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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보다 오래된 와인 있다? 신석기 토기가 증명한 뜻밖의 ‘와인 요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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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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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와인 매력 탐구 ①>

와인 종주국은 8000년 역사 조지아

2026 조지아 와인 쇼·페스티벌 열려

마스터 클래스·시음회 150여종 선보여

2026 조지아 와인 페스티벌 와인. 최현태 기자
2026 조지아 와인 페스티벌 와인. 최현태 기자

와인의 고향을 물으면 많은 이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답은 훨씬 동쪽에 있습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산맥 자락의 작은 나라 조지아(Georgia)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무려 8000년 전부터 땅에 묻은 커다란 항아리에서 와인을 빚었습니다. 신석기 시대 토기 조각에서 와인의 흔적이 확인되면서 조지아는 ‘와인의 요람’이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얻었습니다.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이 와인의 역사를 한 잔에 담아 맛볼 수 있는 자리가 최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2026 조지아 와인 쇼. 와인21 제공
2026 조지아 와인 쇼. 와인21 제공

◆2026 조지아 와인 쇼·페스티벌

 

조지아 국립와인청(Georgia National Wine Agency). 와인 산업을 총괄하는 국가기관까지 있을 정도니 조지아는 와인에 진심입니다. 조지아 국립와인청이 주최하고 와인21이 주관한 ‘2026 조지아 와인 쇼’와 ‘2026 조지아 와인 페스티벌’이 지난 19일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마스터 클래스, 시음회, 와인 페스티벌 순으로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국내에서 조지아 와인을 만날 기회가 늘고 수입량도 증가하면서 높아진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2026 조지아 와인 페스티벌. 최현태 기자
2026 조지아 와인 페스티벌. 최현태 기자

WSA와인아케미 김상미 원장이 진행한 오전 마스터 클래스에는 와인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약 100명이 모였습니다. 조지아 와인의 역사와 주요 산지, 토착 품종, 크베브리(Qvevri) 양조 문화, 다양한 와인 스타일을 차례로 짚었습니다. 오후 시음회는 그야말로 조지아 와인의 축소판입니다. 대표 산지 카헤티(Kakheti)를 비롯한 주요 산지의 생산자 29곳이 와인 150여 종을 선보였고 와인·식음료 업계 관계자, 교육자, 미디어 등 약 200명이 찾았습니다. 국내에 이미 수입된 와인뿐 아니라 아직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도 상당수 나와 새로운 생산자를 찾는 수입사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참석자들은 테이블을 자유롭게 오가는 워크어라운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와인을 맛보며 생산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헤일 티기쉬빌리 주한 조지아 대사대리(앞줄 왼쪽 세 번째)와 조지아 내셔널 와인 에이전시 관계자들. 와인21 제공
미헤일 티기쉬빌리 주한 조지아 대사대리(앞줄 왼쪽 세 번째)와 조지아 내셔널 와인 에이전시 관계자들. 와인21 제공

저녁에는 조지아 와인과 음식이 어우러진 페스티벌이 펼쳐졌습니다. 와인 애호가와 인플루언서, 미디어 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와인 퀴즈, 베스트 페어링, 내 취향에 맞는 조지아 와인 찾기, 조지아어로 이름 써주기, 베스트 드레서 선정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부스를 돌며 조지아의 와인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즐겼습니다.

 

미헤일 티기쉬빌리(Mikheil Tigishvili) 주한 조지아 대사대리. 와인21 제공
미헤일 티기쉬빌리(Mikheil Tigishvili) 주한 조지아 대사대리. 와인21 제공

