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빈 수증기와 만나 비구름 제14호 태풍 ‘덴빈’은 강풍을 동반했던 제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전국 곳곳에 많은 비를 뿌렸다. ‘역대 5위’로 기록된 초속 50m 이상의 강풍을 몰고 온 ‘볼라벤’보다 바람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더 많은 강수량을 남겼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덴빈이 ‘비 태풍’이 된 것도, 한반도로 향한 것도 볼라벤 때문이다. 비구름과 이동경로에서 모두 볼라벤의 영향을 받았다.
비구름은 덴빈이 가진 수증기와 대기 중의 찬 공기가 만나면서 생겨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볼라벤이 북상하면서 따뜻한 공기를 모두 빨아들였고, 그 공간에 중국에서 내려온 차가운 대륙 고기압이 자리했다”고 밝혔다.
볼라벤은 우리나라에도 찬 공기를 남겨 놓았다. 볼라벤이 휩쓸고 간 자리에 5㎞ 상공에 있던 차가운 공기가 내려왔고 이 역시 덴빈과 만나 비구름이 됐다.
덴빈은 지난 19일 필리핀 마닐라 북동쪽에서 만들어질 때만 해도 북동진해서 곧바로 중국으로 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볼라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대만 남서쪽 바다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면서 볼라벤의 북상을 기다렸다. 이후 중국의 대륙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 사이의 빈 공간을 파고든 볼라벤은 덴빈이 올라오기 쉽도록 ‘태풍 길’을 남겼고 덴빈은 이 길을 따라 북상했다.
북상 과정에서 육상으로 방향을 튼 것도 호우의 원인이 됐다. 이는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데 이 고기압이 남쪽으로 수축하면서 덴빈의 진로가 동쪽으로 더 치우쳤다”면서 “태풍이 육상을 지날 경우 산맥 등과 부딪쳐서 많은 비를 뿌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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