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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2부> 당당한 다문화가정 ⑤ 세상 밖으로 꿋꿋이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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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7-10 11:01:55 수정 : 2013-07-10 11: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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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누리콜센터서 이주여성 돕는 태국 출신 권 나따몬씨 “전 한국 체질인가봐요. 태국에서는 비염 때문에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는데 한국에 온 후로 비염이 거짓말처럼 나았어요”

최근 서울 합정동 다누리콜센터에서 만난 권 나따몬(44·여)씨는 한국 생활의 어려움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과 태국은 결혼문화도 비슷하고, 기후도 좋아 살기 좋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태국 출신의 나따몬씨는 이곳에서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모국어 상담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결혼 14년차인 그는 주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제사 문화’는 “그날 하루만 고생하면 되는데요 뭐”라고 ‘쿨하게’ 받아들인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는 권 나따몬씨는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때가 가장 가쁘다”고 말한다.
이재문 기자
불교 신자인 그는 남편(51) 때문에 성당에서 결혼한 것에 대해서도 “한 가족이 됐으니 문화든, 종교든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따몬씨는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성실한 근무 태도를 인정 받아 최근 외환은행 주최 ‘외환다문화가정대상’ 시상식에서 ‘희망가족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상금 500만원과 네 식구의 태국 왕복 항공권까지 손에 쥐었다.

나따몬씨를 추천한 다누리콜센터 조난영 팀장은 “보증금 3000만원이 없어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도 힘든 내색 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아이들도 밝게 잘 키우고 있다”면서 “긴 설명이 필요없는 모범 여성”이라고 극찬했다.

1999년 11월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고 한국생활을 시작한 나따몬씨는 태국에선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공무원 다음으로 은행원이 인기 직업이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느라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자 한국으로 시집간 친구가 좋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며 한국으로 초청했다. 남편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태국으로 돌아간 나따몬씨는 서툰 영어로 남편과 국제전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3개월 후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에게는 해외출장을 간다며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모님을 속인 것은 마음 아팠지만 제 인생이니까요.”

나따몬씨가 시집올 때만 해도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다문화가정 지원정책이 전무했다. 그는 먼저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면서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처럼 집에만 머물렀다. 두 아들의 육아에 전념하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다보니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되도록 한국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뇨 때문에 쉬는 날이 많던 남편은 결국 장사를 접어야 했다.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엄마는 왜 일 안 해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죠.”

한국에 와서 11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일자리는 서대문구에서 음식점을 다니며 원산지표시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일이 하고 싶던 그는 사람들을 사귀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일했다. 6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서대문구 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겨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결혼이주여성들을 도왔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생겨 좋았지만 안타까울 때가 많았어요. 의사소통을 제일 힘들어하면서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어렵다고 중간에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남편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을 못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결혼이주여성 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한국어를 배울 겨를조차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많다. 체계적으로 언어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훗날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공부를 도와줄 때 곱절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그가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큰아들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울면서 집에 돌아오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들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해 가슴이 미어지던 기억은 이제 웃으며 회상하는 추억이 됐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엄마는 외국인이고, 네 공부를 다 도와줄 수 없어. 그러니까 스스로 해 버릇해야 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은 이제 친구들에게 다문화가정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선생님이 나 공부 잘해서 이제 방과후 (다문화가정 프로그램) 보충수업 안 들어도 된대요’라며 콧노래를 불렀다.

주변의 선입견에 움츠러들지 않고 아이에게 ‘차별’이 아닌 ‘차이’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가르친 나따몬씨의 교육방식은 다문화가정 여성뿐 아니라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국 엄마들도 귀 기울일 만하다.

“아이들의 꿈이 매일 바뀌어요. 그게 무엇이든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 전 그것만 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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