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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책임 묻지 않는다’ 서약서까지 등장…정부 보건의료경보 최고단계 상향

입력 : 2024-02-23 10:27:58 수정 : 2024-02-23 13: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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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최상위인 ‘심각’으로 끌어올렸다.

 

“면허 정지”, “구속 수사” 등 정부의 엄정 대응방침에도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계속되고 의사단체들이 총궐기에 나서면서다. 보건의료와 관련해 ‘심각’까지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동안 환자들과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의 ‘신음’은 깊어지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게시된 진료 대기 시간 안내판에 마감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뉴시스

◆전체 전공의  10명 중 7명 이상 사직서 

 

23일 정부에 따르면 전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지난 21일까지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체 전공의 규모는 1만3000명이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사직서를 낸 셈이다. 이들 100개 병원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24명이다. 하루 전보다 211명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의사면허 정지’를, 법무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선배 의사들의 협의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을 두고 “집단행동이 아니다. 후배들의 자유로운 결정이고, 이를 지지한다”며 힘을 싣고 있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환자들은 ‘의료대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에 따라 전체 수술을 최소 30%에서 50%까지 줄인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공공 병원이 외래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이 커지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가 다음달 3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예고하는 등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피해가 커짐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이번 결정은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면 자연재난 외에도 ‘코로나19 등 감염병’, ‘보건의료 등 국가 핵심 기반의 마비’ 등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한다.

 

각 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을 동원해 채우고 있다. 야간 당직 등에 교수를 배치하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고비가 될 수 있다” 며 “그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응해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위기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고 밝혔다. 공공 의료기관 진료를 최대한 확대하고 병원이 임시의료인력을 축 채용할 수 있도록 중증·응급환자 최종 치료시 수가를 2배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비대면 진료도 전면 확대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 피해 속출…병원측 ‘책임을 묻지 않는다’ 서약서 등장

 

직장암 3기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간으로 암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는 한 환자는 “지난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다”며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지방에서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수백㎞를 떠돈 환자 사례도 나왔다.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21일 오전 11시 30분께 당뇨를 앓는 60대 A씨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괴사가 일어나 119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전공의 부재로 수술이어렵다며 병원 측이 이송을 권유하자 길거리를 떠돌다 3시간 30분 만에 치료받은 사례가 있었다.

 

현장에 남은 의료진도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

 

광주 전남대병원의 한 의료진은 “병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전공의가 해온 유치 도뇨관(소변줄) 삽입 업무를 하게 된 남성 간호사도 있다” 며 “추가 근무야 당연지사고, 점심 먹을 시간도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환자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수술 일정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면서, 병원들은 응급과 위·중증 환자을 제외한 급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은 최대한 미루고 있다.

 

하루 200∼220건을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19일 전체 수술의 10%, 20일에는 30%, 전날에는 40%를 연기했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는 대다수 전공의가 현장을 떠났다는 이유로 수술을 ‘절반’으로 줄였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역시 수술을 30%가량 축소했다.

 

‘의료공백’ 사태가 종합병원만이 아닌 일반 병원급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강원 원주의 한 병원은 최근 입원환자와 보호자에게 ‘응급상황 발생 시 상급병원 전원이 어려울 수 있어 사망, 건강 악화 등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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