미헤일 티기쉬빌리(Mikheil Tigishvili) 주한 조지아 대사대리는 환영사에서 “조지아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이자 영혼이며, 오랜 역사와 전통적인 환대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크베브리 양조 전통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평화와 우정, 기쁨을 나누게 해왔다”며 “이번 행사가 조지아 와인의 매력과 따뜻한 환대를 경험하고 오래 기억될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전경. 최현태 기자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전경. 최현태 기자
슈미(Shumi) 박물관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슈미(Shumi) 박물관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신석기 토기가 증명한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가 와인의 발상지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설’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2017년 이 말을 과학이 증명합니다. 캐나다 토론토대와 조지아 국립박물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수도 트빌리시에서 남쪽으로 약 30㎞ 떨어진 신석기 유적 가다크릴리 고라(Gadachrili Gora)와 슐라베리스 고라(Shulaveris Gora)에서 출토된 토기 조각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포도와 와인에만 많이 들어 있는 주석산(Tartaric acid)이 검출됐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확인한 시기는 기원전 6000~5800년, 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 전입니다. 집 바닥에 반쯤 묻혀 있던 둥근 바닥의 커다란 항아리 겉면에는 포도송이 문양까지 새겨져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고 조지아는 이후 기네스 세계기록에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국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트빌리시 언덕의 ‘마더 조지아’. 최현태 기자
트빌리시 언덕의 ‘마더 조지아’. 최현태 기자

조지아에서 와인은 술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와인을 뜻하는 조지아어 ‘그비노(Ghvino)’가 라틴어 ‘비눔(Vinum)’, 영어 ‘와인(Wine)’의 뿌리라는 학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트빌리시 언덕 위에 서 있는 ‘마더 조지아(Kartlis Deda)’ 동상은 한 손에는 적을 물리칠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손님을 맞을 와인잔을 들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온 마을이 함께 포도를 거두는 수확 축제 르트벨리(Rtveli)가 열리고, 와인이 빠진 잔칫상 ‘수프라(Supra)’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 샤르데니 거리 타마다 조각상. 최현태 기자
트빌리시 구시가지 샤르데니 거리 타마다 조각상. 최현태 기자

수프라의 주인공은 단연 타마다(Tamada)입니다. 연회를 총괄하며 건배사를 이끄는 ‘토스트마스터’이자 사회자로, 조지아 사람들은 그를 ‘식탁의 독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수프라에서는 오직 타마다만 건배를 제의할 수 있고, 음식을 소개하는 순서와 와인을 마시는 타이밍까지 모두 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건배사는 평화와 가족, 신, 조국 등 저마다 의미와 순서가 정해져 있고, 때로는 소뿔로 만든 잔 칸치(Kantsi)에 와인을 가득 채워 마시기도 합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하나로 묶고 조지아의 역사와 전통을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니 타마다에게는 뛰어난 말솜씨와 해박한 지식, 유머 감각과 순발력이 필수입니다. 그 뿌리도 깊습니다. 서부 바니(Vani)에서 발견된 기원전 7세기 무렵의 ‘뿔잔을 든 남자’ 청동 조각상을 타마다의 원조로 봅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 샤르데니(Shardeni) 거리 인근에는 이 조각상을 크게 본뜬 타마다 동상이 서 있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포토존이 됐습니다.

 

트빌리시 거리 라이브 와인 바. 최현태 기자
트빌리시 거리 라이브 와인 바. 최현태 기자

하지만 8000년 역사가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1801년 러시아 제국에 병합된 조지아는 1921년 소련에 편입돼 70년 동안 지배를 받았습니다. 소련 시절 조지아 와인은 연방 전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이었지만 계획경제는 품질보다 양을 원했습니다. 포도밭은 집단농장으로 바뀌었고 500종이 넘는 토착 품종 가운데 대량 생산에 유리한 몇몇 품종만 살아남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대를 이어온 크베브리 양조는 공장식 대량 생산에 밀려 시골집 마당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의 금주 캠페인 때는 올드바인들이 대거 뽑혀 나갔습니다.

 

샤토 무크라니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샤토 무크라니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1991년 독립 이후에도 시련은 이어졌습니다. 정치·경제 혼란 속에 농민들이 포도 대신 다른 작물로 갈아타면서 한때 15만㏊에 달하던 포도밭은 2006년 3만6000㏊까지 줄었습니다. 같은 해 러시아는 조지아 와인 수입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당시 조지아 와인 수출의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했던 터라 업계는 하루아침에 판로를 잃었습니다. 금수 조치는 2013년에야 풀렸습니다.

