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록·DJ 결합한 7인조 랩 코어 밴드…“제주와 음악 떼어 놓을 수 없어”
기획자도 공연 기회도 부족한 지역 음악 씬…“우리가 직접 무대 만들 것”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 상당수는 성인이 되면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하지만 모두가 고향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 남쪽 끝 제주에도 고향에 뿌리내린 채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청년들이 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감귤을 훔치겠다고 나선 사내 7명, 감귤서리단이다. 랩과 록을 결합한 음악에 DJ를 더한 랩 코어 밴드다. 멤버 7명 중 5명이 제주 토박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따라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이들에게 제주는 음악의 출발점이자 떼어 놓을 수 없는 정체성이다.
지난 8월20일 제주 이도2동의 한 지하 연습실에서 감귤서리단을 만났다. 이들이 제안한 인터뷰 시간은 오후 10시였다. 멤버 모두 생업을 병행하는 탓에 일과를 마친 뒤에야 함께 모일 수 있다고 했다. 낮에는 각자의 삶을 꾸리고 밤에는 음악을 만드는 청년들. 그들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뷰에 참석한 감귤서리단 일곱 멤버
-홍창기(33) / 보컬·건반·기타 / 리더
-정준석(32) / 랩·신시사이저
-손우영(34) / 기타
-양무현(27) / 기타· DJ
-김정준(31) / 랩
-정승환(31) / 드럼
-배성광(33) / 베이스
◆제주 토박이 밴드 ‘감귤’로 지역 애정 ‘샤라웃’
─팀을 만들게 된 계기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창기: 감귤서리단은 랩과 록을 결합한 음악을 하는 7인조 랩 코어 밴드다. 팀을 만든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형·동생들끼리 자주 모였고, 술자리에서 “뭐라도 같이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게 시작이었다. 특정 장르를 정해 놓고 음악을 하진 않는다. 래퍼가 있는 팀인 만큼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장르를 하나의 도구처럼 쓴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 음악을 ‘근본 없는 음악’이라고도 한다. 하고 싶은 음악이 워낙 많다 보니 하나에만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나.
창기: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좋아하는 힙합 정신이나 록 정신에 기반해 누군가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자신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주로 한다.
─감귤서리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창기: 힙합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을 이름에 넣어 알리거나 존중을 표현하는 걸 ‘샤라웃’이라고 한다. 제주라는 지역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이곳을 상징하는 바다나 돌하르방을 밴드 이름에 넣기 어려웠다. 그래서 떠올린 게 감귤이었다. ‘감귤갱’이라는 이름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거친 느낌이어서 ‘서리단’으로 정했다. 감귤은 음악을 듣는 이들의 마음을 상징하고 서리단은 그것을 훔친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감귤을 서리하진 않는다.(웃음)
─멤버들이 모두 제주 출신인가.
창기: 초창기 멤버는 모두 제주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때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직접 무대에 서면서 서로 알게 된 형·동생들이다. 이후 멤버가 일부 바뀌면서 지금은 외지 출신이 섞여 있다.
우영: 2021년 서울에서 내려왔다. 원래 제주라는 공간을 좋아해서 자주 여행을 왔다. 올 때마다 꼭 노래를 한 곡씩 쓸 정도였다. ‘이럴 바에는 아예 내려와서 제대로 음악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감귤서리단 멤버들과는 전부터 알고 지냈다. 아는 형과 활동을 하면서 멤버들과 종종 만나 인사하고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다 기존 팀을 그만둔 시점에 감귤서리단의 기타 멤버가 빠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된 셈이다.
─팀에 래퍼 두 명과 DJ가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어떻게 이런 구성이 만들어졌나.
