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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경계’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다

입력 : 2011-05-27 17:16:20 수정 : 2011-05-27 17: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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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와 독일어로 문학작품 쓰는 다와다 요코
독일어와 일본어가 끊임없이 충돌했다. 독일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한 일본어가 산산이 붕괴돼 갔다. 알고 있던 말과 세상이 송두리째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새 언어, 새 세계는 착 달라붙지 않았고 씹어 소화시켜야 했다. 바로 ‘그 느낌’을 시로, 소설로 옮겼다. 처음 매일 일본어로 글을 썼지만 대학에서 독문학을 배운 지 5년이 흐른 뒤에는 어느새 독일어로 쓰고 있었다. 그때 출판사에 있는 한 지인이 “책을 출판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1987년 일본어와 독일어 2개어로 씌어진 첫 책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를 냈다.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다와다 요코는 “한 가지 언어로만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며 “경계를 벗어나 생각하라”고 말한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1982년 이후 독일에 살면서 일본어와 독일어 2개어로 문학작품을 쓰는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51)의 얘기다. 그는 일본과 독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로 통한다. 25일과 26일 두 차례 만났다.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눈은 잘 마주치지 않았고, 손은 자주 입으로 향했다.

―1987년 데뷔작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나요.

“일본어와 독일어로 쓰인 시 한 편과 짧은 소설이 각각 한 편씩 들어 있어요. 독일어를 사용하면서 산산이 깨지는 듯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죠. 물론 좋은 의미의 충돌이지만.”

그가 가져온 책을 살펴보니 독일어(앞부문)와 일본어(뒷부문)로 씌어 있었고, 앞뒤 어느 쪽에서 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올해 국내에서 번역된 에세이집 ‘영혼 없는 작가’에서도 독일 정착 초기의 ‘산산이 부서지던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모든 낯선 음향, 모든 낯선 시선, 모든 낯선 맛은 몸 자체가 변할 때까지는 내 몸에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3쪽) “독일로 온 첫 해에 나는 날마다 충격을 너무나 많이 받아 이를 추스르느라 아홉 시간 이상 잠을 잤다. 사무실의 흔한 일상 모두 나에게는 수수께끼의 연속이었다.”(91쪽)

다와다 요코는 이후 독일어와 일본어를 구사, ‘목욕탕’(1989), ‘유럽이 시작되는 곳’(1991), ‘손님’(1993), ‘밤에 빛나는 학가면’(1994), ‘여행을 떠난 오징어’(〃), ‘부적’(1996), ‘귤은 오늘밤 안으로 탈취당해야 한다’(1997), ‘계란 속의 바람처럼’(〃), ‘오르페우스 혹은 이자나기’(1998), ‘탈’(〃), ‘변신’(〃), ‘오비디우스를 위한 마약’(2000), ‘벌거벗은 눈’(2004), ‘보르도의 매제’(2008) 등을 발표했다.

―왜 1개 언어가 아닌, 2개 언어를 이용한 작품활동을 합니까. ‘이중언어’는 당신의 문학에서 무엇인가요.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일본어만으로 생각할 때에는 당연한 구성과 문체에 머물러 있어요. 그런데 다른 언어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는 일본어적인 사고와는 전혀 다른 문체, 구성을 떠올릴 수 있게 되죠. 지금은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순간 찾아오는 ‘말도 없는 어둠의 세계’를 굉장히 소중하게 느낍니다.”

그는 “독일어로 쓸 때는 말 자체의 신비로움에 관심을 두고, 일본어로 쓸 때는 근대와 고대가 뒤섞인 문화, 상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작품을 주로 쓴다”며 “두 개의 언어를 비교하면서 영감을 얻는 일도 많고, 두 언어의 연관성과 차이점, 공통점을 찾는 일도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어디에선가 “사람들은 모국어 안에 있을 때에는 비겁하고 무력하다”고 지적하셨는데요.

“비겁하다고 표현돼 있지만 ‘겁쟁이’라는 느낌이 가까울 거예요. 역시 하나의 언어 안에만 있으면 언어가 구성하는 사고, 세계가 잘 보이지 않게 되죠. 사람은 ‘여러 실체’가 있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로 한정하면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지 못해요. 그 안에서만 생각하면서 겁쟁이가 되고 무력해집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역사와 현실로 확장돼 “일본은 19세기 후반 유럽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 오히려 가해자가 돼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했다”며 ‘잘못된 근대화의 길’로 규정했고, “일본은 창 밖으로 쓰레기를 던져 집안만 깨끗해지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가정집 같다”며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1960년 일본 도쿄에서 오사카의 장사꾼 가문 출신인 아버지와 병약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와다 요코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두 살 때 사과와 책상 등이 그려진 책을 보자 실물은 보려 하지 않고 책만 들여다봤다고 어머니가 전해주더군요. 책에 글이나 그림을 통해 무엇이 표현돼 있을 때 ‘책 안에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죠. 그래서 책을 하루 1권씩 읽었고, 초등 5학년 때부터 글을 쓰면서 문학세계로 들어섰어요.”

고교 시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사실을 알고 “말로 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는 와세다대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뒤 1982년부터 독일에 정착했다. 오전 8시 일어나 밤 12시쯤 자며 매일 소설과 일기를 쓴다고 한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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