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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퇴장하는 ‘워크맨’과 일본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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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24 18:53:08 수정 : 2010-10-24 18: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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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광 이을 후계 IT제품 없어
휴대폰 기술도 고립… 퇴화 될 위기
일본 소니의 대표적 히트상품 ‘워크맨’이 발매 31년 만에 내수 판매를 연내 중단키로 했다. 워크맨은 1980∼9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은 전자제품이었다. 유사 이래 일본이 만들어낸 제품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발명품이라는 평가까지 얻었다. ‘전자제품 왕국’ 일본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동진 도쿄특파원
하지만 지금 ‘워크맨의 은퇴’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휴대전화와 액정TV, 노트북, 컴퓨터 등 첨단 정보기술(IT) 전자제품군 가운데 일본이 예전처럼 독보적 지위를 확보한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워크맨의 ‘화려한 영광’을 이어갈 ‘후계체제 구축’에 실패한 것이다.

일본의 현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휴대전화 시장이다. 아날로그 전화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했던 일본이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영광을 재현할 것으로 예상했던 일본인들은 지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삼성전자·LG전자 ‘빅3’ 체제가 굳어지면서 일본 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노키아는 2010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33.4%, 삼성전자는 20%, LG전자는 9.3%의 점유율로 각각 1∼3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본 휴대전화 업계를 더욱 긴장시키는 것은 자국 휴대전화의 패배가 해외뿐만 아니라 안방시장에서도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이 일본 스마트폰 시장을 강타한 데 이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도 오는 28일 일본 열도에 상륙한다.

이에 대항해 싸울 일본의 스마트폰 토종제품이라고는 소니에릭슨의 ‘엑스페리아’ 정도에 불과한데 그나마 갤럭시S나 아이폰4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NTT도코모와 KDDI 등 일본의 굵직한 이동통신사들조차 자국의 제품을 제쳐놓고 한국 업체의 스마트폰 도입을 서두르고 있을 정도다.

휴대전화가 IT제품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IT업계 전체에서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하는 한탄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본의 최대경제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 휴대전화 업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갈라파고스’라고 불린다”면서 “일제 휴대전화가 사라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갈라파고스는 남미대륙에서 서쪽으로 1000㎞ 떨어진 작은 섬으로, 대륙과 오랜 세월 격리된 덕분에 독특한 진화를 한 동식물종이 많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곳이다.

1990년대 휴대전화 산업이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일본은 가장 큰 시장이었으며, 지금도 1억명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다. 이런 일본 내수시장은 자국 제조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일본 국민 특유의 국산품 애용정신이 겹치면서 그동안 상위 1∼5위 업체를 모두 일본 업체가 차지했다. 10위권 내 일본업체들의 점유율만 합해도 80%가 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 시장의 흐름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내수시장 ‘나눠 먹기’에만 매달렸다. 이렇게 시장적, 기술적 고립을 자초한 일본의 모습은 갈라파고스의 고립적 환경과 닮아 있다.

미국이 한때 세계 최대의 TV 소비시장으로 수많은 TV 제조사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해외 업체들의 생산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이대로 흘러가면 머지않아 자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이런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19세기 말 세계 정세의 변화를 재빨리 읽고 이에 맞춰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던 일본은 21세기 문턱에서 세계의 동향을 잘못 읽고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에 비교되는 처지가 되었다. 반면 구한말 ‘우물안의 개구리식’ 쇄국정책으로 식민지로 전락했던 한국은 지금 세계 IT 기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휴대전화와 액정TV, 반도체의 성공에 도취돼 안주해선 결코 안 되며, 전 세계의 풍향을 읽어내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김동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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