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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권으로 민생지원금 주자?… 삼권분립 훼손하는 巨野 [심층기획-'처분적 법률' 위헌 논란]

입력 : 2024-05-14 06:00:00 수정 : 2024-05-14 10: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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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개념 자체가 위헌적 뉘앙스”
행정·재판 없이 국민에 직접 자동집행력
5·18민주화특별법, 세월호지원법 등
공익적 이유 등 충족해야 예외적 허용
이재명 총선 압승 뒤 “활용 필요” 불지펴
민주 ‘전 국민 25만원’ 특별법 처리 예고

발 빼는 민주… “입법 만능주의 경계”
전문가 “정책적 판단은 행정부가 할 일
법률로 강제는 행정부 고유 권한 침해”
논란 확산에 민주 “처분적 법률 아니다”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설익은 카드로
다수당이라 해도 입법권엔 한계” 지적

“예를 들면 처분적 법률을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처럼 ‘처분적 법률’을 처음 언급한 건 4·10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일주일이 막 지나서였다. 지난달 17일 이 대표는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긴급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우리가 계속 답답한 게 정부에 촉구만 한다. 집행 권한은 정부가 갖고 있고 국회는 감시·견제·입법만 하다 보니까, 대개 제3자 입장에서 촉구만 하는데 국회가 직접 할 일을 발굴했으면 좋겠다”며 처분적 법률 활용을 제안했다. 총선 민심이 민주당에 압도적 과반 의석을 안겨준 상황에서 입법권을 적극 활용해 일반 국민이 체감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급한 인식이 다소 생소한 법률 용어를 끄집어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두 번째)가 지난 4·10 총선 당시 전 국민 25만원 지급을 골자로 한 민생회복지원금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22대 국회 개원이 보름여 남은 가운데 최근 민주당이 개원 직후인 6월 국회에서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 처리를 예고하면서 이 대표가 약 한 달 전 꺼내든 처분적 법률 개념이 다시금 주목받는 모양새다. 처분적 법률의 위헌성이 거론되면서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의 위헌 논란이 법안 발의 전부터 대두된 것이다. 이 특별법은 국민 1인당 25만원 상당의 지원금을, 올 연말까지가 유효기간인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전문가들은 13일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의 성격을 띨 경우 위헌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에선 논란이 확산하는 기미를 보이자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은 처분적 법률이 아니다”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는 모양새다.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처분적 법률 언급이 괜한 논란만 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위헌 소지”

처분적 법률 개념의 정의는 1989년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소원에 대해 내린 결정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엔 처분적 법률에 대해 ‘행정집행이나 사법재판을 매개로 하지 아니하고 직접 국민에게 권리나 의무를 발생하게 하는 법률’, ‘자동집행력을 갖는 법률’이라 정의하고 있다. 정연주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논문 ‘처분적 법률의 헌법적 문제’(2007년)에서 “처분적 법률은 규범의 형식으로 제정되면서도 행정처분적 성격을 가지는 매우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다양한 헌법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고 평했다. 구체적으로 3가지 문제를 지적하는데, 그건 바로 △평등원칙 위반 △삼권분립 원칙 위반 △재판청구권의 침해이다.

