 필자주)의 ‘호리에’ 강물에 갖다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 불상을 나가노에 살던 혼다 젠코(本田 善光)가 서기 642년에 그 강물에 가서 건져내어 이 고장으로 모셔와서 자기 집에다 안치했습니다. 그후 곧 아미타여래 불상은 비불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서는 이 시기를 ‘긴메이천황 13년’, 즉 서기 552년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 고대 왕실과 불교 문헌들은 서기 538년에 백제 불교가 백제 성왕에 의해 전래되었다고 쓰고 있다. 또한 앞에서 인용했듯이, 오타 히로타로 교수와 이마이 게이이치 교수는 7세기 중엽이 아닌 6세기 중엽에 젠코지가 쇼토쿠태자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밝혔다는 것도 지적해 둔다.

더구나 젠코지 안내서에서는 “안타깝게도 젠코지의 초창을 설명해 주는 확실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12세기 후반 편집된 ‘이로하자류초’(伊呂波字類抄)에는 8세기 중엽에 젠코지 본존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영불(靈佛)로서 중앙에도 알려지고 있었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한반도식 좌법으로 있는 젠코의 부인상(오른쪽).

여하간 중대한 사실은 지금의 젠코지 당사가 직접 제작 판매하는 두 종류의 책자에서 비불인 “일광삼존 아미타여래상은 백제에서 보내온 불상이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현재 일본의 ‘호류지’(法隆寺) 등 저명한 여러 사찰들이 일본 국보가 된 소장 백제 문화재들에 대해 사찰 안내서에서 일체 ‘백제 불상’ 등의 명칭을 표시하지 않고 있는 게 오늘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백제에서 보내준 불상’을 엉뚱하게도 그들이 만든 것인 양 거짓 선전하고 있어서 식자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젠코지를 세웠다고 하는 혼다 젠코와 그의 부인과 장남 등 가족은 이 가람에서 높게 존숭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찰 본당의 우측 맨 안쪽에는 ‘어삼경간’(御三卿間)이 있다. 여기 모셔진 것은 세분의 조각 좌상이다. 중앙은 혼다 젠코경(卿)이고 그 우측은 부인인 야요이고젠(彌生御前), 그리고 좌측은 장남인 요시스케경(善佐卿)이다. 젠코지 발매의 또 한 권의 책자(善光寺 事務局 監修 ‘よくわかる善光寺參り’ 新晃社, 2000년 발행)에 보면 혼다 젠코의 부인인 야요이고젠의 좌상의 앉은 자세를 가리켜서 “야요이고젠께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계신 것이 주목됩니다. 이것은 조선반도의 치마저고리(チマチヨゴリ=원문)를 입은 귀부인의 정식 좌법(座法)입니다”라고 굳이 밝히고 있다. 이것은 부인은 말할 것도 없이 혼다 젠코 일가가 한반도, 특히 백제 도래인임을 지적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나가노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일본 국민의 수호불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비불 일광삼존 아미타불은 과연 어떻게 생긴 것일까. 현재 비불을 모방하여 제작했다는 것이 가마쿠라 시대(1192∼1333)의 청동 불상인 ‘아미타삼존상’으로서 본당에 모신 전립본존(前立本尊, 중요문화재)이라는 불상이다. 물론 이 전립본존불도 늘 공개하는 것은 아니며, 7년에 한 번씩만 일반에 공개하는데, 2002년에 이어 내년 4월5일부터 5월30일까지 공개하게 된다. 참고 삼아 살펴보자면 백제 왕도였던 부여땅 부소산에서 발굴된 6세기 금동삼존불(부여박물관 소장)과 젠코지의 비불 아미타 삼존상은 혹시 서로 흡사한 모습은 아닌가 추찰해 보고도 싶다.

이 백제 가람 젠코지의 본당은 높이가 29.54m, 약 30m라는 거대한 목조건조물로서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크기를 자랑하는 국보이다. 가장 큰 것은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전이다. 젠코지는 나가노역 앞에서 직선 도로로 약 3㎞ 언덕에 자리한다. 문전 거리의 상점가로부터 입구인 인왕문을 들어서면 삼문(三門) 정수리에 ‘젠코지’라는 한자어의 편액이 뚜렷하고, 삼문을 지난 곳에 웅장한 본당이 참배객을 압도한다. ‘젠코지’라는 글씨는 1801년에 일본 왕자(澄法親王)가 썼다는데 5마리의 비둘기 모양으로 획을 그은 것이 유명하다. 그래서 ‘구자액’(鳩字額)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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