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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범죄에… 택배기사 '눈칫밥', 주민은 '경계심'

입력 : 2021-04-06 06:00:00 수정 : 2021-04-06 0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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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사건’에 불안감 확산
업계 “우리 일, 범죄 악용 안타까워
부정적 이미지 생길까 봐 걱정돼”
혼자 사는 여성들 범죄 타깃 우려
남자인 척하려 이름 바꿔서 주문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가 지난 4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미묘하게 달라진 기류를 느껴요. 엘리베이터에서 입주민을 봤을 때 경계하는 게 느껴져서 죄인처럼 고개도 숙이게 되고….”

 

15년차 택배기사인 박모씨는 최근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해 사건’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김태현이 택배기사로 위장해 피해자들의 집에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박씨는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전했다. 그는 “택배기사와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염려에 공감한다”면서도 “기사들 역시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저희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택배일이) 범죄로 악용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택배기사로 위장한 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애먼 택배기사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고객들이 주문한 물품을 신속정확하게 전달하도록 촌각을 다투며 일하는 상황에서 의심의 눈초리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나 어린 자녀를 둔 가정 등 택배 이용자들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경계심을 높이는 등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5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부터 대부분 택배업체는 ‘비대면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하지 않고 각 세대 문 앞에 두고 가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착불 배송이거나 귀중품의 경우 ‘대면 배송’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건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에서 주민과 마주하는 경우도 불가피하다.

 

최근 잇따르는 택배기사 위장 범죄는 이들을 위축시킨다. 지난달 27일에는 강원 강릉에서 택배기사로 위장해 집에 홀로 있던 초등학생을 인질로 잡고 부모에게 거액을 요구한 3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한 택배기사가 분류 작업을 마친 뒤 배송 준비를 위해 차에 택배 상자를 싣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택배기사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다고 우려했다. 경북 경주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김모(45)씨는 “배송 후 부득이하게 고객의 사인을 받아야 할 때가 있는데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이 있다.

 

특히 최근 노원구 사건이 터진 뒤 이런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지 않는다거나 혼자 있을 경우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에 다시 오라고 할 때도 있다”며 “택배기사가 코로나 시대의 필수 노동자로 평가받는 시대에 이런 사건 때문에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음식배달 기사도 업무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의 한 배달업체 관계자는 “기사로 위장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도 조심해서 일해야겠다’, ‘괜한 오해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며 “배달기사가 대부분 남성이라 여성 혼자 있을 때 비대면 배송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했다.

 

김태현 사건처럼 범죄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란 점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의 불안감도 크다. 배달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1인가구 여성 오모(27)씨는 “워낙 이상한 사건이 많았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도 배달기사 관련 경험담이 많아 불안하다”며 “남자인 척하기 위해 ‘남자 이름’으로 주문하고, 배달기사들 만날 때 한손으로 문고리를 꽉 잡고 문을 최소한으로만 벌려 물건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를 둔 주부 이모(46)씨는 “아이가 택배기사의 초인종에 그냥 문을 열어주는 경향이 있어 ‘절대 열어주지 말고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라’고 신신당부했다”며 “선량한 택배기사분들에겐 죄송하지만 혹시 몰라서 배송업체 서비스 가입 시 기재한 아파트 현관 출입문 비밀번호도 삭제했다”고 말했다.

 

한 택배기사는 “문 앞에 두고 갔다가 물품이 분실되면 택배기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등 일하면서 애로사항이 많은데 우리 직업을 악용한 범죄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달 노동자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고객들이 느끼는 공포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배달기사를 향한 일상적인 차별과 그들이 느끼는 일상적인 위협도 모두 사회의 문제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종민·이정한·조희연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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