 

볼레로 앤 컴퍼니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볼레로 앤 컴퍼니 크베브리. 최현태 기자

역설적으로 이 위기는 조지아 와인을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생산자들은 ‘많이’ 대신 ‘제대로’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새로운 시장을 두드렸습니다. 잊혔던 토착 품종을 되살리고 할아버지 세대의 크베브리를 다시 땅에 묻었습니다. 2013년 크베브리 양조법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의 시선도 조지아로 쏠렸습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납니다. 2019년 조지아는 와인 9400만병을 53개국에 수출했고 2024년에는 와인과 증류주 수출액이 5억65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25년에는 70개국으로 와인을 수출했습니다. 내추럴 와인과 오렌지 와인 열풍도 조지아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8000년 전 조상들의 방식이 지금 가장 ‘힙한’ 와인이 된 셈입니다.

 

볼레로 앤 컴퍼니 옛 크베브리 양조장 건설 모습. 최현태 기자
볼레로 앤 컴퍼니 옛 크베브리 양조장 건설 모습. 최현태 기자

◆땅속 항아리 vs 스테인리스 탱크

 

조지아 와인을 이해하는 열쇠는 두 가지 양조 방식입니다. 고대부터 내려온 크베브리 방식과 근대 이후 들어온 유럽 방식이 나란히 공존합니다.

 

크베브리는 달걀 모양의 거대한 점토 항아리입니다. 안쪽에 밀랍을 바른 뒤 목 부분까지 땅속에 통째로 묻습니다. 으깬 포도를 즙과 껍질, 씨, 때로는 줄기까지 한꺼번에 넣고 뚜껑을 덮으면 땅이 천연 냉장고 역할을 합니다. 냉각 장치 없이도 발효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껍질과 함께 겨울을 나며 천천히 익어갑니다. 백미는 화이트 품종으로 만드는 크베브리 와인입니다. 껍질과 오래 머문 화이트 와인은 깊은 호박빛으로 물드는데 요즘 와인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앰버 와인(Amber Wine), 흔히 말하는 오렌지 와인입니다. 오크통을 쓰지 않아 인위적인 나무 향이 없고 포도 본연의 맛에 화이트 와인답지 않은 탄닌과 묵직한 질감까지 더해집니다.

 

트빌비노 스테인리스 스틸 양조 탱크. 최현태 기자
트빌비노 스테인리스 스틸 양조 탱크. 최현태 기자

유럽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양조법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나 오크통을 사용하고 냉각 장치로 온도를 정밀하게 조절합니다. 화이트 와인은 포도를 압착해 즙만 발효하고 레드 와인은 발효가 끝나면 곧바로 껍질을 걸러냅니다. 그래서 색이 맑고 투명하며 과일의 산뜻한 아로마와 깔끔한 맛이 살아납니다. 오크 숙성을 거치면 바닐라와 토스트 향이 은은하게 덧입혀집니다. 같은 포도라도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이 탄생하니 조지아 와인을 고를 때는 레이블에서 ‘크베브리’ 표기를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조지아 와인 산지. 조지아와인협회
조지아 와인 산지. 조지아와인협회

◆코카서스가 품은 땅 카헤티

 

조지아는 북쪽으로 대코카서스 산맥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서쪽에서는 흑해가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불어넣습니다. 덕분에 한반도보다 작은 땅에 다채로운 기후와 토양이 펼쳐지고 500종이 넘는 토착 품종이 자랍니다.

 

가장 먼저 기억할 이름은 카헤티(Kakheti)입니다. 동부에 자리한 조지아 최대 산지로 전체 와인 생산량의 약 70%를 책임지는 ‘조지아 와인의 심장’입니다. 알라자니(Alazani) 강을 따라 펼쳐진 계곡은 덥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 덕분에 포도가 잘 익습니다. 텔라비(Telavi)와 크바렐리(Kvareli) 같은 세부 산지가 유명하며 탄닌이 단단하고 묵직한 정통 크베브리 와인의 본고장입니다.

