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응위해 필요” “자유화 해야” 대립

보건복지부는 13일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소에 의뢰한 ‘모자보건법 개정―인공임신중절 허용 한계’란 연구보고서를 놓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의료계와 종교계, 여성계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열었다.
연세대 의대 김소윤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실정법(형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고 낙태를 줄이기 위해 현행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한계를 완화하고, 허용 기간을 현행 임신 28주에서 24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성폭력 범죄나 친·인척 간 임신 등 보건학적·윤리적 사유로 인한 낙태 허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태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어 출생 후에도 생존이 불가능한 경우와 미혼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이유 등 ‘사회적 적응 사유’로 인해 산모가 요청하는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우생학적·유전학적 사유와 전염성 질환, 강간, 혈족 또는 친·인척 간의 임신 등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형법은 낙태를 한 부녀나 의료인 등이 부녀의 부탁을 받고 낙태 시술을 한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제한적 낙태만을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낙태 허용 기준을 벗어난 불법적인 낙태가 자행되고 있다. 고려대 김해중 교수가 2005년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임신중절 건수는 34만2433건으로, 그해 태어난 신생아(43만8062명)의 78.1%에 달한다.
낙태 범위 확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적 적응 사유’를 고려해 허용 기준을 현실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지정토론자로 나선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이분법적 인식과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며 “사회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톨릭의대 이동익(인문사회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적응사유를 낙태 허용범위에 포함한다는 것은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낙태 자유화’나 다름없다”며 “태아 역시 온전한 인권을 가진 인간 개체”라며 낙태 허용범위 확대를 반대했다.
홍익대 이인영 법대 교수는 “이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이냐 산모의 자기결정권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논리에서 벗어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실제 일부 국가가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하고 있음에도 낙태율이 낮은 이유는 피임과 상담, 임신부 지원 등 사회복지 대책이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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