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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잠언집에서 “내 자신이 가난함을 느낄 때는, 나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 말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도 바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가난의 정도가 심하면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낮추고 행복감을 느낄 기회를 줄인다. 하지만 가난에 대한 편견이 빈곤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비스워스-디너는 인도 콜카타의 노숙자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숙자보다 생활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균 생활만족도를 측정한 결과 콜카타 노숙자들이 3점 만점에 1.60이었고, 캘리포니아주 노숙자들은 1.29에 그쳤다. 콜카타는 테레사 수녀가 평생 빈민을 보살핀 곳으로, 노숙자의 생활형편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데도 그렇다. 돈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일 것이다. 신앙을 중시하는 인도인의 생활상이 반영된 듯하다. 생활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사회복지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부랑인·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영어 표현을 법률 용어로 도입키로 했다. 부랑인·노숙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전문화하려는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엉뚱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외국 홈리스의 이미지가 우리나라 부랑인·노숙인보다 긍정적이란 말인가. 미국에서 홈리스가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게다가 원조 홈리스인 캘리포니아주 노숙자가 콜카타 노숙자보다도 생활만족도가 낮다고 하지 않는가.

개정안이 통과되면 홈리스가 법률용어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한글단체의 지적도 허투로 들어선 안 된다. 공식 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홈리스라는 단어가 우리말을 대체할 수 있다. ‘알기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펼치는 법제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런데도 꼭 홈리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영어몰입 교육의 여파인가. 정부 관리들의 빈곤문제 인식이 빈곤해서 걱정스럽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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