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다시 ‘바위처럼…’

입력 : 2012-11-29 23:56:46 수정 : 2012-11-29 23:56:46

인쇄 메일 url 공유 - +

충남 서산 팔봉산에 서서 이제 곧 12월이다. 이런저런 일로 12월은 한 해 중 가장 바쁜 달일 수 있겠지만, 시간을 내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짧은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12월의 여행지로는 대자연의 기운을 흡입해 내 안의 묵은 기억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일망무제의 장쾌한 전망이 펼쳐지는 산 정상만 한 곳이 없을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우러러보고 바다를 내려다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 ‘내가 얼마나 작은 일에 집착했는가’를 깨닫게 되고, 훨씬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할 일 많고 약속 많은 12월에, 기억에 오래 남을 빼어난 전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출발할 때 다녀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산으로 충남 서산의 팔봉산이 어떨까 싶다. 

서산 팔봉산의 2봉에 오르다 보면 1봉의 울퉁불퉁한 암봉, 태안반도와 가로림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펼쳐진다. 암봉 중간의 등산객들을 보면 바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서산은 해변 여행지로 익숙한 곳이지만, 의외로 멋진 조망을 가진 명산도 여럿이다. ‘상서로운 산’(瑞山)이라는 지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팔봉산·도비산·가야산·상왕산 등 서산의 산은 모두 바닷가가 가까운 평야지대에 솟아 있어, 해발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모두 발아래로 시원한 전망이 펼쳐지고 산세도 빼어나다. 도비산의 부석사·상왕산의 개심사·가야산 보원사지에 올라도 바다나 산 아래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조망으로 치면 아무래도 팔봉산이 으뜸이다.

팔봉산 1봉 정상에 올라 발 아래로 굽어보는 풍광.
서산의 서북쪽인 팔봉면에 자리한 팔봉산은 능선 위에 8개의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솟아 있다. 가장 북쪽의 것을 1봉이라고 부르고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팔봉산은 가장 높은 3봉이 해발고도가 361m에 불과하지만, 모든 봉우리가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솟아 있어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집채만 한 바위가 켜켜이 쌓여 있는 이 봉우리들도 장관이지만, 이 봉우리에서 보는 풍광은 가히 압권이다. 그중에서도 바닷가 쪽에 가까운 북쪽에 자리한 1·2·3봉의 전망이 뛰어나다. 팔봉산에서 제대로 산행을 하고 싶다면 양길리 주차장에서 출발해 8봉을 다 오르고, 서태사를 거쳐 어송리 주차장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모두 5㎞가 조금 넘는 이 구간을 오르려면 제대로 산행준비를 해야 한다.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비교적 순해도 능선에서 각각의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여간 가파르고 험한 게 아니다. 철제계단을 타고 수직바위를 오르고 로프를 잡아야 하는 구간도 여럿이고, 바위 속, 굴 속을 기어서 오르기도 한다.

팔봉산 1봉에 바라본 2봉과 3봉.
양길리 주차장에서 팔봉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호젓한 길.
짧은 트레킹과 탁 트인 전망을 즐기는 게 목적이라면 양길리 주차장에서 출발해 1·2·3봉만 오르고 내려오면 된다. 하산길을 두 개의 봉우리로 돼 있는 쌍3봉 사이의 산허리 길을 따라 양길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는 것도 좋다. 

기우제를 지냈던 자리, 운암사가 있었던 터, 호랑이가 기거했다는 호랑이굴 등 팔봉산의 명소들을 다 만나게 된다. 이 코스를 잡으면 왕복 2.5㎞가 조금 넘는다.

유난히 맑은 날 초겨울 산행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을 안겨준다. 주능선까지는 울창한 송림이고, 추위를 힘들게 이겨내고 있는 색바랜 단풍이 뜨문뜨문 눈에 띈다.

1봉은 해발고도가 210m에 불과하지만, 암봉 정상에 올라 서북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눈앞을 가리던 큰 바위를 돌아 앞으로 나가자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는 장쾌한 파노라마가 펼치는 게 아닌가. 

워낙 시야가 좋은 날이어서 그런지 서산평야와 그 뒤의 태안반도와 가로림만, 그리고 멀리 웅도·고파도까지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팔봉산 2봉 정상 부근의 우럭바위.
1봉에 내려와 다시 2봉으로 오르면 팔봉산 최고의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가파른 철제계단 중간에 우럭의 머리를 꼭 닮은 우럭바위가 있다. 그 바위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1봉의 꼭대기와 그 뒤의 해안과 마을이 갑자기 바로 눈앞에 펼친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서 있다.

2봉에 오르면 이곳이 270m밖에 안 되는 게 믿기지 않는다. 까마득한 수직 암벽과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안하면 체감 높이는 실제의 두세 배 이상이다. 3봉에 서면 1·2봉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지만, 시원하고 짜릿한 전망은 2봉 계단 위에서 보는 게 훨씬 낫다. 270m 산 위에서 이 정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 땅에 또 있을까 싶다.

서산=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