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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애야말로 군인들이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동기”라는 마셜(S.L.A. Marshall)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 한편 전투원 중 단 15~20%만 교전에서 총을 쏠 수 있었다는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한동안 반박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가 그 어느 누구보다 실제 전투를 깊게 관찰한 군인이자 역사학자였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미 육군 역사 병과 소속의 역사 장교로서 활동한 마셜은 직접 전투를 관찰하고 작전 문건들을 수집했으며 장병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투의 역사를 기록했다.

 

여기서 인터뷰가 전투에 지친 장병들에게 심리적 치유라는 부수적 효과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과정은 미 육군이 1차대전 때부터 도입한 역사 장교 제도의 일환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전투 종료 직후 ‘전투상보’를 발간하여 미래 전투를 위한 교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미 육군 군사사연구소(Th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에서 주관하는 전적지 답사의 모습. 이들의 답사 장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미 육군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역사 장교 제도를 체계적으로 보완·발전시켰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현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대반란전의 성공에 직결된다는 인식 아래, 민간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를 포함한 학자 그룹을 전쟁에 파견하였다. 군 역사가는 현장 전문가로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 역할을 수행하며 실제 작전에 참여했다.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은 역사에 반영될 수 있기에, 현장에 있던 지휘관과 참모들은 역사가의 평가를 의식하기도 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더 깊이 공부하고 언행에 신중을 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미 육군의 경우 역사가들을 부대사 장교, 군사 파견대, 사령부 역사가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활용하고 있다. 군사사 연구소는 역사 연구의 메카로서 군 역사가의 양성과 활동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이들이 수집한 자료를 활용해 미 육군의 공식 전쟁사를 출간하며,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군인들이 군사사를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미 육군이 역사가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이유는 군사사 연구가 현재와 미래 전쟁에 주는 교훈과 실용적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세계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기록과 역사가 ‘힘과 권력’이라는 진리를 미국이 잘 알고 있어서이다. 미국이 태평양전쟁 직후 일본에서 일본 제국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문서를 수집하고, 6·25전쟁에서도 평양을 함락시킨 직후 북한 관련 문서를 수집했던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금도 필자처럼 군사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과거 미 육군의 역사 장교들이 생산한 수많은 문건을 찾아 활용하고 있으며, 자국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각국의 수많은 학자나 정부 기관 관계자들이 미국의 국립문서고를 방문하고 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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