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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잃은 문화재 복원] 상원사 복제종 겉모습만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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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27 09:45:27 수정 : 2011-04-27 09: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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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기법 사용 따라 무게·종소리 원종과 큰차 최근 상원사 복제종의 무게를 측정하던 경기무형문화재 제47호(주성장) 이완규(56)씨는 깜짝 놀랐다. 서울대 공대 나형룡 명예교수가 2005년 발표한 ‘상원사 동종의 종합적 검토’ 보고서에는 원 동종의 무게가 1226㎏으로 기록돼 있는데, 복제종은 이보다 222㎏ 무거운 1448㎏으로 실측됐기 때문이다.

보통 복제종은 실리콘으로 모형을 떠서 만들어 원종보다 5% 정도 부피가 작아진다. 무게도 당연히 줄어들어야 한다. 상원사 복제종은 반대로 원종보다 무겁다. 이는 상원사 복제종이 밀랍주조기법이 아닌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주형절삭법(일명 마와시법)으로 제작돼 두께가 원종보다 두꺼워진 탓이다.

밀랍주조기법은 거푸집을 일체형으로 만들기 때문에 종 두께가 일정해 소리도 아름답다. 반면에 주형절삭법은 거푸집을 외형과 내형으로 만들어 결합하기 때문에 종 두께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상원사 복제종은 겉모양만 비슷할 뿐 무게와 종소리가 원종과 큰 차이를 보여 더 이상 타종하지 않고 있다.

원광식씨는 “주철장이 되기 10여년 전에 상원사 복제종을 만들었는데, 당시는 밀랍주조기법 기술이 없었다”며 “지금은 기술이 있어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725년(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상원사종은 우리나라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면서도 우리 범종 주조 기술의 최고 전성기 작품으로 손꼽힌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은 상원사 동종보다 46년 후에 만들어졌다. 공예기술은 대체로 초기에는 예술성이 좀 떨어지다가 기술의 진보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이룬다. 고려청자도 9세기부터 만들어져 12세기 최상품이 빚어지다가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유독 범종만은 태두가 곧 최고 작품이자 전통 종의 전형(典型)이 됐다. 상원사 동종이 ‘한국 범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다.

높이 167㎝, 구경 90.3㎝인 상원사 동종은 항아리를 엎어 놓은 듯 위가 좁고 배부분이 불룩하게 나오다 종구(鐘口) 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지는 형태다.

종의 가장 윗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용뉴가 있는데, 용의 새끼(포뢰)가 목을 구부리고 입을 벌려 마치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이다. 몸체 위쪽과 아래쪽에 문양 띠가 둘러져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선인(仙人)들이 장식되어 있다. 위쪽 문양 띠 바로 아래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이 4개가 있고 그 안에 9개씩 연꽃봉우리가 돌출되어 있다.

상원사종의 이 같은 특징은 합금 비율(구리 78∼84%, 주석 13∼16%)과 함께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300여개에 이르는 후대 종들에 영향을 미쳤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현대기술로 상원사 동종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외형적인 것은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며 “신라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이어져 온 밀랍주조기법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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