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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오지에서 잠자고 있는 문화재들

입력 : 2008-11-19 18:07:41 수정 : 2008-11-19 1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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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빙연구원
일전에 전북 임실군 지사면 일대에서 선사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집단 고인돌군이 발견됐다고 고인돌사학회에서 알려와 급히 현장을 찾았다. 비교적 오지로 알려진 지사면에서 그것도 한반도 남부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북방식이 발견되고 남방식과 개석식 고인돌 등 30여점의 고인돌이 밀집돼 있어 조사단원을 놀라게 했다. 대부분 거북 등 모습의 뚜껑돌 형태에 별자리로 보이는 성혈(바위구멍)이 발견되었고, 표면을 매끄럽게 한 후 부호 표시로 보이는 문양(바위그림)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보고된 예가 없다. 한국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4만개 이상으로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분포돼 있고 지사면처럼 특이 고인돌이 집중돼 있는데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매우 특이한 예이다.

한 조사단원이 영천마을에 오래된 들돌(몸의 단련을 위해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이 있다 하여 함께 찾아 나섰는데 들돌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도로 쪽을 향해 서있는 큰 돌을 보더니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돌 전면에 성혈 12개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2m쯤 되는 돌을 자세히 살펴보니 선돌이 틀림없었다.

선돌은 종교적 장소에 의도적으로 곧추 세운 돌을 의미하므로 이 돌이 세워진 곳은 흔히 특별한 장소로 인식된다. 선돌의 개념이 소도, 솟대로 변한다고 추정하는데 삼국지 ‘위지 한전’에 소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선돌의 크기와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연마하지 않은 자연석은 물론 인간의 힘이 다소 가해진 것도 있다. 문자나 그림이 있는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영천마을의 선돌은 십이지간을 뜻하는 성혈이 12개나 있어 세계적으로 희귀한 예이다. 성혈의 크기는 직경 8∼10㎝로 매우 큰 데다 깊이도 2∼3㎝나 될 정도로 움푹 들어가 있어 예사롭지 않은데 조사단은 문화재로 보호될 값어치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영천마을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선돌은 말 그대로 기구한 삶을 살아 왔다. 원래 이 선돌은 사액사원(임금이 친필로 쓴 현판을 내린 서원)으로 유명한 영천서원 앞에 있는 개울의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개울은 현 위치에서 마을 안쪽으로 4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제3공화국 시절의 새마을운동 때 개울을 복개하면서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선돌의 한 면이 매끄러워진 이유로 보이는데 버스 정류장의 차단용으로 설치된 것은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자동차가 자주 농지를 침범해 훼손하자 마을 주민들이 여러 개의 큰 돌을 버스정류장 앞에 세워 자동차가 농지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더욱이 주민들은 선돌을 세우기 위해 바닥에 콘크리트를 부은 후 고정시켰고 이때 성혈의 일부분도 메워졌다는 설명이었다.

빨래판으로 사용될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돌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문무왕릉비,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중원고구려비가 있다. 지사면의 고인돌과 선돌을 볼 때 우리나라에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빨래판은 물론 눈여겨보지 않았던 인근에 있는 유물에 우리 모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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