 

슈미(Shumi)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슈미(Shumi)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수도 트빌리시를 감싸는 중부의 카르틀리(Kartli)는 카헤티보다 서늘해 산도가 좋은 포도가 나옵니다. 품질 좋은 스파클링 와인과 전통 크베브리 와인을 모두 생산하는 팔방미인입니다. 생기 넘치는 버블을 찾는다면 카르틀리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서부의 이메레티(Imereti)는 흑해의 영향을 받아 카헤티보다 서늘하고 습합니다. 이곳 생산자들은 줄기를 덜 쓰고 껍질과 닿는 기간도 짧게 가져갑니다. 그래서 ‘이메레티식 크베브리’ 와인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산미가 뛰어나 크베브리 와인이 처음인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바지수바니(Vazisubani Estate)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바지수바니(Vazisubani Estate)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북서부 산악 지대의 라차-레치후미(Racha-Lechkhumi)는 생산량은 적지만 존재감은 큽니다. 높은 고도와 독특한 미세기후 덕분에 포도의 당도와 산도가 함께 높아져 조지아에서 가장 귀하고 비싼 천연 세미 스위트 와인이 탄생합니다. 이 지역의 레드 와인 흐반츠카라(Khvanchkara)는 스탈린이 가장 즐겨 마셨다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텔리아니밸리 글레후리 사페라비.
텔리아니밸리 글레후리 사페라비.

◆조지아 와인의 얼굴, 대표 품종 열전

 

수백 종의 토착 품종 가운데 조지아 정부가 상업 재배를 장려하는 품종은 40종 안팎입니다. 그중 꼭 알아둬야 할 대표 선수들을 레드와 화이트로 나눠 만나봅니다.

 

◆대표 레드

 

▶레드 사페라비(Saperavi)

 

조지아 레드 와인의 독보적인 에이스입니다. 이름부터 ‘물감’, ‘색을 입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껍질뿐 아니라 과육까지 붉은 보기 드문 탱튀리에(Teinturier) 품종이어서 잔에 따르면 잉크처럼 짙은 루비빛, 석류빛이 넘실댑니다. 블랙베리와 블랙체리, 자두 같은 검은 과일 향에 향신료와 흙내음이 겹겹이 쌓입니다. 산도가 높고 탄닌이 단단하며 알코올 잠재력도 뛰어나 힘 있는 풀바디 와인이 됩니다. 잘 만든 사페라비는 50년 넘게 숙성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습니다. 카헤티 구르자아니의 원산지 명칭 무쿠자니(Mukuzani)는 드라이 사페라비의 대명사이고, 크바렐리의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는 사페라비로 빚는 천연 세미 스위트 와인으로 사랑받습니다.

 

카피스토니(Kapistoni) 타브크베리. 최현태 기자
카피스토니(Kapistoni) 타브크베리. 최현태 기자

▶타브크베리(Tavkveri)

 

중부 카르틀리를 대표하는 레드 품종입니다. 생산성이 좋고 생명력이 강해 카르틀리를 중심으로 넓게 재배됩니다. 껍질이 두껍지 않아 탄닌이 부드럽고, 체리와 크랜베리 같은 신선한 붉은 과일 향에 기분 좋은 산미가 어우러집니다. 묵직한 사페라비가 부담스럽다면 타브크베리가 좋은 대안입니다. 가벼운 바디의 레드 와인은 물론 과일 향이 화사하게 살아 있는 고품질 로제와 스파클링 와인에도 자주 쓰입니다.

 

샤토 무크라니(Château Mukhrani) 샤브카피토. 최현태 기자
샤토 무크라니(Château Mukhrani) 샤브카피토. 최현태 기자

▶샤브카피토(Shavkapito)

 

카르틀리가 되찾은 보물 같은 품종입니다. 소련 시절 대량 생산 체제에서 외면받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가 생산자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토양과 기후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예민한 품종이어서 어느 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집니다. 짙은 베리류의 과일 향에 가죽과 스파이스 향이 겹겹이 쌓이고 풀바디에 가까운 묵직함이 느껴집니다. 주로 고급 드라이 레드 와인이나 전통 크베브리 방식으로 빚습니다.

