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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돌아온 '광화문 해태상'…숭례문 화재 때문? 說…說…

입력 : 2008-09-26 13:12:27 수정 : 2008-09-26 1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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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전문가 “숭례문·촛불 등 잇단 火魔 피하기”
문화재청 “창고보관중 이끼 껴 일찍 옮겨놓은 것”
◇광화문 해태상이 2006년 12월 광화문 복원공사로 서울 세종로에서 경복궁 내 보관창고로 옮겨졌다가 최근 돌아와 25일 보호 철망 속에서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진호 기자
해태상이 20개월 만에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일부 시민과 풍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 들어 숭례문 화재 등 ‘화마(火魔)’가 잇따르자 해태상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광화문 정문 좌우 측에 서있던 해태상은 2006년 12월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경복궁 내 보관창고로 옮겨졌다가 지난 8월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 전체를 철제 가림막으로 가렸지만, 해태상이 놓여 있는 부분은 철망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이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문화재청은 애초 광화문이 제 모습을 찾는 2009년 12월 해태상을 옮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관창고에 햇볕이 들지 않아 해태상에 습기가 차고 이끼가 끼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계획을 변경, 지난 8월 서둘러 이전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광화문은 1968년 2월 현재 위치에 철근콘크리트조로 재건되면서 원래 위치에서 북측으로 14.5m 밀리고, 건물방향도 중심축에서 5.6도 틀어졌다”며 “발굴조사를 통해 광화문이 원래대로 복원되는 만큼 해태상 위치도 이에 맞춰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는 잇단 대형 화재를 피하기 위해 해태상을 원위치시켰을 것이라는 다양한 풍수관련설이 떠돌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박모(59)씨는 “지난 2월 숭례문이 전소하고 정부중앙청사 화재에 이어 촛불집회가 100일 이상 지속한 것은 화기(火氣)를 막는 해태상을 치웠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더 이상 화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해태상을 광화문에 갔다 놓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경주 서라벌대 김종섭 교수(풍수명리과)는 “광화문 앞에서 해태상을 옮긴 뒤 불상사가 많았다”며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상황만 고집하면 화를 더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정신적인 것(풍수사상)을 찾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국회의사당 등 화기가 많은 곳에 비방책으로 물을 상징하는 해태상을 설치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의 관계자는 “해태는 원래 법과 정의를 나타내는 상징이어서 조선시대 풍속을 바로잡고 관리의 비행을 조사하는 사헌부 관리들의 옷과 모자에 해태 모습을 새겼다”며 “해태가 화재를 막는다는 설을 주장하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좌대를 포함해 높이 4m, 폭 2.2m, 길이 3.3m, 무게 20t인 해태상은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해태상이 태조 4년(1395년) 경복궁 창건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제작 연대가 엇갈리는 것은 석재는 목재와 달리 방사성 동위원소로 연대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2개의 해태상이 서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을 서울 태평로에서 여의도로 이전할 당시 고증자문위원이던 월탄 박종화 선생의 제의에 따라 화기(火氣)를 억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신진호 기자
ship6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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