창기: 자작곡을 쓰고, 그 곡들로 공연을 하게 되면서 본격 밴드 활동이 시작됐다. 멤버 모집 과정에서 래퍼도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처음부터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힙합도 원래 DJ가 음악을 틀고 이를 리믹스하는 방식에서 시작했다. 또 현대 힙합에는 실제 악기 연주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직접 시도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현: DJ 요소가 있으면 사운드를 훨씬 더 뚜렷하게 부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에 계속 기반을 두고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기: 제주에는 ‘괸당’이라는 문화가 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너 누구 알아?”, “누구와 아는 사이야?”라고 물으면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문화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생기면 상대를 자기편처럼 여기기도 한다. 제주에서 출발한 팀을 지역 사람들이 더 사랑해 주는 것도 그런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우영: 감귤서리단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부터 제주와 팀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지역적 특성이 이미 음악 안에 깊이 녹아 있는 것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 안에는 제주에서 겪은 일들이 많이 담겨 있다.
무현: 음악을 하려면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든다. 음악만 하고 싶어도 시간과 돈이 부족하고, 생업도 이어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주는 나고 자란 지역이라는 장점이 있다. 멤버 대부분이 이곳에 본가가 있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들도 많다. 서로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할 음악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제주는 저희가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음악에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담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인가.
창기: 의식적으로 넣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랐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제주적인 요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여기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곡을 쓰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자연스럽게 지역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상품성 없는 음악” 쓴소리에도 무조건 무대로
─대표곡 ‘파치’에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생긴 귤(파치)을 자신들의 모습과 연결했다. 이유는.
창기: 저희에게는 어느 정도 열등감도 있었다. 음악을 두고 ‘상품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곡도 준비돼 있었지만 행사도 불러 주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은 집에 늘 귤이 있다. 파치 귤도 흔하다. 겉보기엔 형편없어도 먹어 보면 맛있다는 걸 안다. 그런 점을 빗대고 싶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품성이 없거나 별로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좋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노래에 담긴 뜻을 알고 들었을 때 조금이라도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열등감에서 출발한 노래지만 결국 저희의 자신감에 관한 이야기다. ‘파치는 겉보기에는 이래도 맛있다. 우리는 정말 멋있다. 그런데 너희도 모두 멋있다’는 뜻을 담았다.
─팀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창기: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공연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 서울에도 자주 올라가 클럽 공연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갔다. 티셔츠나 스티커 같은 것도 만들어 봤다. 그런데도 잘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공연을 처음 열었을 때 관객이 세 명 정도 왔다. 세 명 모두 지인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웰컴 음료까지 마련했는데도 그랬다.(웃음)
─공연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창기: 100%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원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관객과 호흡하면서 사람들의 눈빛이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공연이다. 관객이 오지 않는다면 왜 오지 않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환경이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해 개선할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불러 주지 않으면 ‘그럼 우리가 직접 공연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활동해 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을 하고 싶지 않다면 직접 만들면 된다. 예전에는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래퍼들이 많았다. 마스터플랜(1990년대 후반 서울 신촌의 클럽) 같은 공연장에서도 먼저 라이브를 보여 주고, 이후에 음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요즘은 집에서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공연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승환: 공연을 한다는 건 사업과도 비슷하다. 저희는 밴드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일에 빗대 보면 사업과 다를 게 없다. 자영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식당을 열자마자 손님이 100명씩 꽉 차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떤 매력을 가졌고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 줘야 알 수 있다.
─팀이 알려지고 있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나.
창기: 재작년에 참가했던 CMYK(Color·Music·Youth·Key)를 계기로 조금씩 반응이 달라졌던 것 같다. CMYK는 홍대 공연장 롤링홀에서 진행하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다. 지원 영상을 보내 일정 순위 안에 들면 본선에 진출하고 그중 일부가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형식이다. 제주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CMYK 지원할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선정돼 서울에 올라가 경연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다. 당시 함께 선정된 팀들이 지금도 홍대 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팀들이다. 그때부터 피드백도 조금씩 늘어났고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다.
