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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애인은 권리를 비장애인 이해·공감으로 얻어야 하나요” [줌人]

, 이슈팀

입력 : 2022-08-20 08:00:00 수정 : 2022-08-20 13: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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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밉상된 전장연 박경석 대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바쁜데 얼마나 화가 날까 죄송해
그 분노를 이런 상황 방치한 정부 향해 모아줄 수 있다면”
“여론 나쁘니 그만두라?…권리가 누군가의 동의로 허락되나
왜 장애인은 권리를 비장애인 이해·공감으로 얻어야 하나요”
24살에 해병대 전역한 혈기왕성했던 청년, 사고로 하반신 마비
무시했던 장애인의 삶 혹독… 5년간 집에 틀어박혀 죽음 생각도
복지사 자격 땄지만 나이·장애 이유, 장애관련 기관 외면에 분노
야학으로 장애인 돕기 시작…오이도 리프트 사건 계기 행동나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본 사람이면 주인공 우영우를 보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 박은빈이 연기한 발달장애인 우영우는 똑똑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는 너도나도 도움의 손을 내민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마주쳤을 ‘현실의 우영우’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나. 보통 그들에게 우리는 무관심하다. 발달장애인 가정에서 벌어진 살해 또는 자살 사건은 올해 상반기에만 7건. 총 8명이 아무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다.

 

현재 우영우만큼 사회의 관심을 받는 장애인이 있다. 사랑스러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이 많다. 바로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올해 62세의 그는 수십 년째 장애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하기 직전까지도 화상회의를 이어갈 정도로 바빠 보였다. 이곳에는 장애인을 향한 관심을 호소하는 각종 전단과 포스터들이 가득했고, 대표실은 따로 없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다섯명 중 한 명인 박경석입니다. 요즘 출근길에 지하철 타는 직접적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함께 지하철을 타면서 지하철이 늦어지고,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함을 끼쳐 마음이 무겁고 미안합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했는데, 박 대표는 미안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만큼 지하철 출퇴근 시위의 반향이 컸던 것일까.

 

“그런데도 저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사망한 이후 21년 동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외쳐왔고, 2005년에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후 15년간 한 번도 국가가 스스로 세운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했다. 저상버스 등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확보하라는 법이지만, 강제성이 약해 15년 넘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2020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평균 28.4%에 그쳤다. 2021년 국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 등을 대·폐차하는 경우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고, 특별교통수단(콜택시 등)의 원활한 이용을 위한 국비 지원 근거 신설 및 각 시군의 이동지원센터 설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 1월18일 공포된 개정안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는 2023년 1월19일부터, 특별교통수단 관련 개정안은 2023년 7월19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31일에도 전장연은 홍남기 당시 기재부 장관 집 앞에서 기재부에 장애인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개정안은 예산반영 등 강제성이 없어서 안 지켜버리면 그만이라 실효성이 없는 법이 돼버렸어요. 장애인 관련 지원은 국가가 강제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 저희가 이것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었죠. 실제로 기재부는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만 말할 뿐 실제로 바뀐 게 없습니다. 오는 9월 예산이 어떻게 되는지 보면 정말로 기재부가 장애인 관련 예산을 그동안 검토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기재부 예산반영이 의무가 아니라 임의조항으로 바뀌는 등 원안에 비해 후퇴했다. 게다가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 역시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다. 또 도로의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을 시에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조항도 달려있다.

 

그동안 특별교통수단 예산이 지자체 권한으로만 편성되면서 지역 간 이동권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의 이동지원센터 운영비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전장연은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기재부의 압박으로 국토위를 거치면서 법 개정안 원안의 ‘해야 한다’가 ‘할 수 있다’로 바뀌면서 실제 지원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당시 기재부는 개정안 통과 전날까지도 법사위에 “특별교통수단 운영비가 보조금법 시행령에 국비 지원이 불가한 사업으로 되어있다”며 수용이 곤란하다는 의견을 냈다.

 

올해 35차례 계속된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는 이로 인해 시작됐다. 당시 전장연은 “구체적인 예산의 비율을 정하지 않으면, 1원을 반영해도 반영하는 것이 된다. 법 개정은 했지만 결국 기재부 입맛에 맞게 넘겨진 것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기재부의 장애인권리예산 책임이 명확해질 때까지 매일 오전 8시,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 앞 출근 선전전을 비롯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지하철로 향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라는 구호를 외친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은 이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동하지 못하니 노동으로 사회에 참여할 기회도 꿈꿀 수 없죠. 그렇게 이들은 집에만 있게 되고 가족들에게 부담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견디다 못한 부모들이 장애인들의 동의도 없이 시설로 보내버리는 형태가 반복된 거죠. 그렇게 장애인들은 유배되고, 유기되고, 배제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함께 살 수 없게 만든 거에요. 국민에게 많은 불편함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절실함. 더는 늦출 수 없는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이 겪는 고통을 호소하며 박 대표는 젊은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83년도에 24살이던 저는 대학생이었고, 해병대를 지원해 수색대에서 활동했습니다. 남들보다 혈기 왕성하고 건강한 그리고 평범한 학생이었죠. 군에서 낙하산을 타던 경험을 살려 제대 후 행글라이딩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그때까지 장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주위에 장애인에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죠.”

