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바로 달려오는 DRT도 인기
마곡사·공주박물관·한옥마을서 가을 만끽
산사의 해탈문을 지난다. 번뇌와 속박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길 기도하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천왕문 앞 성급한 단풍나무 한 그루는 벌써 초록을 밀어내며 붉게 물들고. 먼저 떨군 잎 몇 장 띄운 마곡천 맑은 물은 발아래서 청아한 소리로 잠든 마음을 깨우니 번잡하던 생각은 온데간데없다. 고개를 들면 솜씨 좋은 화가의 수채화처럼 붉은 물감으로 물드는 태화산 자락과 잘 늙은 절 한 채 마곡사.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잠시 모든 것 내려놓고 쉬어 가라며 가만히 인사를 건넨다.
◆가을옷 갈아입는 마곡사
10월 하순으로 들어서자 충남 공주도 가을색이 완연하다. 사곡면 천년고찰 마곡사는 깊어 가는 가을을 사색하며 즐기기 좋은 곳이다. 해탈문을 넘자 말 그대로 일상의 번잡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곳곳에서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인사하는 덕분이다. 예로부터 ‘춘마곡 추갑사’라 했다. 봄에는 마곡사의 풍경이 빼어나고, 가을에는 갑사의 단풍이 으뜸이라는 뜻인데, 단풍 들기 시작한 가을 마곡사도 갑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극락교를 건너 마당으로 들어서자 낯선 풍경과 마주한다. 한가운데 오층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 대광보전이 낮고 넓게 자리 잡았다. 다시 그 뒤 한 단 더 높은 축대 위에는 2층으로 외관을 꾸민 대웅보전이 우뚝 섰다. 중심 법당인 주불전 두 채가 앞뒤로 높낮이를 달리하며 포개진 모습은 국내 사찰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다. 오층석탑도 예사롭지 않다. 고려 후기 백제계 양식으로 세운 석탑 꼭대기에 1.8m 금동보탑을 얹었다. 원나라 라마탑 양식을 옮겨 온 국내 유일의 ‘탑 위의 탑’으로 2025년 1월 국보로 승격됐다.
마곡사는 640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다. 정감록과 택리지가 난리를 피할 명당 ‘십승지’로 꼽은 덕분일까.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불길도 이곳만은 비켜 갔다. 또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보물인 대광보전 안으로 들어서면 비로자나불이 정면이 아닌 왼편 서쪽 불단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극락정토가 서쪽에 있다는 불교사상에 따라 부처를 서쪽에 모시고 동쪽의 중생을 굽어살피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흙으로 빚은 조선 전기 소조불로, 1782년 대광보전이 불탔을 때 홀로 화마를 피했다.
대웅보전 안에는 아름드리 기둥 4개가 서 있다. 예부터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둥이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 안고 돌았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많이 돌았으면 극락으로 가고, 한 번도 돌지 않았으면 지옥에 떨어진단다. 그래서인지 법당에 든 사람들은 저마다 기둥을 두 팔로 끌어안고 몇 바퀴씩 돈다. 수많은 손길이 닿은 기둥은 반들반들 윤이 난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의 절이기도 하다. 백범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 시해범 일당으로 여긴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처단했고 사형수로 인천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했다. 삼남을 떠돌던 그는 1898년 가을 마곡사에 숨어들어 하은당 스님을 은사로 모시며 머리를 깎고 ‘원종(圓宗)’이란 법명을 받았다. 그가 머물던 요사채는 현재 ‘백범당’으로 단장돼 사진과 친필을 전한다. 반세기 가까이 흐른 1946년 4월, 임시정부 주석으로 돌아온 백범은 마곡사에 향나무를 심었는데 지금도 백범당 앞에서 무럭무럭 자라 사계절 푸르름을 선사한다.
◆금강이 감싸 안은 웅진성 한 바퀴
가을 정취 가득한 마곡사를 떠나 차로 30분을 남쪽으로 달리면 금성동 공산성에 닿는다.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 공산성’이라 적힌 표지석이 이곳의 가치를 전한다. 공산성은 2015년 7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부여 왕릉원, 부여 나성, 익산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공산성은 백제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에 수도 한성이 무너지고 개로왕마저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왕위를 이은 문주왕은 남쪽으로 내려와 웅진에 새 도읍을 정했다. 북쪽은 차령산맥이 가로막고, 앞으로는 금강이 해자처럼 감싸 흐르는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이다. 금강 물길은 서해로 이어져 바다 건너 중국과 오가기에도 좋았다. 이후 538년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64년 동안 공산성은 다시 일어서려는 백제의 심장 역할을 했다.
성벽 둘레는 2660m이며 1시간 남짓 걸리는 백제왕성탐방코스는 서문 금서루에서 시작한다. 1993년 복원한 문루와 매끄러운 곡선의 성벽이 어우러지고 주말이면 문 앞에서 백제 복식을 갖춘 수문병 교대식이 열려 공산성 최고의 포토존으로 꼽힌다. 성문을 지나 솔숲 오르막을 오르면 언덕 위에 쌍수정이 나타난다.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으로 몸을 피한 인조는 이곳 두 그루 나무 아래서 한양 소식을 기다렸다. 반란이 진압됐다는 소식이 닿자 기쁜 나머지 나무에 정3품 통훈대부 벼슬을 내렸다. 나무는 사라졌지만 1734년(영조 10년)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 쌍수정이라 불렀다. 곁에 선 쌍수정 사적비가 그 내력을 전한다.
