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밴드 ‘데이 브레이크’의 히트곡 ‘들었다 놨다’가 떠오를 만한 활약이었다. 정교하고도 뜨거운 타격으로 팀 타선을 지탱했지만, 수비 실책으로 팀을 끝내기 패배의 위기까지 몰았다. 그런데 결국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인 ‘느린 발’로 결승 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삼성의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도미니카 공화국) 얘기다.
디아즈는 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2차전에서 5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해 연장 12회말까지 그라운드를 지키며 6타수 4안타 2타점 1득점의 맹타로 삼성의 3-2 짜릿한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삼성은 수원에서 목표로 했던 1승1패를 거두며 안방인 대구로 향할 수 있게 됐다.
이날 디아즈는 타석에서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아니 홈런만 하나 있었으면 KBO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싸이클링 히트도 가능했다.
첫 타석부터 디아즈의 방망이는 가볍게 돌았다. 0-0으로 맞선 2회 선두타자 최형우가 우익선상으로 흐르는 2루타로 만든 무사 2루에 첫 타석에 들어섰다. 디아즈는 KT 선발 고영표의 주무기인 2구째 체인지업이 낮게 들어온 것을 걷어올렸다. 쭉쭉 뻗은 타구는 우익수 최원준의 글러브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펜스와 부딪히면서 공이 글러브에서 빠졌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안 어울리게 발이 무지하게 느린 디아즈는 2024시즌부터 KBO리그에서 317경기를 뛰면서 3루타를 때린 적이 없었지만, 최원준의 글러브에서 공이 빠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스피드로 내달려 3루에 안착했다.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KBO리그 입성 후 처음 때린 3루타였다.
그러나 디아즈의 느린 발은 곧바로 탄로가 났다. 무사 3루에서 류지혁의 유격수 땅볼이 나왔다. KT 내야진은 전진 수비를 하지도 않았다. KT 유격수 장준원도 2루 베이스 근처에서 잡아 홈으로 원바운드 송구를 했지만, 발이 느린 디아즈는 홈에서 횡사했다. 9회까지 1-1로 비겼음을 감안하면 디아즈의 발이 조금이라도 더 빨라 세이프가 됐다면 이날 경기는 애초에 연장으로 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4회엔 중견수 방면 2루타, 6회엔 우전 안타를 때려냈지만, 후속타 불발로 홈을 밟지 못했다.
결국 이날 승부는 1-1 스코어로 연장으로 향했다. 디아즈의 방망이는 연장전에서도 빛났다. 연장 10회 2사 1,2루에서 디아즈가 다섯 번째 타석에 들어서자 KT 벤치는 우완 스기모토를 내리고 좌완 전용주를 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좌타자가 좌투수에게 약하다곤 해도 이날 디아즈의 타오른 타격감을 전용주로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전용주의 2구째 슬라이더를 잡아당긴 디아즈는 우전 적시타를 때려냈고, 스기모토의 커터에 무릎을 맞았던 김지찬은 빠르게 내달려 홈을 밟았다. 2-1.
이대로 끝났다면 디아즈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지만, 디아즈가 치명적인 수비 실책으로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찼다.
삼성은 9회 1사에 마운드에 오른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을 10회에도 올렸다. 원태인은 선두타자 최원준은 우익수 뜬공으로 잘 처리했지만, 장진혁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다. 이어 안현민의 3루쪽 땅볼 때 원태인은 이를 잡아 1루에 던지는 대신 파울라인을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잡지 않았다. 그러나 공은 파울라인 안쪽에 안착하며 행운의 내야안타가 됐다.
위기의 1사 1,2루. 원태인은 힐리어드를 1루 땅볼로 유도했다. 디아즈도 타구는 잘 잡았다. 그러나 2루에 먼저 던져 병살타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앞섰던 탓일까. 디아즈는 글러브에서 공을 빠뜨려 1사 만루의 위기를 내주고 말았다. 디아즈의 치명적인 실책에 흔들린 원태인은 김현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2-2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이어진 1사 만루 위기. 외야 뜬공이라도 나오면 희생플라이로 끝내기 패배를 당할 수 있는 순간, 다시 한 번 디아즈가 수비로 앞선 수비 실책을 만회했다. 오윤석의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잡아낸 것. 결국 원태인은 허경민을 2루 땅볼로 처리하며 끝내기 패배 위기를 넘겼다.
타격과 수비로 팀을 웃겼다 울렸던 디아즈가 팀을 구해낸 건 특기인 타격이 아니었다. 가장 약점인 느린 발이었다. 연장 12회 선두타자 박승규가 바뀐 투수 오원석으로부터 좌전 안타를 뺏어내며 무사 1루를 만들었다. 이어 여섯 번째 타석에 들어선 디아즈는 2루 방면 내야 땅볼을 쳤다. 디아즈의 느린 발을 감안하면 병살이 될 것으로 보였으나 디아즈는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내달렸고, 원심은 아웃판정이었지만, 비디오판독 끝에 세이프로 정정되며 병살을 막아냈다.
김상준의 안타로 1사 1,2루가 됐고, 이재현의 투수 땅볼이 나왔다. 병살을 노린 투수 우규민은 2루 베이스로 던졌다. 이를 잡은 오윤석은 2루 베이스는 터치했지만, 1루로 던진 송구가 원바운드로 갔고 1루수 김현수가 이를 놓쳤다. 이를 본 디아즈는 홈으로 내달려 홈을 밟았다. 3-2. 이날 경기의 결승 득점이었다.
경기 뒤 디아즈는 박진만 감독에게 90도로 인사했다. 박 감독은 “호수비보다 기본기에 따라서 수비해줬으면 한다. 수비 코치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며 디아즈의 수비 분발을 촉구했다. 수훈선수 인터뷰에 임한 디아즈는 “승리해서 기쁘지만, 경기 후반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실책을 저질러서 책임감을 느꼈고, 지금도 느낀다”면서 “그런 마음 때문에 감독님께 사과했다. 중요한 상황에서 실책해서 팀이 패배 직전까지 몰린 것이 정말 미안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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