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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에 월드컵 놓쳐도 의연했던 獨 축구선수 젤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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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24 16:12:15 수정 : 2022-07-24 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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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출신으로 1960년대 분데스리가 전설
1954∼1970년 獨 대표팀서 활약… A매치 33골
오심 악명 높은 1966년 英 월드컵 때 주장 맡아

1966년 7월30일 월드컵 결승전 경기가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첫번째 우승 도전이었고 상대방인 ‘전차 군단’ 서독은 1954년 스위스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을 안을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마침 두 나라는 20여년 전 끝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서로 싸운 ‘악연’까지 있었다.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우베 젤러(1936∼2022). AP연합뉴스

전후반 90분 경기를 2 대 2 동점으로 마친 두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전반에 이미 한 골을 넣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에이스 제프 허스트(81)가 연장 11분쯤 역전골을 터뜨렸다. 100년 가까운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득점이다. 허스트가 찬 공은 크로스바 하단에 맞고 아래로 떨어져 골라인을 강타한 뒤 튀어나갔는데 심판들은 논의 끝에 이를 골로 인정했다.

 

서독 선수들은 격하게 항의했다. 공이 골라인을 확실히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야 득점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촬영된 필름을 오늘날 분석해보면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은 게 확실한 것으로 나온다. 오심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시절엔 비디오 판독도 없었고 따라서 현장의 심판이 내린 결정을 그냥 받아들여야만 했다. 3 대 2로 역전한 잉글랜드는 경기 종료 직전 허스트가 한 골을 추가하며 서독을 4 대 2로 눌렀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우승이었다. 허스트에겐 월드컵 결승전에서 유일하게 해드트릭(3득점)을 기록한 선수란 명예도 뒤따랐다.

 

서독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2차대전 패전국이자 전범국으로서의 ‘업보’였을까. 개최지 영국 시민들의 응원은 일방적이었고 심판들마저 잉글랜드에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서독팀 주장 우베 젤러는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처구니 없는 오심에 월드컵을 놓쳤다는 분노와 회한으로 경기장 바닥 잔디에 드러누운 동료 선수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운 뒤 포옹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적국으로 싸웠던 잉글랜드와 서독의 화해를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된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은 1966년이 마지막인 반면 서독은 이후 1974년과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도 2014년 3차례 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960년대 내내 독일 축구의 영웅이요, 전설이었던 젤러가 21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6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독일 프로축구 리그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뒤 은퇴할 때까지 오로지 고향인 함부르크 한 팀에서만 뛴 것으로도 유명하다. 함부르크는 올해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이 과거 속했던 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독일 언론들은 한때 손흥민의 플레이에 “전성기의 젤러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1966년 영국 런던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서독 대 잉글랜드 경기에 앞서 서독팀 주장 우베 젤러(왼쪽)가 잉글랜드팀 주장 바비 무어(1993년 사망)와 인사하는 모습. AP연합뉴스

고인은 1953년부터 1972년까지 약 20년간 함부르크에서 활약하며 총 476경기에 출전해 404골을 넣었다. 1954년부터 1970년까지 16년 동안은 서독 국가대표 축구팀의 일원이었다. 이 기간 A매치 72경기에 출전해 33골을 넣었다. 월드컵은 1970년 멕시코 대회가 마지막 무대였다. 당시 서독은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 아깝게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고 이후 3·4위전에서 우루과이를 이기고 3위에 올랐다. 독일 국내 리그에선 1972년 시즌까지 뛰고 부상을 이유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독일 축구팬들은 고인의 타계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인은 여러 사람의 롤모델이었다”며 “우리는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고인은 독일 축구의 전설이었다”며 “잊지 못할 경기들을 많이 보여줬다”고 비통해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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