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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저쪽 동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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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케이크 가게에 가기 위해 낯선 길을 두리번대던 때의 일이다. 버스를 타고 늘 지나치던 동네였지만 숨은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길눈이 어두워 엉뚱한 곳을 헤매기 일쑤인 내게 상가와 주거용 건물이 뒤섞인 골목은 미로에 가까웠다. 나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주위를 살폈다. 새로 생긴 카페의 메뉴는 단출했다. 저렴한 가격의 커피와 몇 가지 음료, 디저트 류는 메도빅이 전부였다.

메도빅은 얇게 구운 꿀 시트 사이사이 크림을 바른 러시아 꿀케이크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게가 생겼다길래 들러 본 참이었다. 가게 정보를 찾다 알게 된 사장의 이력이 조금 독특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으로 목수로 일하다가 무릎 부상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자 케이크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젊고 한국어가 유창했고 몹시 친절한 사람이었다. 타국에서 수차례 삶의 방향을 바꿔 자신의 가게를 열기까지의 궤적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였다.

케이크 가게 인근에는 그런 짐작을 해볼 만한 가게가 여럿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가에 초록 간판을 내걸고 있는 할랄 마트와 메뉴판이 튀르키예어로 되어 있는 케밥집 같은 곳이 그랬다. 사장은 물론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는데 저녁 시간이면 가게 안팎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케밥을 먹는 사람도, 진열장 가득 쌓인 큼직한 빵을 골라 비닐에 담는 사람도, 그저 수다를 떨고 있을 뿐인 사람도 전부 외국인이었다. 가게 앞의 그들은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몇 년 전 집을 구하러 부동산에 갔을 때 중개업자는 ‘저쪽 동네’라는 말을 썼었다. 대학교를 중심으로 정문과 후문 쪽 동네 분위기가 판이했기 때문이다. 정문쪽에는 지하철역과 함께 아파트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상가 건물에 대부분 병원과 학원들이 입점해 있어 아침저녁으로 유치원버스와 학원버스가 도로를 점령했다. 후문 쪽에는 원룸텔과 오래된 다세대주택들이 주를 이뤘다. 상당한 규모의 상가 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골목 안쪽까지 크고 작은 간판들이 반짝였다. 학교 기숙사가 늘어나고 오피스텔이 여럿 생기자 후문 바깥쪽이 텅 비었었다고 중개업자는 말했다. “학생들 빠진 자리를 외국인노동자들이 얼른 꿰찬 거야. 저쪽 동네에는 아예 외국인들만 산다니까.”

몇 년 새 그들이 누리게 된 건 친숙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자그마한 마트와 식당 몇 군데가 고작이었다. 한국인들이 타국에 자리 잡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동네를 찾아 의지가 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이웃으로 삼겠지. 고추장과 된장, 멸치나 김을 살 수 있는 식료품 가게를 열고 퇴근 후엔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에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건강한 집단을 이루어 서로를 돕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사회 구성원이 되어가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 아닌가.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저쪽 동네’를 점령한 외국인이라는 타박을 듣게 될지 몰랐다. 할랄 마트 간판과 한인 마트 간판이 과연 뭐가 다를까. 묵직한 단맛의 케이크를 먹고 나왔는데도 어쩐지 입안이 썼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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