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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23>나라 땅 사쿠라이시에 신라神 모신 사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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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5-26 22:39:20 수정 : 2008-05-26 22: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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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신라 대국주신 모신 대신신사 나라(奈良) 땅 사쿠라이시(櫻井市)의 사쿠라이역 인근 ‘미와초’에는 대신신사(大神神社·오미와신사)가 우뚝 서 있다. 이 사당에서 모시는 신주는 신라 계열의 신 ‘대국주신(大國主神)’. 대신신사는 나라 지방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당이다. ‘대국주신’은 이름이 ‘대물주신(大物主神)’ 등 일곱 가지나 되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신(靑木周平 교수 외 ‘日本の神の事典’ 1997)이다. 신라신 대국주신의 신체는 이 대신신사의 뒷산인 ‘미와산’(三輪山 표고 467m)이라는 산 그 자체라고 한다. ‘미와산’ 그 산 전체를 대국주신의 몸뚱이로 삼고 제사 지내는 것이다(久米邦武·1839∼1931). 나라 땅의 미와산이 신산(神山)이 된 발자취는 일본 왕실 편찬 역사책 ‘일본서기’(720)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제10대 스진 천황(崇神·BC 97∼30·숭신 천황)이 꿈에 신라 신 대국주신을 만나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숭신 천왕 5년 나라 안에는 전염병이 많이 돌아 백성 중 사망자가 반 이상에 이를 지경이었다. 왕 6년에는 백성 중에 떠나가는 자, 혹은 반역하는 자까지 생겨서 덕으로 다스리려고 했으나 어려웠다. 그래서 천황은 아침저녁마다 천지신명에게 기도드렸다. 신점(神占)도 쳤다. 이때 신의 말씀이 ‘백습희명(百襲姬命·모모소히메노미코토)’을 통해 내려졌다.
“어째서 천황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느냐? 만약에 그대가 나를 공경하며 나에게 제사를 지내 준다면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로다.”

◇신화에 나오는 대국주신의 뱀이 산다는 ‘뱀신의 삼나무 고목’·巳の神衫). 대신신사 경내 한가운데 위치한다.


천황이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어느 신이십니까?”
“나로 말하자면 야마토 지역 경내에 살고 있는 신이다. 내 이름은 대물주신(대국주신)이로다. 만약에 그대가 내 아들 대전전근자(大田田根子·오타타네코: 대국주신이 이쿠타마요리히메와 남몰래 정을 통해서 낳은 아들)를 시켜서 나에게 제사를 지내준다면 즉시 나라가 평정될 것이로다.”
천황은 기뻐했다. 즉시 천하에 포고령을 내려서 대국주신의 제주가 될 대전전근자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스에무라’에서 대전전근자를 찾아냈다. 천황은 몸소 그 고장에 거동하여 왕족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대전전근자에게 직접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의 자식이냐?”
“아버지는 대국주신이며 어머니는 이쿠타마요리히메라고 합니다”
숭신천황은 “아아, 과인은 틀림없이 번영할 것이로다”라며 기뻐했다.
대전전근자를 제주로 삼아 대국주신에 제사 지낼 준비가 진행되면서부터 고장마다 질병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라 안은 진정됐다. 오곡은 풍성하게 여물었다. 12월20일 천황은 대전전근자로 하여금 대국주신을 제사 드리게 했다. 대국주신을 제사 드린 곳은 나라땅 미와산 기슭에 마련한 신전, 즉 지금의 ‘대신신사’ 터전이다.

◇‘이즈모대사’에서 대국주신 신주의 위폐가 그곳에서 바다 건너 서쪽(고국 신라 땅)을 향하고 있다는 설명판.


대국주신의 신체라는 미와산에 담긴 신화도 주목된다. “어여쁘고 단정한 ‘이쿠타마요리히메’에게 남의 눈을 피해 남자가 밤에만 찾아왔다. 부모는 딸의 배가 부른 것을 눈치채고 “너는 어떻게 혼자서 아기를 가졌느냐?”고 묻자, 그녀는 “매일 밤에만 찾아오는 이름 모를 사람과 함께 지내다가…”라고 했다. 부모는 적잖이 당황하더니 그 젊은이의 신원을 알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붉은 흙을 네 방 바닥에 뿌리고 삼실을 바늘에 꿰어 그 사람의 옷에다 몰래 꽂아 두어라”고 했다. 그녀는 부모가 가르쳐준 대로 했다. 남자가 돌아간 이튿날 아침에 보니, 삼실이 문고리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청년은 뱀이었다. 삼실을 따라갔더니, 나라의 미와산에 이르자 그곳 신을 모시는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즉 신이 뱀으로 변신하여 매일 밤 문고리 구멍으로 그녀의 방에 찾아들었던 것. 이쿠타마요리히메는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이름이 ‘대전전근자(오오타타네코)’이고, 아버지인 신은 ‘대국주신’이었다.
우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후백제왕 ‘견훤’의 탄생 설화도 이것과 유사하다. 광주 땅 북촌에 살던 어여쁜 아가씨가 임신하자, 아버지는 “밤마다 네게 찾아오는 남자의 자줏빛 옷에다 기다란 실을 바늘에 꿰어 몰래 꽂도록 해라”고 말했다. 아침에 실을 따라 북쪽 담 밑에 나가 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아가씨가 낳은 사내아이가 견훤이다.

◇미와산이 보이는 대신신사 어귀의 ‘미와명신(三輪明神)’의 석등.


