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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잃은 문화재 복원] <1> 복원 범종, 알고보니 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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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25 10:37:43 수정 : 2011-04-25 10: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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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 대신 주물용 왁스·세라믹 소재로… ‘우리 소리’ 사라져 ‘전통종 복원은 후손들의 영원한 숙제인가?’

5개의 국보·보물급 범종의 복원·복제종이 현대 방식으로 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기법이 사라진 탓이다. 정부는 2001년 전통적인 범종 제조방식인 밀랍주조기법을 재현했다면서 원광식(69)씨를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러나 범종 전문가들은 기술상 한계로 원씨가 전통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는 종은 최고 1m 높이밖에 안 되는 중·소형 범종이라고 보고 있다. 낙산사종 등 1m가 넘는 대형 종을 옛 방식대로 만들려면 엄청난 제작비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 묵묵히 전통 범종 재현에 나설 장인이나 후원 기관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통방식 복원 필요” vs “신재료도 무방”

24일 강원도 양양군청과 종 제작업체인 성종사가 펴낸 ‘낙산사 동종 복원 제작 보고서’ 등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복원·복제된 보물급 범종 5개 중에 상원사종을 제외한 4개 복제·복원종에는 ‘세라믹 몰드기법’ 또는 전통방식인 밀랍주조기법과 혼용하는 방식이 쓰였다.

M16 소총 등 정밀기계 주조에 쓰인 세라믹 몰드기법은 2000년대부터 종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내화력이 좋은 세라믹(콜로이달)을 첨가해서 주물사를 만든다. 상원사종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도입된 주형절삭법(일명 ‘마와시’법)으로 만들어졌다.

원씨는 낙산사 동종을 만들 때 그동안 복원·복제한 범종보다 크기가 크다 보니 내화도가 떨어지는 전통 흙으로 주조할 경우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자문위원회를 거쳐 세라믹 소재를 썼다는 입장이다. 원씨는 주물용 왁스로 몸체를 제작한 데 대해서는 “밀랍을 쓰는 게 전통방식이지만 필요한 양의 밀랍을 구하기가 어려워 자문위원회를 거쳐 재료를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원씨는 내소사종과 청룡사종도 같은 이유에서 낙산사종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원씨는 “낙산사 동종은 내형 제작→밀랍모형 제작→주물사 도포→밀랍 제거→내·외형 조립→쇳물 주입 등 전통방법의 프로세스로 했다”면서 “다만 범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통 소재인 밀랍과 흙 대신 주물용 왁스와 세라믹 주물사를 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나형룡 명예교수는 “낙산사 동종을 복원할 때 복원에 초점을 맞췄지, 전통이냐 현대냐 등 공법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며 “기술은 발전하므로 옛날보다 좋은 재료가 있으면 써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복제에도 카피(Copy)와 레플리카(Replica)가 있는데, 레플리카는 사라지거나 손상되어 보관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범종을 복제할 때는 그 종에 가깝게 재현해야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 기법 뛰어넘지 못하는 현대 기술

범종은 설계→문양·용뉴 조각→거푸집 제작·조립→쇳물 거푸집 주입→거푸집 제거 과정을 거쳐 만든다. 이 과정에서 거푸집 제작 방식이 가장 중요하다. 거푸집 제작 방식에 따라 문양과 종소리가 달라진다.

전통적인 기법은 밀랍주조법과 회전주형절삭법이다. 밀랍주조법은 내형틀 위에 종의 형태를 밀랍으로 만든 뒤 흙과 섬유질 등으로 외형틀을 만든 열을 가해 밀랍을 녹여내고, 그 공간에 쇳물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불상처럼 섬세한 문양 표현이 가능하고 종 두께가 일정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회전주형절삭법은 회전축을 이용해 내·외형 거푸집을 따로 만든 뒤 3등분한 외형틀을 내형틀에 덧씌우는 방법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종 제작 방식으로 대형 범종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 종과 같은 화려한 문양이 없고 가로와 세로띠로 구성된 선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소리도 밀랍기법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는 이 방식을 우리 고유 방식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 범종 제작 방식이 사라지면서 장인들은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로 종을 만들었다. 회전주형절삭법을 일부 이용하지만 주물사 등은 현대식 재료를 썼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자연경화수지를 주물사로 쓰는 ‘펩셋 기법’이 도입됐지만 청동의 강도가 약해져 소리가 좋지 못하다. 지금은 이를 개선한 ‘세라믹 몰드기법’이 쓰인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ship6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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