 

트빌비노(Tbilvino) 알렉산드로울리와 사페라비. 최현태 기자
트빌비노(Tbilvino) 알렉산드로울리와 사페라비. 최현태 기자

▶알렉산드로울리(Aleksandrouli)

 

라차-레치후미를 대표하는 품종입니다. 라즈베리와 산딸기,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이 화사하고 사페라비보다 탄닌이 부드러워 은은한 단맛과 생기 있는 산미가 기분 좋게 어우러집니다. 조지아에서 가장 귀한 세미 스위트 와인으로 꼽히는 흐반츠카라의 주인공입니다.

 

아네모션(Anemotion) 알렉산드로울리·무주레툴리 블렌딩(가운데). 최현태 기자
아네모션(Anemotion) 알렉산드로울리·무주레툴리 블렌딩(가운데). 최현태 기자

▶무주레툴리(Mujuretuli)

 

알렉산드로울리의 영원한 단짝입니다. 같은 라차 지역에서 자라며 재배 면적은 작지만 높은 당도와 짙은 아로마로 존재감을 뽐냅니다.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알렉산드로울리와 손잡고 흐반츠카라를 완성하는 필수 파트너로 활약합니다. 알렉산드로울리가 화사한 과일 향과 산미를 맡는다면 무주레툴리는 진한 색과 단맛, 깊은 향을 더합니다.

 

바지아니 르카츠텔리. 최현태 기자
바지아니 르카츠텔리. 최현태 기자

◆화이트

 

▶르카치텔리(Rkatsiteli)

 

조지아 포도밭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국가대표입니다. 2024년 기준 조지아 전체 포도나무의 약 47%가 르카치텔리이고, 사페라비와 합치면 80%가 넘습니다. 이름은 조지아어로 ‘붉은 줄기’라는 뜻으로 가장 오래된 품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카헤티와 카르틀리를 중심으로 자라며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고, 당도와 산도의 균형이 뛰어나 어떤 스타일로 빚어도 제 몫을 해냅니다. 유럽 방식으로 만들면 청사과와 배, 아카시아 꿀 향이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 됩니다. 크베브리에서 익히면 견과류와 오렌지 껍질, 말린 살구 향에 탄탄한 탄닌이 더해진 묵직한 앰버 와인으로 변신합니다.

 

츠솔리코우리 와인. 최현태 기자
츠솔리코우리 와인. 최현태 기자

▶츠솔리코우리(Tsolikouri)

 

동부에 르카치텔리가 있다면 서부에는 츠솔리코우리가 있습니다. 조지아 화이트 품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서부의 리더입니다. 이메레티와 라차-레치후미 등 흑해의 영향을 받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잘 견딥니다. 신선한 산미에 멜론과 배, 잘 익은 노란 자두 향이 풍성하게 어우러집니다. 이메레티식 크베브리로 빚으면 가볍고 산뜻한 앰버 와인이 됩니다. 레치후미의 트비시(Tvishi)에서는 천연 세미 스위트 화이트 와인으로 태어나는데, 꿀과 열대과일 향이 우아하게 피어나 조지아 스위트 와인의 숨은 보석으로 꼽힙니다.

 

▶치츠카(Tsitska)

 

서부 이메레티에서 가장 오래된 토착 품종 중 하나입니다. 늦게 익는 만생종으로, 수확 때까지 높은 산도를 꼿꼿하게 지키는 것이 매력입니다. 청사과와 레몬, 멜론 향에 미네랄이 더해져 맑고 날카로운 맛을 냅니다. 생기 넘치는 산미 덕분에 일찍부터 조지아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의 핵심 원료로 사랑받았고, 섬세한 버블과 깔끔한 여운을 만들어냅니다. 이메레티에서는 츠솔리코우리와 블렌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고, 이 조합은 원산지 명칭 스비리(Sviri)로도 이어집니다.

