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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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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29 22:48:45 수정 : 2022-04-29 22: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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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쳐
고통 처한 타인은 또 다른 ‘나’

고통은 날것이어서 자주 겪어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얼마 전 새벽 갑작스러운 위통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위통의 맥시멈 속에서 몸은 나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이물(異物)로 느껴졌다. 고통은 추상이 아니다. “손톱과 발톱이 살갗에서 서서히 분리되는 정교하고 불안한 날것의 고통”을 상상해 보라! 날것인 고통에 내던져진 몸뚱이는 비현실적으로 생생하고 낯설다. 진땀을 흘리며 혼자 앓던 그날의 소득이라면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계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예고 없이 닥친다. 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진 사건이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로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이 숨진 참사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우리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자식의 죽음은 생의 의미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그 고통은 이중적이다. 자식을 잃은 데서 오는 고통과 ‘자식새끼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부모’라는 사회적 낙인에서 오는 고통이 그것이다.

장석주 시인

자식을 앞세운 부모가 고통의 극한에서 창자를 토해 내듯 우는 울음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그 슬픔을 표현하는 ‘참척’(慘慽)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참척이란 참혹하게 슬퍼함이다. 한(恨)은 고통의 불가해함과 개별자의 무력감이 합쳐지며 빚어진 특별한 감정이다. 불행을 낳은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내면 억압이 지속될 때 한이 쌓인다. 이때 한은 슬픔의 현실태이고, 한이 맺힌 가슴은 고통의 현존이다.

1980년 광주항쟁 유족을 조롱하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잊어라’, ‘지겹다’,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고통의 당사자에 대한 또 다른 가해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능력을 잃은 탓이다. 물론 인간은 타인의 감각중추에 머물 수 없기에 타인의 고통을 실감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것은 추하고 야비한 짓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모습은 도덕적 빈곤과 감응 능력의 가난에 더해 그 말과 웃음 뒤에 숨겨진 사람됨의 야비함을 드러내 늘 소름 끼친다.

고통의 스펙트럼은 꽤 넓다. 고문에 의한 고통은 몸을 날것의 고통이 발현하는 장소로 만든다. 따돌림이나 차별로 인한 고통은 안락한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화된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는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지 회피하려고 드는 탈고통화 사회다. 탈고통화 사회에서 고통은 격렬함으로 좋은 삶을 일그러뜨리는 나쁜 것으로 낙인찍힌다. 아울러 고통은 테러리즘, 위기와 균열의 징후 속에서 숨은 자아를 돌연 드러나게 한다.

우리는 타인과 연대하며 고통에 대처해야 한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수전 손태그, ‘타인의 고통’) 고통의 양조(釀造)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응 능력이 길러진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고통에 대한 생각을 산출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고통을 직시할 것.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능동적으로 감응할 것. 그게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인간의 예의다.

고통 없는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통은 삶의 상수다. 질병에서 오건, 사회의 불공정과 편견에서 오건 고통은 좋은 삶을 망가뜨린다. 그럼에도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타인의 다양한 고통을 포르노그래피 보듯 하는 관음증은 널리 퍼진다. 타인의 고통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야! 이런 관음증의 태도는 현실 둔감증을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보편의 현실이고, 고통에 처한 타인은 ‘나’의 밖에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타인의 고통을 돌보고 어루만지는 행위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겹쳐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안다면, 타인의 고통을 단지 연민으로 소비하는 태도를 경계하라!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피동일 뿐이고,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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