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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잃은 문화재 복원] (2)특허논쟁으로 번진 범종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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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27 09:40:47 수정 : 2011-04-27 09: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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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해야 할 무형문화재 기술이 특허라니… 당국은 뒷짐만 전통적인 범종 기술의 재현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범종 전문가들끼리 논쟁을 벌이다가 특허 소송으로까지 사태가 번졌다. 경기도 무형문화재가 ‘밀랍을 이용한 범종의 주조방법’으로 특허를 받자 국가 무형문화재가 법원에 특허취소 청구소송을 낸 것. 이 과정에서 국가 무형문화재도 자신의 범종 제작기술에 대해 특허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후손에게 전승해야 할 기술에 대해 무형문화재가 다른 사람에게 배타적인 권리인 특허를 취득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문화재청도 무형문화재의 특허 소유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개인 권리를 강제로 빼앗는 것처럼 비칠까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전통기술은 특허가 안 된다”

범종 제작부문의 인간문화재인 주철장 원광식(69)씨는 지난해 6월 경기무형문화재(제47호·주성장) 이완규(56)씨가 ‘밀랍을 이용한 범종의 주조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사실을 알고 두 달 뒤 법원에 소송을 냈다.

원씨는 2001년 주철장이 될 당시 범종을 만들면서 시연한 전통 방식이고 중국의 ‘천공개물’(天工開物·명나라 송응성이 집필한 기술서)에 나온 것이므로 특허 출원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원씨는 “이탈리아와 인도에서도 이씨가 하는 것처럼 일체형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종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특허 출원한 범종 제작방식은 범종 거푸집 전체를 내화벽돌로 감싸 뜨겁게 달군 뒤 쇳물을 부어 천천히 식히는 게 핵심이다. 이 방식 덕인지 이씨가 만든 범종은 다른 방식으로 만든 종보다 여음이 길어 소리가 아름답다는 평가다. 이씨는 주성장이 되기 전인 2007년 8월 특허를 출원했다.

그동안 우리 범종 제작업체들은 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주형절삭법’을 이용, 내형과 외형 거푸집을 따로 만들어 조립해서 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씨는 밀랍으로 불상이나 향로 등을 만들어 오다가 자연스럽게 범종도 밀랍 방식으로 제작하는 기술까지 익혔다고 한다. 항아리를 엎어 놓은 듯한 모양의 상원사 동종도 기존 기술이나 학설로는 재현할 수 없지만 자신이 고안한 방법으로는 가능하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원씨도 2006년 4월 ‘범종의 로스트왁스 주조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방식은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와 왁스, 세라믹(콜로이달) 같은 현대적 재료를 쓴다는 점에서 인간문화재가 범종을 현대식으로 만들어 판다는 비난을 받는 빌미가 됐다.

원씨는 “중소기업청 지원을 받아 기술을 개발해 특허출원했는데, 범종 제작업체를 운영하면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기술이 뛰어나 세계로 범종을 수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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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 지시도 안 따르는 문화재청

범종 기술을 둘러싼 특허 논쟁이 벌어지자 문화재청이 수습에 나서 지난해 11월17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가 열렸다. 문화재청 엄승용 문화정책국장과 무형문화재과 김종수 사무관, 원씨, 이씨, 범종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원씨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전통기법이 특허가 될 수 있느냐”며 특허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이씨는 “내 방식이 전통기법인지, 아닌지 모른다. 내 기술이 전통 방식이라면 모두가 공유하도록 특허를 내놓을 생각이 있다”고 맞받았다. 이씨는 오히려 “정부지원금까지 받는 무형문화재가 현대 기법으로 특허를 낸 건 잘못”이라면서 “원씨가 주철장이 되면서 시연했다는 방식으로는 범종을 만들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갑론을박 끝에 원씨와 이씨의 특허를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원씨의 범종 제작 방식을 기록한 책인 ‘주철장’ 내용을 일부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이건무 당시 문화재청장은 “협의가 잘 됐다”는 엄 국장 보고를 받고 “(다시 논란이 생기지 않게끔) 특허를 포기하지 않으면 무형문화재를 해제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았고 ‘주철장’ 책 내용도 수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엄 국장은 “국제적으로 지적재산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특허에 관해 무형문화재들의 다양한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회의에 참석했다”면서 “원씨나 이씨처럼 특허를 내면 무형문화재 전승에 손해가 되므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주철장’ 책 내용대로 범종을 만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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