이번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눈여겨볼 건 아무래도 삼권분립 원칙 위반이다. 논문에선 처분적 법률의 삼권분립 원칙 위반 소지에 대해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 행정처분을 입법부가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다른 한편 그런 위반을 정당화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존재한다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권력분립 원칙 위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우월한 공익적 이유의 존재와 양자(행정부·입법부) 간 정당한 이익형량 및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효율적 통제”라며 처분적 법률이 무조건적으로 위헌인 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실제 5·18민주화운동특별법이나 세월호피해지원법 등이 ‘우월한 공익적 이유의 존재‘, ‘행정부·입법부 간 정당한 이익형량’ 등을 충족해 처분적 법률 성격을 띠지만 우리 법 체계 안에서 정상적으로 자리 잡은 법으로 거론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처분적 법률도 합헌인 경우가 많다”면서도 “전 국민에게 25만원 지원금을 주는 내용을 법률로서 강제하는 건 이제 위헌이 될 소지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지원금을 ‘이런저런 경우에 줄 수 있다’는 근거를 법률적으로 마련하는 것과 ‘지금 이 시점에 25만원이라는 금액을 반드시 줘야 한다’고 법률로써 강제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25만원을 국민에게 줄 거냐, 말 거냐는 판단은 굉장히 고도의 탄력성이 요구되는 정책적 판단이다. 그건 개별적 행정처분을 통해 행정부가 해야 될 일이지, 법률로써 강제하는 건 입법부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이 준비 중인 특별법 내용의 구체성 수준에 따라 위헌 소지가 짙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부 전문가는 민주당이 적극적인 입법권 활용의 한 방법으로 ‘처분적 법률’을 꺼내든 것 자체에 어폐가 있다고 지적한다. 처분적 법률 개념 자체가 위헌 소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민주당 스스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는 “처분적 법률이란 표현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 개념 자체가 위헌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법률은 처분적 효과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행정부 고유의 업무인 ‘처분’을 법률로 만든다는 그 표현 자체가, 그 법의 타당성을 주장해야 할 정당으로부터 먼저 발설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 빼는 민주… “괜한 논란만 키워”

이처럼 정부·여당뿐 아니라 전문가들 또한 위헌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최근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에 한해 처분적 법률 개념을 거둬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9일 한 라디오에서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과 관련해 “어렵게 생각을 많이 하고 무슨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법리 해석 논란도 있게 됐는데, 일반적인 걸 예를 들면 공수처법을 만약에 우리가 만들었다고 하면 거기 소요되는 예산을 만들어서 정부가 집행하지 않냐”며 “모든 정책과 법률은 예산이 수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법부가 (법을) 만들면 행정부는 관련된 예산을 편성하는 게 일반적인 부분이다. 우리 민생과 관련된 지원금에 대해서도 입법이 완료되면 행정부는 거기 따르는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게끔 하는 게 삼권분립 아니냐”고 말했다.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이 일반적인 법과 다를 바 없단 취지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보다 분명하게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일 정책현안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법안이 만들어져서 정부가 공포하고 예산을 마련해서 국민께 지급하기까지 정부 행정행위로 이뤄지는 것이라 처분적 (성격)으로 보기 어렵다”며 “정부 예산편성권 침해 아니냐는 지적도 비약이다. 국회에서 입법되는 대부분 법안이 비용을 수반한다. 여기 예산이 들어가는데 전부 위헌이라고 하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정부 동의를 구하는 것이고 정부가 동의하면 그 예산을 집행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라 권한 침해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신 조세·금융 부분에서 처분적 법률로 추진할 수 있는 입법 과제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처분적 법률 적용 가능 사례로 거론한 바 있는 신용사면·서민금융지원 성격의 법안이 내부적으로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 등을 둘러싼 처분적 법률 논란이 과장됐다는 평도 나오는 터다. 어차피 윤석열 대통령이 처분적 법률이든 아니든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법 시행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 범야권 의석수가 192석에 달하지만 재의결 의석수(200석)엔 못 미친다. 정부·여당 협조 없이는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쟁점 법안의 시행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민생회복지원금 제도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확인된 터다.

이 대표는 총선 이후 처분적 법률을 언급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국회가 다수당 입장에서 요구하면 정부가 받아줬는데 이 정부는 마이동풍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럴 생각이 없어보여서 처분적 법률 형태를 통해서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질적 조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이를 두고 “총선 압승 이후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설익은 처분적 법률 카드를 던지게 한 것 아니냐“며 “대표가 일단 던졌으니 당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논란만 키운 것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민주당을 겨냥해 “아무리 다수당이라 해도 애초에 국회가 할 수 있는 입법권엔 뚜렷한 한계가 있다”며 입법 만능주의 경계를 주문하기도 했다.


김승환·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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