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책임소재 불분명
업체서 맹점 알고 ‘장난질’

전라남도 장흥, 해남 일대의 김 공장에 국가보조금으로 불량 김 건조기가 공급돼 어가(漁家) 피해가 커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네 탓 공방’ 속에 차기 사업에서 배제될까 전전긍긍하는 어민의 속앓이만 깊어가고 있다. 국가보조금 사업 심사와 선정, 사후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탓이다.
19일 이 지역 수산업계에 따르면 전남 강진과 장흥 일대 김 공장과 양식장에 ‘수산물산지가공시설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급된 김 건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 어가가 속출하고 있다. 세계일보 취재팀이 현지 취재한 결과 피해 공장은 13곳에 이르며 피해액도 약 30억원에 달한다.
이들 김 공장은 지난해 10월 E사가 제조한 김 건조기를 국가보조금 사업으로 구입했으나 공장을 정상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김은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만 생산하기에 올해 사업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한 어민은 “지인의 소개로 국가보조금 사업을 신청해서 기계를 들였으나 추가 수리비용만 수천만원이 들었다”면서 “볼 때마다 피가 솟구쳐 아예 작업장 밖에 내버려 뒀다”고 밝혔다.
이는 농림부와 지자체가 보조금 사업 심사와 사후 관리를 실질적으로 하지 못하는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다. 책임 소재가 애매한 부분을 설비업체가 파고들어 악용했다는 것. 농림부 관계자는 “사업 하나하나를 챙길 수 없다. 지자체의 책임이 크다”, 군청 관계자는 “기계 선택은 전적으로 어가 몫이다.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떠넘기고 있다.
부실사업으로 판명되면 차기 사업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어가들이 입을 닫는 것도 피해를 키우는 한 요인이다. 정부는 지난해 수산물산지가공시설 현대화 사업에 보조금 442억7600만원을 투입했고, 올해는 517억1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한 어민은 “지급받은 장비를 5년간 유지하지 못하면 돈을 환급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현대화 사업에서 더 이상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추가 비용 상승으로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장흥·해남=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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