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상사태 선포 거부에 반발
11년 만에 최악의 산불 사태를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Z세대(1997~2012년생)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산불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국가재난 비상사태 선포를 거부하면서 청년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보르네오섬 중부칼리만탄주 주도 팔랑카라야의 주지사 집무실 앞에서 대학생 등 약 500명이 정부의 산불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산불로 발생한 짙은 연무를 피하기 위해 두꺼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연무 비상사태’, ‘우리가 불타면 너희도 함께 불타는 것’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정부를 규탄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 국가재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농경지 개간 목적의 방화 관행을 근절할 것도 요구했다.
시위는 남칼리만탄주 반자르마신과 동칼리만탄주 사마린다, 서칼리만탄주 폰티아낙 등으로 번졌다. 각 지역에서 수백 명이 거리로 나서면서 이번 주에만 전국 6개 이상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서자바주 반둥에서 시위에 참여한 파자자란대학교 학생인 빈센트 토머스는 AP통신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반드시 책임을 지고, 정부가 국가재난 비상사태를 공식 선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수도 자카르타에서도 인도네시아대학교(UI) 총학생회 주도로 대학생 수백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번 산불 사태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적 재해’로 규정하며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올해 엘니뇨 현상에 따른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산불 규모는 2015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인도네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중순 이후 산불 연무 피해를 입은 7개 주에서 발생한 급성 호흡기질환 환자는 33만3470명을 넘어섰다.
여기에 최근 루피아화 가치 급락과 주가 폭락 등 경제 불안까지 겹치면서 정부를 향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동 전쟁의 여파와 세계적 주가지수 산출업체 MSCI의 인도네시아 증시 강등 경고 등이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휩쓴 Z세대 반정부 시위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지난해에도 국회의원 주택 수당 등에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는 기득권층의 특권과 정부 정책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됐다.
프라보워 정부는 산불 진화 인력을 지난달 중순 약 4만4000명에서 현재 6만9000여명으로 늘리고 항공기 약 50대를 투입해 공중 살수와 인공강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해 현재 대응 역량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국가재난 비상사태 선포에는 선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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