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에 대한 분노가 배어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1988년 지강헌 탈주사건을 계기로 유행어가 됐다. 벌써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법치주의는 여전히 설 자리가 없다. 가진 자는 죄가 있어도 법망을 빠져나가게 마련이란 불신 풍조가 만연한 국가에서 법의 잣대를 어디에 내밀 것인가.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다.
가진 자들의 허물이 크다.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은 어제 법의 날 기념사에서 “과거 우리 사회에는 법과 원칙보다 권력, 금력, 변칙에 의존하려 한 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일 뿐인가. 지도층의 ‘유전무죄’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서민이 수두룩하다.
법의 중심을 잡아야 할 사법부 스스로 불신을 부채질하기 일쑤다. 최근 공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 출신 구천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맷값 폭행’ 사건의 가해자 최철원 M&M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도주 우려가 없다’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했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던 점 등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댔으나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다.
그뿐인가. 실형을 선고받고도 법원의 관대한 처분에 따라 법정구속을 면한 뒤 도피 중인 피고인이 2007년 149명에서 2010년 267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피고인이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재산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되면 법정구속 대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따가운 지적을 법원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밥 먹듯이 법을 짓밟는 것도 블랙코미디다. 이들은 예산 처리 법정기일을 번번이 어기면서도 큰소리를 친다. 해외토픽감의 폭력 행태도 불사한다. 의원들이 주도하는 국회의사당 내 불법 집회도 해마다 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DC 시장이 도로교통 방해와 불법집회 혐의로 쇠고랑을 찬 채 경찰에 연행되는 외신 사진이 전해졌다. 서초동 법원과 여의도 국회 정문에 붙여야 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법이 신뢰를 받는다. ‘유전무죄’ 유행어도 그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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