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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문화주의 포용·선도해야 ‘제2 노르웨이 비극’ 막을 수 있어”

입력 : 2011-07-28 00:14:59 수정 : 2011-07-28 00: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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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 권위자 노영찬 美조지메이슨대 종교학과장
평화의 땅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학살극이 전 세계적으로 다문화·다종교 사회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반이민 정서 확산으로 다문화 정책이 실패로 끝났다는 성급한 결론마저 나오고 있다.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에도 이번 건이 던진 파장은 작지 않다. 미국에서 비교종교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국계 노영찬 조지메이슨대 종교학 교수 겸 종교학과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유럽, 미국의 다문화·다종교 사회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을 짚어봤다. 노 교수는 일부 극단주의자의 행동으로 세계적 흐름인 다문화·다종교·다원 사회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교수는 26일(현지시간)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단일 민족을 내세울 게 아니라 다문화·다원주의로 세계를 선도할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와 같은 백인 극단주의자가 생겨나는 배경은.

“20세기 후반부터 특정 민족이나 종교, 국가가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제 다양한 종교, 문화, 언어 등이 공존하는 다원화 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 기득권을 누렸던 일부 백인이 기독교와 서구 문명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백인이 지배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사회심리학적인 요소로 작용해 브레이비크 같은 극단적인 인물이 나오고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근본주의 신앙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종교적으로 우파 보수주의자가 기득권 상실에 따른 불안감을 타 종교에 대한 증오의 형태로 표출하고 있다. 보수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근본주의가 된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절대성에 빠져 타 종교를 배격하면서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근본을 지키기 위해 양자택일을 서슴지 않으며, 이것이 절대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이 같은 극단적인 근본주의자가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인 다문화주의가 결국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하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우선 미국과 유럽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나라다. 미국에 백인 우월주의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이민자 출신이기 때문에 누구도 기득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최근 무슬림을 받아들이면서 이민 사회가 만들어졌다. 유럽의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미국과 달리 여전히 백인, 앵글로색슨 민족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 역사가 짧은 유럽 국가들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무슬림 이민자가 들어오면서 충격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의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낼 수는 없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민족과 민족이 혼합되는 과정은 글로벌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추세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비극을 겪으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왜 충돌하는가.

“유럽에 이슬람이 아니라 불교가 들어갔다면 현재와 같은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서구에 이슬람이 폭력성을 띤 과격한 테러리즘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님에도 9·11테러 사건 이후에 이슬람이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파괴하려 든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슬람은 12, 13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철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권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이슬람 내부에서 증오감을 키운 세력이 등장했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가 그 대표적인 집단이다. 기독교의 일부 근본주의자 세력은 이 같은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와 서구 문화권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문명의 충돌은 필연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세계가 복합·다원화되는 과정에서 현재 과도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와 같은 갈등이 불거진다고 해서 문화다원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결코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는 경제적, 상업적으로 서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한 개의 국가 단위로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자국 영토 내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자국 국민끼리만 살 수가 없는 경제적인 필연성으로 인해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와 종교 교류에 따른 위협을 느낄 수가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 접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단일 국가, 국수주의, 배타주의를 벗어나 다문화주의, 다원주의, 복합주의를 수용해야 바람직한 인류 문화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브레이비크가 (성명에서) 한국과 일본의 유교주의 전통을 동경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가 유교와 이명박 대통령을 잘 알고 한 얘기 같지는 않다. 그는 유교가 동양의 보수주의적인 이념으로 남성 중심의 지배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유교 시스템이 유럽에 도입하면 종교와 문화의 침범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인 시스템을 지키는 과정에서 유교의 바람직하지 않는 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가 유교의 근본적인 사상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다종교 국가의 모델인가.

“외국인들이 한국과 같은 현대적인 국가가 샤머니즘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 불교와 유교도 한국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유교적인 가치관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그런 속에서 기독교, 불교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종교 간에 깊은 대화가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국이 다종교 모델 국가가 되려면 주요 종교 간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독교와 불교, 전통 종교 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을 잉태할 위험성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한국도 외국인 유입과 국제결혼 등으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노르웨이 학살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국민 중에 한 사람이라도 브레이비크와 같은 생각을 하면 그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기 환상 속에 빠져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믿게 된다. 이것이 종교 및 신앙과 연계되면 종교적으로 소명의식을 갖게 돼 위험한 일을 자행하게 된다. 한국에서 그런 정신이상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한국이 성숙한 다문화 국가로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전통적으로 단일 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민족과 종교,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다문화주의 교육을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인간의 의식구조 형성에 교육, 언론, 종교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단일 민족만 강조하다 보면 언젠가 노르웨이에서와 같은 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인식을 토대로 교육기관, 언론사, 종교단체가 한국인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모델은.

“한국인끼리도 ‘출신’ 등을 따져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런 사고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에서 온 사람을 도와주면 우리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더 많이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 단군 조선의 후예로서 한 핏줄을 유지하지 않으면서 다종족 국가로 변하고, 다원주의 문화를 형성해가야 세계를 이끌어 갈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이 현재의 의식구조를 바꿀 수 있어야 노르웨이에서와 같은 비극을 예방할 수 있다.”

대담 = 워싱턴 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노영찬 박사 약력

▲연세대 졸업 ▲미국 유니언신학대학 석사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 박사 ▲조지메이슨대 종교학 교수 겸 종교학과장 ▲조지메이슨대 한국연구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회장 ▲북미한인기독자협회 회장 ▲율곡대상 수상 ▲‘이율곡의 한국 신유교사상’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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