 

두글라제(Dugladze Wines &amp; Spirits) 므츠바네. 최현태 기자
두글라제(Dugladze Wines & Spirits) 므츠바네. 최현태 기자

▶므츠바네 카후리(Mtsvane Kakhuri)

 

조지아어로 ‘녹색’을 뜻하는 카헤티의 대표 아로마틱 품종입니다. 과즙이 풍부하고 향이 매우 화사해 잔을 코에 가져가기만 해도 복숭아와 살구 같은 핵과류 향, 시트러스의 청량함, 하얀 꽃 향이 피어오릅니다. 르카치텔리의 단단한 산미에 부드러운 과일 향과 꽃 향을 더해주는 최고의 블렌딩 파트너입니다. 두 품종을 섞은 카헤티의 치난달리(Tsinandali)는 조지아를 대표하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입니다. 크베브리에서 익히면 꿀과 말린 과일 향이 감도는 우아한 앰버 와인이 됩니다.

 

바지수바니 키시. 최현태 기자
바지수바니 키시. 최현태 기자

▶키시(Kisi)

 

조지아 화이트 와인의 ‘부활 신화’입니다. 수확량이 적고 재배가 까다로워 소련 시절 대량 생산 체제에서 밀려났고,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카헤티의 양조가들과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되살리면서 최근 재배 면적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면적은 아직 5위권이지만 평론가들의 관심은 단연 1순위입니다. 유럽 방식으로 만들면 서양배와 시트러스 향에 산뜻한 미네랄이 매력적입니다. 크베브리에서 익히면 말린 살구와 호두, 마르멜로, 스파이스 향이 겹겹이 쌓이는 복합적인 최고급 앰버 와인이 됩니다.

 

▶치누리(Chinuri)

 

중부 카르틀리의 자부심입니다. 이름은 조지아어로 ‘훌륭한’, ‘뛰어난’을 뜻하는 ‘치네불리(Chinebuli)’에서 왔다고 전해질 만큼 오래전부터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카르틀리의 서늘한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한 품종으로 야생화와 서양배, 민트의 섬세하고 우아한 향을 지녔습니다. 청량한 산미 덕분에 카르틀리의 원산지 명칭 아테누리(Atenuri) 스파클링 와인의 주원료로 쓰입니다. 최근에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맑고 섬세한 크베브리 앰버 와인으로도 활발하게 빚고 있습니다.  

 

이클립스 이스테이트(Eclipse Estate) 히흐비. 최현태 기자
이클립스 이스테이트(Eclipse Estate) 히흐비. 최현태 기자

▶히흐비(Khikhvi)

 

카헤티가 숨겨둔 향기로운 보석입니다. 이름의 유래도, 정확한 기원도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토착 품종으로, 주로 카헤티 알라자니강 오른편 기슭에서 자라고 카르틀리에서도 일부 재배됩니다. 껍질이 얇은 연둣빛 포도로 일찍 익어 서늘한 고지대 포도밭에도 잘 맞습니다. 당도가 높고 산미는 부드러우며 알코올은 적당해 맛이 섬세하고 균형 잡혀 있습니다. 회양목과 들꽃의 플로럴 향에 잘 익은 노란 과일과 살구 향이 어우러집니다. 유럽 방식으로 빚으면 꽃향기가 화사한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 됩니다. 크베브리에서 익히면 말린 살구와 꿀, 들꽃 향이 겹겹이 쌓이는 우아한 앰버 와인으로 변신합니다. 드라이부터 세미 스위트, 스위트 와인까지 두루 빚고, 카헤티의 카르데나히(Kardenakhi)에서는 짙은 황금빛의 주정강화 디저트 와인으로도 태어납니다. 단일 품종으로도 매력적이지만, 블렌딩에 조금만 넣어도 부드러움과 향기를 더해줘 블렌딩 파트너로도 사랑받습니다. 오랫동안 르카치텔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지만, 키시와 함께 최근 크베브리 앰버 와인 생산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품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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