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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저널] 조선시대 의녀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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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03 23:21:53 수정 : 2023-02-03 23: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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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칠세부동석’이 만든 직업
궁중에서 경찰 임무까지 맡아

필자는 새해 초 작은 수술을 받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 일주일 입원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을 직접 접할 수 있었고, 역사 전공의 특성 때문인지 조선시대 의녀(醫女)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일부 소개되기도 했지만, 의녀들의 실제 삶의 모습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에 의녀 제도가 시행된 데에는 유교를 기반으로 건국한 왕조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남녀 구분이 엄격한 사회에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성별이 다른 사람에게 몸을 보이고 접촉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의녀 설치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음은 1406년(태종 6) ‘태종실록’의 “제생원(濟生院)에 명하여 동녀(童女)에게 의약을 가르치게 하였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부인이 병이 있는데 남자 의원으로 하여금 진맥하여 치료를 하게 하면, 혹 부끄러움을 머금고 나와서 그 병을 보이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주요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태종 때 제생원에서는 자질을 갖춘 의녀 5명을 배치했다가 그 수를 늘렸다. “각 관청의 비자(婢子) 중에서 나이가 13세 이하인 자 10명을 더 정하였다”는 기록에서 의녀가 10명 증원되었고, 신분은 천민이며 의녀가 처음 될 수 있는 나이는 13세 이하임을 알 수가 있다.

건국대 교수·사학

의녀의 교육은 서울에 소재한 의료기관인 제생원에서 이루어졌다. 지방에서는 관청의 노비 신분으로 자질이 있는 동녀를 서울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에 사는 의녀가 늘어나자 이들의 딸이나 상의원 소속 침선비(針線婢)의 딸을 교육해 의녀를 배출하였다. 의녀들은 기초적인 교양과 필수적인 의학 과목에 대해 배웠다. 요즘 의대에서 예과와 본과를 나누어 교육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예조에서는 의녀에게 책읽기를 가르쳐 문자를 이해하도록 하였다. 지방에서 고을의 관원들이 먼저 천자문, 효경, ‘정속편(正俗篇)’ 등을 가르친 후 서울로 보냈다. 전공 교육으로는 맥을 짚고 침을 놓는 맥경(脈經)과 침구법(鍼灸法), 약을 제조하는 조제법이 있었다. 세종은 의녀 교육을 보다 체계화했다. 매월 의녀에게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산서(産書)를 익히게 하고, 시험 과목을 추가하였다. 세조 때는 제생원이 혜민국에 병합되었는데, 세조는 1463년에 예조에 지시하여 의녀 양성 조건을 마련하도록 했다. 혜민국 책임자가 매월 독서 실력을 평가해 의녀의 성적을 매긴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성적이 좋은 자 세 명에게는 월급을 주고 불통한 자는 다모(茶母)로 좌천시키도록 했다. 공부를 못하는 의녀 낙제생이 다모가 되는 것이 흥미롭다. ‘다모’라는 드라마에서는 수사관으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는 차 심부름을 하는 다모는 의녀들이 기피한 직종이었던 것이다.

의녀는 주로 왕실 여성들을 담당했다. 여성을 진찰하여 증상을 의관에게 전달했고, 의관의 지침을 받아 치료와 간호 활동을 했다. 장금이와 같이 왕의 치료와 간병에 참여하기도 했다. ‘중종실록’의 “의녀 장금이 나와서 말하기를 … ‘또 소변은 잠시 통했으나 대변이 불통한 지가 이미 3일이나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거나, “지난밤에 오령산을 달여 들였더니 두 번 복용하시고 삼경에 잠이 드셨습니다. 또 소변은 잠깐 통했으나 대변은 전과 같이 통하지 않아 오늘 아침 처음으로 밀정(蜜釘)을 썼습니다”라는 기록에서는 중종의 병을 직접 챙긴 장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의녀는 왕실에서 상을 당했을 때 왕실 여성들을 위로하고 간병을 했으며, 혼례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행사에 수행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중국에 가는 세자빈이나 공주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궁녀들이 죄를 지었을 때 체포하고 몸을 수색하는 것도 의녀들의 몫이었다. 의료 활동 이외에 기관 파견, 수행원 역할, 심지어 경찰의 임무까지 했던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의녀와 함께 궁중요리사라는 캐릭터를 창출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참조하여,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의녀 탄생을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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