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업 정량 측정도 못해
한 곳당 5억 투입 실외정원은
탄소 흡수량 연간 0.06t 불과
‘어린이들이 자연과 가까워지도록 돕습니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4일 찾은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 내 ‘숲정원’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정원의 조성 취지를 알리는 문구가 이처럼 적혀 있었다. 이곳은 정부가 2024년 기후대응기금을 투입해 만든 ‘탄소중립 도시숲(탄소저감정원)’ 중 하나이지만 안내판 어디에서도 ‘탄소감축’이나 ‘탄소흡수’에 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864㎡ 규모의 정원에는 새롭게 설치된 나무 데크를 따라 진달래와 물싸리, 털머위, 금낭화 등이 심겨 있었다. 울창한 숲을 이룰 만한 키 큰 나무보다는 사람 허리나 어깨 높이의 작은 관목들이 주로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키 큰 교목보다 개체당 탄소흡수량이 적은 식생들이다.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탄소중립 숲’이라기보다는 어린이들이 자연을 체험하고 시민들이 산책하는 작은 정원에 가까웠다.
이 같은 생활권 실외정원 1곳을 조성하는 데 통상 5억원 안팎의 기후대응기금이 투입되지만 탄소흡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2022년 조성된 생활정원의 탄소흡수량을 분석한 결과, 교목·관목의 연간 탄소흡수량은 1곳당 약 0.06t(6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승용차 한 대가 보름 남짓 운행하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1년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도 기후대응기금에 ‘탄소저감정원 조성’ 사업 예산으로 약 92억원을 편성했다.
정부가 제시한 이들 사업의 연간 탄소흡수량 전망치는 19t에 그쳤다. 탄소감축과 실질적으로 무관한 시민정원사 63명을 양성하는 데도 1억2600만원이 배정됐다. 사실상 도시 미관 개선 사업에 ‘탄소 저감’이라는 이름만 붙여 기후대응기금을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사업이 일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일보와 녹색전환연구소가 ‘2027년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공동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도 기후대응기금 총지출 세부사업 177개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사업은 30개(17%)에 불과했다. 나머지 147개 사업은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수치로 확인하기 어려운 사업들이었다.
특히 26개 사업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18개는 내년도부터 기후대응기금으로 편입되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에특회계) 사업이었다. 에너지바우처 지급, 한국에너지공단 지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기획평가 관리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는 예산이 실제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분석·평가해 재정 운용에 반영하는 제도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조성된 기금인데도 전체 사업 7개 중 1개꼴로 감축 효과에 대한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기후대응기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원칙적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에 포함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새로운 기금을 조성할 때 이미 해오던 사업을 그대로 기금으로 옮겨 재원을 충당하는 방식을 반복해왔다”며 “감축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을 가려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원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도 “기후대응기금은 중장기적으로 높은 감축 효과가 기대되는 저탄소 기술개발, 감축설비 투자를 위한 사업에 활용돼야 한다”면서 “그와 동시에 사업의 효과를 보다 명확히 측정하고 입증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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