공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장면도 품고 있다. 660년 7월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에워싸자 의자왕은 이곳 웅진성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닷새 만에 웅진을 지키던 장수 예식진이 의자왕을 붙잡아 당나라에 넘기고 항복했다. 그는 훗날 당나라에서 대장군 벼슬까지 올랐다. 700년 백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의자왕은 이 성에서 나라를 잃었지만, 960여년 뒤 반란을 피해 온 인조는 이 성에서 왕위를 지켰다. 한 성이 두 왕의 엇갈린 운명을 함께 품은 셈이다.
쌍수정 아래 너른 평지가 백제 왕궁지다. 건물터와 둥근 연못 자리가 왕궁의 흔적을 말없이 전한다. 북쪽으로 내려서면 세조 때 세운 영은사를 만난다. 임진왜란 때 승병이 모여 훈련하던 호국 사찰이다. 절 앞 백제 연지를 지나자 금강 변에 만하루와 연못이 나란히 앉아 있다. 금강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려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연못은 깊고도 단정하다. 누각 마루에 앉으니 강바람이 단풍 냄새를 실어 온다. 누에씨를 보관하던 잠종고를 지나면 북문 공북루에 닿고, 문루 아래 금강은 무심하게 흐른다. 64년 왕도의 영화도, 패망의 눈물도 모두 저 강물에 실려 갔으리라.
◆1400년 잠 깬 무령왕릉
공산성을 나서면 원형 교차로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동상을 마주한다. 고구려에 짓밟힌 나라를 다시 일으킨 백제 제25대 무령왕이다. 그가 잠든 무령왕릉은 우연히 세상에 나왔다. 1971년 7월5일 송산리 6호분에 스며드는 빗물을 막으려 배수로를 파던 인부의 삽 끝에 단단한 벽돌이 걸리면서 1400여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왕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 도굴꾼들이 주변 고분을 헤집었지만 이 무덤만은 6호분 뒤 언덕에 감춰져 오랜 시간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무덤의 주인을 확인한 결정적 단서는 지석이었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생존 때 쓰던 이름)이 523년 세상을 떠나 525년 안장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졌다. 출토 유물 5232점은 국립공주박물관이 품고 있다. 국보만 12건 17점이다. 무덤 입구에서 발견된 쇠뿔을 단 진묘수 진품도 박물관에 있는데 아이들 장난감처럼 정겹다.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라고 세워 둔 상상 속 동물로, 통통한 몸에 짧은 네 다리로 서 있고 옆구리엔 날개 같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꽃이 타오르듯 날렵한 왕과 왕비의 금제 관꾸미개, 왕비의 은팔찌 앞에서는 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공주의 문화와 역사를 둘러보는 여행은 ‘C-투어버스’ 덕분에 한결 편해졌다. 청주국제공항~오송역~공주~부여를 잇는 광역순환버스가 하루 8회 다녀, 4시간 걸리던 길을 2시간 이내로 줄였다. 공주에 내리면 호출형 관광 DRT가 공산성,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공주한옥마을을 오간다. 앱으로 부르면 되고 1인 2600원 ‘C-투어패스’를 구입하면 24시간 무제한이다. 관광지와 체험시설, 카페 등 300여곳을 무료나 할인으로 즐기는 ‘충남투어패스’를 곁들이면 여행비 부담도 던다.
종일 성곽과 왕릉을 걸었더니 저녁 무렵 허기가 밀려온다. 해가 지자 기온도 뚝 떨어져 여행의 피로를 풀어 줄 따끈한 한 그릇이 간절하다. 공주 원도심 제민천 골목의 고가네칼국수를 찾았다. 간판 메뉴는 평양식 만두전골. 하얀 김과 함께 속이 터져 나오는 큼직한 만두를 입에 밀어 넣고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 한술 곁들이니 찬바람에 움츠렸던 몸이 풀리고 달아났던 입맛이 금세 돌아온다. 보쌈수육도 이 집의 자랑이다. 기름기를 쏙 뺀 살코기를 도톰하게 썰어 내는데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다. 육질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 넣으면 씹을 것도 없이 사라진다. 깻잎에 새콤한 무김치를 얹고 수육 한 점을 올려 알배추에 싸 먹으면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하루의 끝은 공주박물관 옆 공주한옥마을이다. 소나무와 삼나무로 지은 한옥이지만 침대와 현대식 욕실을 갖춰 편안하다. 전통문화체험관과 도자기·한지공방도 있어 백제문화를 손으로 빚어 볼 수 있다. 숙소의 백미는 장작 구들. 아궁이에 참나무 장작을 지핀 방바닥은 밤새 식을 줄 모른다. 뜨끈한 아랫목에 요를 깔고 누우니 등허리로 온기가 차오른다. 어린 시절 고향 집 구들장의 그 따스함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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