숭신 천황은 신라 계열의 왕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숭신 천황의 왕자가 뒷날의 제10대 ‘수인(스이닌) 천황이며, 수인 천황 당시 신라의 천일창 왕자가 신라로부터 일본 왕가 최초의 ‘삼신기(三神器)’와 ‘곰의 신리’(히모로기·신의 제단)를 신라로부터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22회 연재 참조). 와세다대 사학과 미즈노 유(水野裕) 교수는 천일창 왕자가 수인 왕조 때 칼 등 삼신기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온 데 대해 “칼은 일찍이 금속기 문화가 있었던 옛날 귀화인계의 대장간 기술민 집단, 이를테면 천일창 전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신라계 귀화인들의 신보(神寶)였다고 생각한다. 옥과 거울과 칼이라는 신보를 천황이 갖추어 갖는 데서 비로소 주권의 표상으로서 천황가의 ‘삼종의 신기’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天皇家の秘密’ 山手書房, 1977)고 나라 지방에서 등장한 초기 왜 왕실의 신라인 지배의 배경을 지적했다.
“대국주신은 소잔오존(素盞烏尊·스사노오노미코토)의 아들 신 혹은 5세신 내지 6세신으로 알려지고 있다”(가도가와판 ‘日本史辭典’ 1976)는 기록도 주목된다. 도쿄대 사학과 구메 구니다케 교수는 “소잔오존(스사노오노미코토)은 하늘나라(高天原)에서 신라 땅 우두산(牛頭山)으로 내려간 신라신으로서, 배를 만들어 바다 넘어 일본 이즈모(出雲) 땅으로 건너왔다”(‘神道は祭天の古俗’ 1891)는 논문을 발표해 교수직에서 추방당했다(사키사카 이쓰로 ‘嵐のなかの百年―學問彈壓小史’ 1970). “대국주신은 바다에 빛을 비추며 건너온 신”(安萬呂 편저 ‘古事記’ 712)이라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왕실 역사에서도 전하고 있듯이 대국주신은 신라에서 바다를 건너온 신이다. 대국주신은 이즈모 지방에서 활약하다 나라 땅으로 옮아간 고대 신이다. 이즈모의 이름난 큰 사당인 이즈모대사(出雲大社)에도 그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마쓰마에 다케시(松前健) 교수는 “대전전근자의 직계 후손으로 대신신사의 궁사(宮司)를 세습해오는 오미와(大神)씨의 가문은 본래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이거나 한국에 연고가 깊으며, 5세기 이후에 신산(神山) 미와산의 제사권(祭祀權)을 장악했다고 본다”(松前健 ‘出雲神話’ 講談社, 1976)고 지적했다.

◇대국주신의 동상(왼쪽), 대국주신의 신주 모신 ‘청명전’.


일본의 ‘나라(奈良, なら)’라는 땅 이름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도 ‘야마토’의 지배자 신라인들이다. 일찍이 일본 학자들도 문헌을 통해 시인하는 사실이다. 1900년 일본의 역사 지리학자 요시다 도고(吉田東伍·1864∼1918)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라(奈良)는 국가라는 뜻이다. ‘나라’는 야마토 지방의 옛날 땅이름이며, 상고시대에 이 고장을 점령한 한국 출신 이즈모족의 땅 이름이라고 생각한다(‘大日本地名辭書’). 요시다 도고 박사뿐이 아니다. 일본의 이름난 고어학자였던 마쓰오카 시즈오(松岡靜雄) 교수도 ‘고어대사전’(1937)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라(ナラ)는 한국어 ‘나라’라는 말에 국가라는 뜻이 있으므로, 상고시대에 이 지방을 점거한 자가 붙인 이름일 것이다.” 마쓰오카 시즈오 교수는 일본어 ‘ナラ’가 한국어의 ‘나라’라고 애써 한글로까지 그의 ‘일본 옛말 큰사전’에 써넣었다.
동해를 건너 이즈모로 진출한 신라인 지배자들은 계속 남하하여, 멀리 나라 땅을 점거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한자어의 ‘내량(奈良)’을 일본어 발음의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 ‘나라’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지 나정(蘿井)의 옛 이름이 나을(奈乙)이었다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나을은 제21대왕 소지 마립간이 박혁거세의 신궁(487)을 세운 성지다. 이 성지는 한일 양국을 통틀어 최초의 신궁(큰 사당)이기도 하다.
나라로 명명된 시기는 2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일본의 실질적인 초대 왕은 3세기 전후에 통치한 신라인 숭신 천황으로 본다. 숭신천황이 신라인이란 것은 필자가 이미 ‘일본문화사’(서문당 1999)에서 밝힌 바 있다. 오사카시립대 사학과의 나오키 고지로(直木孝次郞) 교수는 “제1대 진무 천황부터 제9대 가이카 천황까지는 조작된 가공적인 천황들이다”(‘日本神話古代國家’ 1993)라고 단정했다. 그러므로 제10대 숭신천황이 초대 왜왕이다.
와세다대 사학과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 교수도 일찍이 “9명의 조작된 왕들이다”(‘古事記及日本書紀の硏究’ 1924 초판)라고 지적했다. 도쿄대 오바야시 다료(大林太良) 교수는 “숭신은 처음으로 인간이 지배하는 국가를 개시한 왕이며, 대전전근자를 통해 오미와산의 대국주신을 모신 최초의 왕이다”(‘日本神話の構造’ 1987)라고 결론지었다.
(다음주에 계속)
한국외대 교수 senshy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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