─올해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창기: 사실 처음에는 떨어졌는데 우여곡절 끝에 합류하게 됐다. 펜타포트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인 ‘펜타 슈퍼루키’에 지원했다. 10위 안에 들면 무대에 설 수 있는데 처음에 그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런데 선정된 팀 중 한 팀이 참가를 취소하면서 연락이 왔다. 페스티벌에 가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열기가 뜨거운 무대는 처음이었다. 멤버들 모두 아직도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처음에는 ‘지역에서 온 팀인데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 보니 관객이 정말 많았다.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봤다. 그게 정말 기억에 남는다.
◆공연 기회 없어 떠나는 사람들…“감귤서리단이 살려 보렵니다”
─‘제주에서 음악한다는 것’의 한계를 느낀 부분은.
창기: 일단 기획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 제주에는 공연을 기획하거나 공연장을 운영하는 분들이 잘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신인을 발굴하거나 좋은 팀을 찾아보겠다는 목적보다는 놀러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티스트들끼리 외부와 네트워킹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밴드들끼리는 서로 친하지만, 육지에서 공연하러 온 팀이나 외부 음악인들과 연결되는 경우도 드물었다. 최근에는 지원 사업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생기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원 사업을 통해 함께 공연하고 여러 팀이 모일 기회도 생겼다. 아티스트들 사이의 교류는 늘어났지만 기획자와 연결되는 기회는 여전히 거의 없다.
우영: 지역의 음악 씬이 유지되려면 새로운 아티스트와 신인들이 계속 유입돼야 한다. 제주에는 활동하는 음악인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제주에 있는 많은 사람이 서울에 가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창기: 맞다. 그렇다 보니 외부 기획자들에게는 제주가 아직 하나의 음악 씬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연할 기회가 부족하니 ‘나도 서울에서 힙합을 해야겠다’며 하나둘 떠난다. 그렇게 지역 음악 씬은 더 약해진다. 물론 상경해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잘 풀리지 않아 돌아온 이들도 많다. 하지만 다시 활동을 이어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음악을 하기 위해선 서울로 가야 한다고 고민한 적은 없나.
창기: 서울에 가려고 모든 준비를 해 둔 적이 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붙잡으면서 “월급을 많이 줄 테니 가지 말고 조금 더 고민해 보라”고 했다. 마침 그 무렵 감귤서리단이 만들어졌다.
준석: 군 전역 후 올라갔다. 그곳에선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활을 유지해야 하다 보니 일을 많이 하게 됐고 결국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다. 음악 씬에 진입할 기회를 충분히 만들지도 못했던 것 같다. 랩 공연 자체가 워낙 많았으니까.
무현: 어릴 때는 당연히 스무 살이 되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때는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지 않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유명한 사람에게 직접 레슨을 받고 싶어 올라갔다. 의정부에서 1년 반 정도 살면서 홍대에도 계속 오갔고 연습실도 빌려서 연습했다. 그런데 결국 생계를 유지하려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야 했다. 정작 연습할 시간은 많이 갖지 못하게 됐다.
─돌아온 제주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준석: 감귤서리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제주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창기: 제주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려고 한다.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하지만 기반은 어디까지나 제주다. 최종적인 목표는 감귤서리단의 음악으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활동해왔고, 이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해서 끝까지 가 보고 싶다. 올해는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목표다. 내년에는 정식으로 섭외를 받아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싶다. 어떤 페스티벌이든 불러 준다면 정말 좋겠다.
승환: 저는 원래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학원을 운영하는 일도 즐겁게 하고 있고, 일을 마친 뒤 감귤서리단 활동을 하는 것도 즐겁다. 그런데 아무리 낙천적으로 살아도 돈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바빠지면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일이 많아졌는데, 제주를 벗어나면 숙소부터 모든 것이 돈이더라.(웃음) 음악으로만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아주 많은 돈을 벌지 않더라도 직장인만큼은 벌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감귤서리단은 오는 30일 오후 8시 서울 홍대 롤링홀에서 웬즈데이오프이 함께하는 ‘선셋오렌지’ 공연에 나선다. 제주콘텐츠진흥원 제주음악창작소가 마련한 제주와 홍대를 연결하는 ‘제주 인디 서킷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은 관객들에게 제주 인디 음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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