 

그해 박 대표는 토함산 행글라이더 대회에 참가했다가 추락한다. 이 사고로 그는 척수가 손상됐고, 가슴 밑 하반신이 마비됐다. 

 

“저조차도 무시했던 장애인의 삶은 혹독했습니다. 29살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약 5년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나오기도 싫었지만, 나올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죠. 80년대에는 이동수단이나 활동 지원 센터가 있어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집에는 저와 노부모만 계시고… 그렇게 밖에 나가지 못한 채 살다 보니 사람이 무감각해지고 죽음만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랬던 박 대표에게 희망을 줬던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열린 패럴림픽이었다. 서울 패럴림픽은 올림픽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세계 장애인 스포츠 기구 국제 조정 위원회’의 상징인 ICC기를 만들게 됐고, 패럴림픽 최초로 성화봉송을 했다. 또 이후 패럴림픽은 올림픽 개최지에서 같이 개최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울 패럴림픽은 열악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88 패럴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종합복지관에 나갈 결심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컴퓨터를 배워 직업 재활에 나섰죠. 다른 많은 장애인을 만나게 됐고, 그들을 통해 장애인 문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장애인 문제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됐죠.”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박 대표는 사회복지사를 꿈꿨다고 한다.

 

“91년에 숭실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어요.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고용공단 등에서 모두 거절하더군요. 장애인을 위한다는 기관에서조차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그는 1994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활동을 시작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 성격으로 중입, 고입 검정고시를 도왔다. 노들야학은 2001년 오이도 장애인 리프트 사건을 겪으며 장애인 자립 지원센터들과 연대하기 시작해, 2006년 전장연까지 이어지게 된다. 현재 전장연은 190여개 단체가 모여 장애인 이동권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 탈시설, 국제활동 등을 하고 있다.

 

장애 얻기 전 박경석 대표 모습

“수십 년 간 장애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며 (본) 우리 사회는 많이 나아진 것이 분명합니다. 쉽게 말해 먹고살 만해졌죠.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커진 것도 같아요. 최근 침수 피해, 코로나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는 데 장애인들이 이런 사건·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일반인보다 3배 이상 크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방증이겠죠. 비참한 상황에 답을 줄 수 있는 건 국가이고, 그런 국가를 향해 함께 소리쳐줄 국민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박 대표에게 물었다. 여론이 악화하는 데도 왜 출근길 시위를 고집하느냐고. 전장연은 지난 17일 ‘지구 끝까지 출근길 지하철타겠습니다’라며 35번째 시위를 마쳤다.

 

“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말이 참 아픕니다. 시위를 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혐오, 협박, 공격도 아프죠. 그래도 묻고 싶어요. 우리가 한 시간여 시민에게 불편을 끼쳤다면, 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장애인의 평생은 격리되고 배제돼야 하나요. 장애인들의 삶은 볼모를 넘어 유기되고 방치됐는데도, 침묵과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사회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지하철이 아니라 다른 곳을 찾는 건 어떠냐고도 물었다.

 

“저희가 지하철을 탄 것은 처음이 아니에요. 저희는 지난 21년간 지하철 시위를 이어왔습니다. 2001년도에는 지하철로까지 내려간 적도 있어요. 청와대 안까지 쳐들어가 가거나 기획재정부에 낙서투쟁을 한 적도 있고, 국회의원실에서 시위를 벌여 연행된 적도 있습니다. 책임 부처 등 안 찾아간 곳이 없을 정도예요. 그렇게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 연행 등 불이익을 견뎌왔습니다.”

 

그는 불편함을 느끼거나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입장바꿔놓고 생각하면 바쁜데 얼마나 화가 날까. 당연한 일입니다.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 분노를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정부를 향해 한 번만 모아 줄 수 있다면 문제는 금방이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출근길 문답 등을 통해 국민 소통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도 장애인 투쟁에 대해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집권 말 발표한 탈시설 로드맵마저 이 정부 들어 자립지원로드맵이라고 슬그머니 이름을 바꿨더라고요. 복지부에 따지니 용산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사업의 이름은 본질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데 장애인에게 ‘탈시설’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소중한지, 윤 정부는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박 대표는 장애인 입장에서 우리 사회는 한 마디로 ‘차별하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장애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2020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3000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5.1%다. 내 주변에도 100명 가운데 5명은 장애를 겪고 그로 인해 차별받고 있다. 우영우가 판타지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저희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같이 나누는 기회가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 시위로 불편 겪는 시민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의 권리 역시 보장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지하철 시위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으니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누군가의 권리가 누군가의 동의를 통해서만 허락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 장애인은 기본적인 권리를 비장애인의 이해와 공감을 통해 획득해야만 하나요.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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