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여행지로는 대자연의 기운을 흡입해 내 안의 묵은 기억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일망무제의 장쾌한 전망이 펼쳐지는 산 정상만 한 곳이 없을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우러러보고 바다를 내려다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 ‘내가 얼마나 작은 일에 집착했는가’를 깨닫게 되고, 훨씬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할 일 많고 약속 많은 12월에, 기억에 오래 남을 빼어난 전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출발할 때 다녀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산으로 충남 서산의 팔봉산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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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팔봉산의 2봉에 오르다 보면 1봉의 울퉁불퉁한 암봉, 태안반도와 가로림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펼쳐진다. 암봉 중간의 등산객들을 보면 바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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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1봉 정상에 올라 발 아래로 굽어보는 풍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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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1봉에 바라본 2봉과 3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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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리 주차장에서 팔봉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호젓한 길. |
기우제를 지냈던 자리, 운암사가 있었던 터, 호랑이가 기거했다는 호랑이굴 등 팔봉산의 명소들을 다 만나게 된다. 이 코스를 잡으면 왕복 2.5㎞가 조금 넘는다.
유난히 맑은 날 초겨울 산행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을 안겨준다. 주능선까지는 울창한 송림이고, 추위를 힘들게 이겨내고 있는 색바랜 단풍이 뜨문뜨문 눈에 띈다.
1봉은 해발고도가 210m에 불과하지만, 암봉 정상에 올라 서북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눈앞을 가리던 큰 바위를 돌아 앞으로 나가자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는 장쾌한 파노라마가 펼치는 게 아닌가.
워낙 시야가 좋은 날이어서 그런지 서산평야와 그 뒤의 태안반도와 가로림만, 그리고 멀리 웅도·고파도까지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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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2봉 정상 부근의 우럭바위. |
2봉에 오르면 이곳이 270m밖에 안 되는 게 믿기지 않는다. 까마득한 수직 암벽과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안하면 체감 높이는 실제의 두세 배 이상이다. 3봉에 서면 1·2봉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지만, 시원하고 짜릿한 전망은 2봉 계단 위에서 보는 게 훨씬 낫다. 270m 산 위에서 이 정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 땅에 또 있을까 싶다.
서산=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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