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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초창기인 1982년의 일이다. 아프리카 4개국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이 가봉에서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전 대통령 일행을 맞이하는 공식 환영식에서 그만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연주된 것이다. 당시 가봉에 주재했던 우리 대사는 이 일로 상부에서 엄청난 질책을 받았다. 전두환정부의 권위주의가 극에 달한 시점이니 오죽했을까 싶다.

한국 외교관이라면 국제 무대에서 북한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 과거 재외공관에서 근무한 어느 외교관의 회고가 눈길을 끈다. 타국 외교관을 집으로 초청해 정성껏 식사 대접을 한 뒤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좋아졌을 것’이란 생각에 뿌듯해할 때 손님이 난데없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남한에서 왔나요, 아니면 북한 출신인가요?” 쇠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을 것이다.

남한은 물론 북한도 공식 국호는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남한은 ‘대한민국(ROK)’,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명칭을 각각 쓴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등에 참석한 한국인들 중엔 자신의 명패에 ‘남한(South Korea)’이라고 적힌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가 더러 있다. 일부는 주최 측에 ‘ROK’로 바꿔 달라며 항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남한이란 표현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정작 ROK를 북한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니 이것 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엊그제 캘리포니아주에서 선거 유세를 하다가 “남한 대통령 김정은”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내내 북한의 김정은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낸 점을 비판하는 도중 나온 발언이다. 81세인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지적해 온 언론들은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그의 인지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쟁자인 트럼프는 어떤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무효화하려고 내란을 선동했다는 등 온갖 범죄 혐의로 기소돼 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에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까지 오는 11월 미 대선은 온갖 리스크의 결정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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