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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 출간한 임성순씨

입력 : 2010-04-14 19:18:01 수정 : 2010-04-14 19: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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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사건 보고 죽음의 시나리오를 써” 당신의 연애도 누군가의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혹은 남성)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자연스럽게 달콤한 사랑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 그건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 또한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매일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지 모른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그러한가. 과연 ‘존재 자체만으로도 원죄가 되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임성순씨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당선작 ‘컨설턴트’를 들고 지난 13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한때 같은 꿈을 꾸었지만 지금은 감사의 말조차 전하지 못할 어머니에게 이 소설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덕 기자
이번주 선보인 신예작가 임성순(34)씨의 1억원 고료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은행나무)의 성찰과 질문이다. 간단치 않은 주제인데도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흥미진진하게 빨려들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직업은 ‘킬러’. 흔히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총과 칼을 휘두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누군가 타살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고사나 자연사로 죽은 것처럼 시나리오를 써서 ‘회사’에 납품하는 ‘책상머리 킬러’다. 살인 청부자의 요청에 따라 그가 작성한 정교한 시나리오대로 불륜 행각을 벌인 목사나 정당 당직자, 쇼핑센터 부지 안에 축사를 가지고 있던 농부 등이 죽음을 맞게 되지만 아무도 의심하는 이는 없다.

가장 많은 통계에 부합하는 사망 원인을 만들어 치밀하게 이끌어 낸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은 의뢰인들을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고액의 사례금을 받았다. 문제는 양심이라는 덫인데, 번민을 하다가 그는 이내 이마저 자신을 합리화할 명분으로 해결한다. 펀드매니저 친구는 선물시장에서 옥수수를 싹쓸이했다가 엘니뇨 현상으로 냉해가 일어나 옥수수값이 폭등해서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는데, 이로 인해 아프라카에서는 수백만 명이 기아로 죽었다. 친구는 한번도 옥수수를 직접 본 적도 없고 더구나 직접 누구를 죽인 적도 없었다.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이 소설에 차고 넘친다. 킬러가 죽게 만든 이들에게서도 기실 따지고 보면 ‘죽어야 할 이유’는 늘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킬러가 득의만만하게 찾아낸 자기합리화의 경구는 “어쩔 수 없다”였다.

하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 소심한 킬러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직장에서 사귄 여자가 본의 아니게 ‘회사’의 기밀을 기웃거리는 바람에 자살을 가장한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져들지만 이 여자 또한 ‘회사’의 시나리오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에 빠져든다. 결말은? 그 여자는 실제로 회사의 작품일 수도 있는데, 그 회사라는 존재가 결국 이 사회 구조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지점에서 소설의 성찰은 빛난다.

한마디로 ‘컨설턴트’는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성찰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심사위원들(김화영 박범신 윤후명 구효서 김형경 은희경 하응백 우찬제 김미현)은 “살인을 기획하는 과정의 디테일이나 정보가 흥미롭고, 서사적 논증이나 추리에 바탕을 둔 플롯도 탄탄하다”면서 “미드 범죄 스릴러 ‘CSI’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 읽히고 재미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지난 13일 수상작 출간을 계기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성순씨는 향후 소설 속 시나리오를 흉내낼 모방범죄 가능성에 대해 묻자 “사실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보고 거꾸로 상상력을 발동해 죽음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고 답했다. 현실의 만화경이야말로 오히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라는 맥락이 실감 난다. 킬러가 매니저에게 ‘회사’에서 왜 하필 자신을 선택한 것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도 ‘평범한’ 우리 모두가 되새겨볼 대목이다.

“자기합리화를 잘하니까, 회사에서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잖아요.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맡겨도 극복하잖아. 늘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어쩔 수 없다고.”(277쪽)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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