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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속에 멈춰진 세월, 되살아난 ‘가죽의 예술’

입력 : 2008-01-03 09:03:21 수정 : 2008-01-03 0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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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피공예 명장 박성규씨
◇박성규 칠피공예 명장이 2일 자신의 공방에서 정부에 납품한 새 국새 보관함과 똑같이 만든 함을 들고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칠피공예(漆皮工藝)를 아세요?’ 아마도 칠피공예는 일반인들에겐 무척이나 생경한 이름일 것이다. 낯설고 결코 쉽지 않은 전통공예에 박성규(56)씨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서 한송공방을 운영 중인 그는 2006년 칠피공예로 명장에 올랐다.

칠피는 ‘칠(漆)’과 ‘피(皮)’의 합성어에서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칠은 옻칠을 말하고 피는 가죽을 말한다. 가죽에 옻칠을 하는 공예를 뜻한다는 얘기다. 일반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칠피공예의 역사는 깊다. 가장 오래된 칠피공예는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장식이다. 삼국시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 칠피의 전통은 조선 중기까지 내려오다 근세 들어 아예 자취를 감췄다.

전북 익산 출신의 박 명장은 오로지 혼자서 칠피의 길을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익산에서 3년가량 농방에서 일하다 상경, 서울 은평구의 작은 공방에서 나전칠기 기술을 익혔다. 그런 뒤 박물관에 전시된 가죽서류함을 보고는 칠피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비록 곰팡이가 퍼렇게 내려앉은 ‘고물’ 서류함이었지만 더없는 고상함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칠피공예를 익혀 25년간 열정을 쏟고 있다. 그가 칠피공예 명장이 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칠피공예에 관한 기록이나 문헌자료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수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칠피공예를 복원해 냈다.

칠피공예 작업 공정은 우선 원피를 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원피를 적절한 크기로 자른 뒤 밑그림을 그린 백지(백골)를 붙여 모양대로 잘라낸다. 초벌로 생옻칠을 한 가죽 위에 옻칠을 한다. 방부와 방수 작업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 위에 멋내기 작업이 이어진다. 작품에 따라 나전 상감이나 조각 등의 과정을 거친다. 옻칠로 마무리하고 광내기 작업이 끝나면 드디어 칠피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낸 칠피공예 작품들은 크고 작은 행사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칠피공예품들은 전국의 박물관 등에서 전시되고 있다. 박 명장은 현재 유성룡 선생의 갑옷을 재현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 국새 제작단에 참여해 새 ‘국새보관함’을 만들어 정부에 납품하기도 했다.

고양=이창희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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