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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들리지 않는 그녀, 듣지 않는 세상에 ‘일침’을 놓다

입력 : 2012-08-08 15:41:23 수정 : 2012-08-08 15: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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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토론배틀’참가 청각장애인 박영지씨
청각장애인은 토익·토플 시험을 보고 싶어도 듣기평가를 치를 수가 없어요. 미국에 있는 복지센터 홈페이지를 찾아봤어요. 깜짝 놀랐죠. 그곳에는 시각·청각·지체 장애별로 센터가 마련돼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지원센터만 있잖아요.


박영지(21)씨는 귀가 들리지 않지만 일반인보다 말을 잘한다. 그녀의 말에는 비문이 거의 없다. 비정상적으로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게 된 데에는 어려서부터 받은 철저한 말하기 연습이 있었다.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제 말투가 다소 북한 사투리와 비슷해 ‘중국 동포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일 처음 방송한 tvN ‘대학토론배틀3’에 ‘제2의 헬렌켈러’로 참가했다.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1분 메시지’를 전달하며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그의 모습은 아직 방송에 공개되지 않았다.

“출연 신청은 모교 서울애화학교 선생님이 했어요. ‘토론 대회에 나가볼래?’라고 물어봐서 승낙했을 뿐인데 그게 알고 보니 방송 토론프로그램이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주변의 응원 덕분에 농아인 대학생 대표로 나가서 제가 느낀 문제의식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방송에서 “청각장애인도 어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웬만한 일반인 이상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박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지만,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어도 자막이 없어 이용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호소했다.

청각장애인 박영지씨는 “나는 남들보다 2∼3배로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장애인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박씨는 8개월 때 어머니 뱃속에서 거꾸로 나오면서 목이 조여 후천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됐다. 출산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져 10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남들보다 2∼3배 더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유쾌하고 적극적인 소녀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 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박완서 작가와 함께 한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2009년 ‘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를 펴냈다. 대학에서는 수화동아리에 들어가 일반인들에게 수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수화를 할 때는 표정 연기가 굉장히 중요해요. 농아인들은 무표정하게 말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수화를 배우는데 표정이 왜 중요하냐’며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졸업을 앞두고 있는 박씨는 현재 청각장애인 청년기업가 전하상(26)씨로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해 배우고 있다. 그를 가르치고 있는 신수정 교수는 “장애인이 겪는 고유한 아픔을 써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귀가 안 들리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적기 때문에 많이 읽어야 했다”며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20대 초반 소녀는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언젠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어학복합공간을 만드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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